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시인》의 첫문장을 외우고 있다. 아주 강력하고 짧아서 외우기에 전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죽음 담당이다' 라는 첫문장. 첫문장만 보면 도대체 어떻게, 왜, 죽음 담당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 확 빨려들어가지 않나.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나는 죽음 담당이다'라는 강렬한 첫문장으로 책을 시작할 수 있는건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일이다.
세상에는 아주 유명한 첫문장들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일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은 알아두고 있으면, 다른 많은 책들을 읽을 때도 도움이 된다. 수시로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은 여기저기 인용되고 응용된다. 만약 그것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임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 문장들 속에서 각주를 찾아 읽어야 하거나, 제 때 감탄하고 웃거나 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일단 알고 있다면, 다른 책들을 읽을 때도 제대로 제 때에 감탄할 수 있다. 그러니 안나 카레니나 만큼은 읽는 것이 앞으로의 독서 생활에도 좋을 것이고, 최소한 첫문장만큼만이라도 알아두는 것이 앞으로의 독서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하는 문장.
이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한 첫문장이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두 도시 이야기를 읽으려고 책장을 펼치고 이 문장을 읽자마자, 아 좋다! 하고 감탄했으니까. 바로 이런 문장이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알라딘 서재에서도 몇 번이나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읽어두는 것이 앞으로의 독서생활을 좀 더 낫게 만들어줄거라고 얘기한 바 있지만(박정현은 미스 그리샴으로 노래도 만들었다니까?), 두 도시 이야기도 마찬가지. 이 첫문장을 알아두는 것은 참으로 유용하다. 내가 이 책을 읽었고, 이 첫문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팝송 가사를 검색해보다가 딱,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러니까 이 첫문장 얘기가 왜 나왔냐면, 그러니까 두 도시 이야기를 왜 했느냐 하면, 바로 이 가사 때문이었다.
너는 빛이고 밤이라고, 너는 치유이고 고통이라고 말하는 가사.
<Love Me Like You Do> by Ellie Goulding
You're the light, you're the night
You're the color of my blood
You're the cure, you're the pain
You're the only thing I wanna touch
Never knew that it could mean so much, so much
You're the fear, I don't care
'Cause I've never been so high
Follow me through the dark
Let me take you past our satellites
You can see the world you brought to life, to life
S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Touch me like you do, to-to-touch me like you do
What are you waiting for?
Fading in, fading out
On the edge of paradise
Every inch of your skin is a holy grail I've gotta find
Only you can set my heart on fire, on fire
Yeah, I'll let you set the pace
'Cause I'm not thinking straight
My head spinning around, I can't see clear no more
What are you waiting for?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Touch me like you do, to-to-touch me like you do
What are you waiting for?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like you d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yeah)
Touch me like you do, to-to-touch me like you do
What are you waiting for?
I'll let you set the pace
'Cause I'm not thinking straight
My head spinning around, I can't see clear no more
What are you waiting for?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like you d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yeah)
Touch me like you do, to-to-touch me like you do
What are you waiting for?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like you d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yeah)
Touch me like you do, to-to-touch me like you do
What are you waiting for?
아, 여러분. 글 너무 좋지 않은가. 정말 좋지 않은가. 나는 죽음 담당이다, 부터 시작해서 몇 개 안되는 단어들로 최고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고,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나란히 써서 가슴을 들끓게 하고. 아니, 이거봐, 너는 빛이면서 밤이래.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이게 너무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우리는 익히 알지 않나. 누구나 저런 경험 있지 않나. 천국이면서 동시에 지옥이기도 한 경험. 그래, 줌파 라히리도 <지옥 천국>이라는 단편을 쓴 적이 있잖아. 위의 노래에서처럼 빛이면서 밤인 그런 감정을 누구나 경험해보지 않나. 허공에 떠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가 이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
이 노래는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삽입된 곡인데, 이 영화에 삽입되기는 정말 적절했다 보인다. 주인공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사랑해서 설레이고 행복했지만, 그러나 그레이가 변태라서...(응?) 괴로웠다. 그레이는 성관계시 가학적 성향을 갖고 있었고 다정한 로맨스는 자신에게 없다고 했더랬다. 아나스타샤는 그레이가 좋아서 그의 가학적 성향을 맞춰주고자 했었지만, 맞으면서 기뻐할 수는 없었다. 결국 맞고 눈물 흘리면서 '이게 니가 원하는거냐'고 묻고는 그를 떠난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선택의 순간이 주어지고, 그 때 우리는 행복과 불행중에서라면 당연히 행복을 선택하기 쉽지만, 그러나 불행과 더 큰 불행 앞에서라면 계속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울 것인가, 저것이 괴로울 것인가....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사랑했으므로 헤어지기는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남자한테 맞는 것을 사랑이라고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못할 짓이다. 그것이 그의 '성적 취향'이라 해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너만 웃고 내가 불쾌하면 그것은 농담이 아니듯이, 너는 즐겁고 나는 눈물나는 그것이 섹스일 리 없다. 그것이 섹스일 수 없다.
아, 근데 이런 얘기 하러던 거 아닌데.. 나는 문학의 위대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단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이렇게나 좋은 문장이 되기도 한다는 걸 말하려고 한건데 변태 때문에 또 빡쳐버리고 말았네... <하이에나>의 김혜수가 주지훈에게 그런것처럼, 나 뜨거워질 때마다 누가 나 좀 남산에 데려가서 식혀줬으면 좋겠다.....
다시 본래의 의도로 돌아가서,
나는 문장의 기교 같은 것, 그러니까 문장을 잔뜩 꾸미려고 하거나,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글을 읽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도 않고. 그러나 위의 첫문장들처럼, 몇 개 안되는 단어들로 졸라 멋진 문장을 만드는 것은 너무 부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나는 쓰지 못할 문장들이 아닐까.
팝송 가사도 그런 면에서 좋다.
You're the light, you're the night
아 너무 좋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는 빛이고 밤이래. 무릇 사랑이란 이런 것이 아니던가. 그저 계속 저녁무렵이면 그저 계속 낮이면 그것은 열정적 사랑이 아니라 그저 꾸준한 관계 아닌가. 나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빛이면서 밤인 것. 그래서 나를 들끓게 만드는 것. 아아, 그러다 내가 망했지.. 그래서 내가 사랑에 망한거야... 그저 저녁무렵인것이, 그저 새벽인것이 더 나았을거야. 빛이면서 밤인거 좋아하다가 망했어...
괜찮다.. 나는 그저 봄날을 살면 되니까.
그나저나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그레이도 아니었는데(그렇게 돈이 많지도, 그렇게 젊지도 않았다) 나는 왜 아나스타샤만 보면 나같은지 모르겠다. 아나스타샤에 내가 훅- 들어가버려. 나는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는 나... 어째서, 왜 때문에 그런가..나는 수시로 아나스타샤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