오웰 역시 행동으로 그점을 증명해 보였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출간될 무렵 그는 이미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떠난 상태였다. 기록을 위해 전쟁터로 떠나는 일이야말로, 약한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오웰은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려 했다. 중산층이었고, 명문 학교를 나왔고, 관리자로서 식민지에서 일했던 과거가 있다. 특히 마지막 일은 현재의 자신으로서 부정해야만 하는 과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었던 것으로 치부할 수 없는 그 과거를, 그렇다면 그는 미래를 위한 자산으로 삼기로 한다. 엠마뉘엘 카레르는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다룬 픽션 왕국」에서 종교학자에르네스트 르낭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종교의 역사를 쓰려고 할 때, 그 최적의 조건은 그것을 믿었다가더 이상 안 믿게 되는 것"이라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오웰은 "믿었다가 더 이상 안 믿게 되는 어떤 상태에 있었고, 바로 그렇게, 한때 몸담았다 빠져나온 사람으로서 자신이 - P25

표현할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에 관련된 이해도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장애와 관련한 경험들은 단어에 굶주려 있다.(앤드루 솔로몬, 고기탁 옮김, 부모와 다른 아이들 IⅡ(열린책들, 2015), 26쪽) - P29

앤드루 솔로몬의 책에 나오는, 그리고 내가 제작하고 있던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경험이 대표적이다. 그들의 경험이 단어에 굶주려 있다는 것은 사회적인 의미에서그들의 경험이 온전히 대접받지 못하고 차별받고 있다는 뜻이며,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는 내가 아직 상대의 언어를익히지 못했다는 뜻이다. 외부인의 세계에서도 편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확한 언어가 찾아지지 않은 경험을 전하는 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눌하게, 조심스럽게 풀어 갈 수밖에 없다. 우리 사이에 공통의 언어가 아직 없기 때문에 그의이야기는 듣는 내게 낯설다. 내가 익히지 못한 단어들, 혹은내가 알고 있는 뜻과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는 단어들이 모여 이야기가 될 때, 그 이야기가 내 안에 혼돈을 만들어 내는것이 당연하다. 그 혼돈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그리하여 내 안의 단어들의 지평이 넓어질 때, 나는 성장할 것이다. 조는 간호사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를 만난 이틀 동안 그가 나에게 준 ‘도움‘은 간호사가 환자들을 도와주는 것과는 다른 성격의 도움이었다. - P45

쉽게 함부로 쓰이는 단어들이 있다. ‘이해‘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자기 자리에 앉아 결정할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님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 꼼짝도 않고 앉아서는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말한다. 그런 건 이해가 아니라 자신의 맥락 안에 타인의 이야기를 맞추어 넣는 것일 뿐이다. 그때 만남은 바뀌지 않는 나의 맥락에 하나의 ‘장면‘을 추가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마주침 후에나의 이야기 분량이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성장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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