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꿈속의 나에겐 남자친구가 있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어떤 대화중이었는데, 남자친구는 내게 멍청하고 성격도 나쁘다고 뭐라고 했다. 우리가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자친구에게 나는 멍청하고 성격나쁜 게 아니고, 니 말이 틀린 거라고 대꾸했는데, 그러자 남자친구는 내게 물었다.
"너 생리할 때 됐지?"
남자친구다 보니 내 생리주기 정도는 알 수 있었던 걸까. 공교롭게도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내게
"거봐. 그러니까 멍청하고 성격도 나쁘지. 여자들은 생리할 때 성격 나빠지잖아. 나 아니면 누가 너 이해하냐."
이러는 게 아닌가. 나는 그 말을 듣고난 후,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래, 천천히 보면서 생각했다.
'이런 새끼를 왜 사귀고 있지?'
그러나 그에게 그만만나자고 말하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새벽이었다. 다시 잠들기까지 뒤척이면서, 대체 이런 맥락 없는 뜬금 없는 꿈을 왜 꾼거지? 아무 메세지도 없는 꿈을? 기분만 나쁘잖아? 하다가, 아아, 캣콜링 때문이구나, 했다. 그렇다. 나는 자기 전에 '이소호'의 시집 《캣콜링》을 읽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를 읽으며 빡쳐했던 것이다.
마시면 문득 그리운
소호 뭐해? 다른 사람들한테 아직 내 이야기 안 했지? 나중에 우리 여행 갈래. 이 말을 하려고 전화한 건 아니고 그냥 오늘 너무 슬퍼.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나 있는 곳으로 올래? 여기 연남동이거든 택시 타면 금방이야. 이상하게 술 마시니까 네 생각이 나네. 그냥 너 같은 여자랑 사귀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런 생각. 아니다. 우리는 남들처럼 그렇게 유치하게 만나지 말자. 그냥 좋으면 좋은 대로. 나는 소호가 쿨해서 좋아. 예술하는 여자들은 보통 여자들이랑 다르잖아. 자유롭잖아. 얽매어 있는 거 싫어하지 나처럼. 그러니까 구속하지 말자. 마음이 서로 맞는다는 게 중요한 거잖아. 그냥 이렇게 만나서 술 먹고 더 맞으면 자고 그러자. 야. 우리가 무슨 사이냐니. 그게 뭐가 중요해. 너나 나나 나이 먹을 만큼 먹었잖아. 도대체 네가 생각하는 연애의 기준이 대체 뭔데? 남녀가 정기적으로 만나 놀고 먹고 자고. 그거 우리 지금 하고 있는 거잖아. 꼭 연인끼리만 그런 걸 해야 해? 난 아직도 네가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어. 여자들은 정말 이상하지. 멀쩡히 잘 만나다 꼭 이러더래. 됐어 기분 다 망쳤어. 너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볼 줄 몰라.
아아..이런 시를 읽고 자가지고 꿈에 더러운 남자친구 있었네. 에라이-
어휴 입으로 손으로 똥싸는 놈들..
캣콜링 시집의 첫장을 펼치면, 서문인 듯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쟤는 분명 지옥에 갈 거야.
우릴 슬프게 했으니까.
2018년 12월
이소호
이 첫장이 너무 좋아서, 나는 지옥에 갈 사람들의 명단을 언제까지고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를 슬프게 한 사람들, 이 시간에도 우리를 슬프게할만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쟤는 분명 지옥에 갈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옥에 가라. 당신들은 지옥에 가야해. 왜냐하면, 우리를 슬프게 했으니까. 나를, 내 친구를, 내 이웃을, 내 주변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슬프게한 사람들, 지옥에 가야해.
지옥, 이라고 하니까 며칠 전에 본 영화 《아이 엠 마더》가 생각난다.
원제는 <Pepprmint> 인데 왜 우리나라 와서 아이 엠 마더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강하다..뭐 이런 거 할라고 한건가.
'라일리'는 눈 앞에서 남편과 아이가 다른 사람의 손에 살해되는 걸 목격하게 된다. 범인을 보았고, 그래서 누가 범인인지 지목했지만, 부패한 경찰과 판사는 오히려 그녀를 정신병동에 가두려 한다. 나쁜 짓을 한 놈에게 벌을 줄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니, 자기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피해자인 자기 편이 되어주려 하지도 않다니. 그녀는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그래서 그녀 스스로 악을 응징하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남편과 딸을 잃고 5년이 지난 후, 그녀는 아주 강한 여자가 되어서 관련자들을 죽이고 다니기 시작한다. 남편과 딸을 쏘았던 놈들과, 그걸 지시한 배후와, 판결에서 그들을 풀어준 판사까지.
자, 아래 사진은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지 못한 판사의 집에 찾아가 복수하는 장면이다.
라일리는 가차 없다. 결국 저 판사의 두 손을 책상에 못으로 박아두고 '네가 정의롭지 않아 내가 정의롭겠다' 며, 그녀는 판사를 불태운다. 봐주고 뭐고 없다. 그간 그렇게 잘못된 판단을 얼마나 많이 내렸을까. 가장 정의로워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 부패했어? 오케. 죽어.
지옥에 가라.
판결 똥으로 하는 판사들아. 정의가 찾아갈 것이다. 당신들을 응징할 것이다.
그녀는 수십명을 죽였다. 그러나 SNS 에서는 그녀를 응원한다. 경찰이 못하고 판사가 못해준 걸 직접 하는 그녀를 응원한다.
우리를 슬프게 했지?
지옥에 가라.
어제는 다섯 권의 책을 주문했고, 오늘은 세 권의 책을 주문했다.
이건 딱히 지옥에 갈 일은 아니다. 누구도 슬프지 않잖아요?
킁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