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평화로울 수 있었던 금요일은 분노의 금요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어. 이 책은 단편집인데, 여기에 실린 <추앙>이란 단편을 읽다 보면 정신이 확든다. 아, 한남문학인이란 무엇인가.. 한남에게 문학을 주지말자.
대학생이자 습작생인 정원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대학 강사이자 유명 시인인 B 강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다. 이에 B 강사에게 항의메일을 보냈는데, 그로부터 이런 답장을 받게 된다.
와, 어쩌면 이렇게 찐한남문학인의 글 같을까. 진짜 한남문학인이 쓴 글 같다, 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편소설집에 실린 '소설' 이니까. 그런 한편 아아, 얼마나 유치한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사과를 해야하는데, 저렇게 유체이탈화법을 쓰다니, 진짜, 글 왜배우냐. 어디서 쌉스런 글만 문학이라고 배웠냐, 하고 한심해 했다.
정원은 같은 과 선배인 '현석' 에게 이 일을 얘기한다. 현석은 여성성의 해방을 부르짖고 약자의 편에 서고자 하는 강직한 인물이다. 그는' 문학계에 뿌리박힌 여성혐오의 오랜 역사를 한탄(p.91)' 했지만, 가장 존경하는 시인에 B 강사의 이름을 적는다. 그 이유는
'그 시인들은 매 순간 시인이며 그들의 인생 자체가 시(p.91)'
이기 때문이었다. 결코 평등한 입장이 아닌 학생에게 입을 맞추려는 강사가 매 순간을 시적으로 살고 있었다니, 문학이란 무엇인가.
정원은 현석의 진심이 궁금했다. 성추행범을 욕하고 여성성의 해방을 부르짖으면서 동시에 성추행범을 추앙하며 그들의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성향을 찬미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걸까. 강직하거나 점잖다고 정평이 나 있는 수많은 교수와 시인 중에서 현석은 어째서 A교수와 B강사를 가장 존경하는 시인으로 꼽았을까.
사회적 변두리에 있는 것만을 지지하며 깨어 있는 젊은 지식인 행세를 하는 현석의 고매한 취향에 해임당한 적이 있는 교수와 가난하기로 소문난 B 강사가 가장 적합했던 것일까. 자유주의자 코스프레를 하며 반항아라는 가면을 쓰고 사는 그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현석은 자유롭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지지하는 자의 이미지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권위가 없는 척하는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그들의 권위를 지지하며 자신은 권위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p.93-94)
소설같지 않다, 너무 있을 법한 일이다, 너무나 생생하다 생각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한남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계속 의문을 가졌었으니까. 왜 그들은 소설을 쓰든 시를 쓰든 여성의 젖가슴과, 자궁과, 제왕절개까지 가져오는가. 맥락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런 단어들을 가져다 쓰면 쿨해보이나. 그것이 문학적으로 인정 받는 길인가. 문학, 참 못하는 구나 한남, 이라고 생각했다.
다같이 냇물에 발 담그고 막걸리를 마시고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하는 기분을 학생들에게 들게 한 이 책 속의 A교수는 정원에게 남자 잡아먹을 상 이라고 말한다. B 강사와의 일을 알기 때문일테지. 성추행은 B 강사가 했는데, 그걸 학교에 신고하고 항의메일을 보낸 학생은 '남자 잡아먹을 년'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 문학을 한다. 성추행범은 나쁜 거지만 매순간 시적으로 사는 그들을 존경한고 말하는 남자와, '너를 따먹고 싶었다'고 학생에게 말하는 강사와, 학생에게 남자 잡아먹을 상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교수가,
문학을 한다.
문학을 하면서, 자신이 한 짓에 대해 '아마 이렇게 된 것이라고 보네' 라면서, 마치 자기가 자기가 아닌 듯이 뒤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렇지만 너를 예뻐해, 너에겐 재능이 있지, 라고 쌉소리 하는 새끼가 하는게 바로, 문학이란 것이었다.
분노하며 읽다가, 아아, 이 생생한 소설을 어쩌면 좋아, 한남에게 문학은 독이다, 라고 생각하다가, 나는 이 소설의 끝에서 이런 덧붙임을 읽게된다.
그렇다.
저 메일, 저 유체이탈 화법을 쓴 메일은,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저런 글을 썼다. 저런 글을 쓰면서 학생을 가르친다고 한다. 한남에게서 문학을 빼앗아와야 한다. 한남에게 권력을 주면 안되고, 문학을 주어서도 안된다. 문학은 한남에게 주기에 너무 아깝다. 그들에게 가는 순간 아주 부끄러운 것이 되고야 만다.
존 스튜어트 밀의 위기의 순간에 문학이 있었다고 했다. 문학이 그를 살려주었다고 했다. 문학이 그의 감정을 건드려주었다고 했다. 문학이 하는 일은 작게도 크게도 누군가를 움직이는 일이었고, 내게도 역시 그렇다. 나는 문학을 사랑하고, 내가 문학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이지, 문학이 부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문학을 보고싶지 않다.
문학하는 남자들의 쌉소리를 읽고 싶지 않다. 저들끼리 추앙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
B강사는 대학 강사이자 유명 시인이었다. 정원은 대학생이자 습작생이었다.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가진 자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자의 대화는 평등할 수 없었다. 정원은 일방적으로 들어야 했고, 일방적으로 수긍해야 했다. 정원은 매번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했고, 내 생각은 다르다는 말이 안에서 쌓여갈수록 그것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꼈다. B강사가 취한 행동의 저변에는 자신이 ‘시적 영혼‘의 소유자라는 합리화가 깔려 있었다. 또한 ‘시적 영혼‘의 저변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학적 추종 그 자체와 현석과 같은 충직한 추종자들이 있었다. - P93
아프다는 게 뭔지 아니.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정상이 아니면 사람이 아프게 되는 거야. 정상이 되고 싶은 건 욕망이 아니라 균형감각이야. 인간은 항상 회복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어. 정상일 때에는 자기가 정상인 데 둔감하지만, 비정상이 되고 나서는 정상이 무엇인지를 뼛속 깊이 생각하고 갈망하게 되는 법이야. 갈망이 신호를 보내는 게 아픔인 거야.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비정상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았겠지. 가장 나쁜 건 아픈 사람은 자기 아픈 것에만 골몰한다는 거야. 비정상인 상태가 괴로운 건 자기만 아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회복되고 싶었어. 아프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어. 아프지 않으려면, 정상으로 돌아가야 했어.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 P102
언니는 정상이 되고 싶댔지. 나도 언니가 생각하는 정상이 되고 싶어한 적이 있다는 걸 언제고 언니에게 꼭 말하고 싶었어. 정상이라는 것은 계급이고 권력이라고 생각해. 정상이라 여겨지는 그 영역 안에 종속되어야 안심이 되니까. 나는 비정상이어서 아픈 게 아니라 나를 거부하면서까지 정상이 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아팠어.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 P118
다음주에 팸플릿 인터뷰 잡았다. 대본은 내가 준비해뒀으니까 너는 하던 대로 간단하게 사진만 찍으면 돼. 제가 말하고 싶어요.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실장은 가방을 집으며 반쯤 감긴 눈으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다 써놨는데. 그거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 지 알아? 너 이러는 거 노동력 착취다.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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