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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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지만, 다른 이야기들을 쓰면서도 언젠가 한 번은 꼭 써야 하는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생각하면서 첫 문장도 쓰지 못했던 이야기. 그것은 원한에 대한 이야기이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죽음이라기보다는 죽임에 대한 이야기라는 편이 정확하다. 나는 오래전부터 누군가를 죽이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써야만 비로소 원한이 사그라들것 같아서. 한 소녀가 내내 원한을 품고 살다가, 그 원한을 품게 만든 상대를  기어코 제 손으로 죽이는 이야기를, 나는 쓰고 싶었다. 그 소녀가 죽인 사람의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소녀는 그 죽음은  제 손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나는 쓰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까닭은, 그것이 내가  살면서 해야 했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그 일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늙어서 죽어버렸기 때문에 내가 결코 해낼  수 없었던 일을, 나는 그가 늙어 저절로 죽기 전에 소녀의 손을 빌어 해내고 싶었다. 반드시 벌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소녀가 그 사람을  죽여버리고 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소녀는 빛과 행복을 찾게 될까? 나는 소녀의 그다음 삶을 그려볼 수가 없어서 늘 어느  한 장면만을 상상한 채로 글은 한 줄도 쓰지 못한다.


나는 많은 여자들이 그리고 남자들도  원한을 갖고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원한을 품고 살 것이고, 그 원한을 풀어내기 위해 각자의 행동을 할 것이다.  아니, 지금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화 말고, 깊은 원한. 내내 마음 저기에 응어리져 있는 것. 기어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엉엉 울거나 자신의 가슴을 쳐내면서 토로해야만 하는 그런 원한. 유령으로라도 나타나서 어떻게든 밝히고 풀어내야 할, 그런  원한.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 천국과 지옥에 가기 전에 아직 미련이 남게 만드는, 미처 떠오르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원한.


강화길의 《대불호텔의 유령》에서는 '셜리 잭슨'이 등장해 동양의 억울한 자매 이야기를  들려준다. 억울하게 계모에 의해 죽은 자매의 이야기. 원한을 풀어달라는 자매들이 등장하면 그 공포로 죽어나가는 수령의 이야기.  자기 원한을 풀자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세상에 원한을 하나 더하는 일이 아닌가. 자매의 억울함을 들어주었던 새로 부임한  수령은 그 뒤로도 억울한 원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세상에 억울한 영혼이 하나도 남지 않는 일이 정말 일어날 수 있을까?


전해져내려 오는 이야기를 지나쳐  대불호텔로 돌아오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 그 호텔에 글을 쓰기 위해 온 사람, 그 호텔에서 기어코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호텔에 살고 있는 어떤 악의를-악의는 처음부터 악의였을까?- 소리로, 그리고 모습으로 마주친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는  채로 신뢰는 이내 불신으로 바뀌면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내 의지가 결코 아닌 채로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가까운 사람과  멀어지고 멀어진 사람과 가까워지면서, 여기에 영영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과 여기를 어떻게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공존하면서 호텔 안의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은 정체불명의 소리를 듣고, 나에게 말을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모습을 본다.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증오해 나는 너랑 헤어질 거야 나는 너랑 헤어지기 싫어, 온갖 마음과 소리가 있다. 내 입을 통한 것이 아니거나, 내 입을 통해 나왔어도 내 것이 아닌 소리들.

그 모든 것들은 차곡차곡 대불 호텔이 품는 역사가 된다. 그리고 현재의 작가에게 전해지는 이야기가 된다.




원한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아주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강화길도 어떤  억울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대불호텔의 유령은 나타난 것일 테다. 그러나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원한, 거기에서 멈춰있다면,  강화길은 그다음을 진행한다. 이 이야기 속에선 이 사람이 억울하고 저 이야기 속에서는 저 사람이 눈물을 흘리지만, 그러나 그  이야기들 사이사이에 사랑이 있었을 거라고 얘기한다. 끝내 사랑으로 마무리한다. 어떤 원한이 기어코 나를 저주하고 찾아들어도,  그래도 옆에서 손잡아주는 이가 있다면 그 저주에 귀를 막을 수도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다음의 삶을 그려낼 수 없어서 나는 늘  쓰고자 하는 마음만 간직하고 있다면, 그다음의 삶을 그려낼 수 있어서 강화길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테다. 결국은  사람을 살게 하는 건 원한을 넘어서는 일이어야 한다는 듯이. 

원한만으로는 우리가 살 수 없다는 듯이.


그 순간, 내 안에 오랫동안 잠겨 있던 목소리들이 스르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나는 나의 목소리로 그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네가 나한테 어떤 사람인데."

그가 얼굴에서 손을 내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의 목을 천천히 끌어안았다. -p.294


그렇지만,

등장인물 몇 되지도 않는데 정신 사납고 산만하다. 처음엔 뭔가 있을것처럼 악의와 원한으로 진행하다 끝에 가서 갑자기 우리 사랑 ♡ 이러는데 좀 당황스러웠다. 내게 어떤 저주가 들러붙어도, 내가 어떤 환청을 들어도 사랑이면 샤라라랑~ 된다는건가 싶고, 전체적으로 용두사미의 느낌.

강화길은 <다른 사람>, <음복> 그리고 지금이 세번째 만남인데 대불 호텔의 유령이 제일 별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신형철 별로 되었지만(한때 진짜 좋아해서 뒤지면 사랑고백도 나올거다), 이 책에 대한 추천사 진짜 별로다. 이 책이 '강화길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것' 이라니, 이게 칭찬이여 저주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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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30 14: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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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30 14: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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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8 17: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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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8 1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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