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번과 마녀》때도 그랬는데 이 책 《혁명의 영점》에도 '서문'이 있는데 '들어가며'도 있다. 아아, 실비아 페데리치는 왜 본문에 들어가기까지가 이다지도 힘든가. 게다가 서문이며 들어가며 읽는 글이며 쉽지도 않아. 아아, 도대체 본문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긴장되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렇게 본문에 똭- 들어갔는데, 와-
신이시여.
정말이지, 인정사정없이 도끼를 가지고 휘두르는 느낌이다. 기다랗고 날카로운 무기로 거침없이 쑤셔버리는 느낌이야. 몇 장 읽지 않은 본문에서, 와- 잔인한 말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가사노동은 다른 직업들과 같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조작행위이자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의 분파들을 상대로 이제까지 자행했던 폭력 중에서 가장 미세한 폭력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p.38)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적 계약의 일부가 됨을 의미하고, 그 의미에 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노동자가 일을 하는 것은 그 일을 좋아하기 때문도, 그 일이 자연스럽게 그 노동자에게 찾아왔기 때문도 아니다. 그 일이 삶을 허락받는 유일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p.38)
가사노동의 차이는 여성에게 강요된다는 점뿐만 아니라 내면 깊이 자리한 여성 특유의 기질에서 비롯된 자연적 속성, 내적 욕규, 열망[에서 기인한 행위]로 변신했다는 점에 있다. 즉, 가사노동은 부불노동이라는 운명 때문에 노동으로 인식되기보다는 타고난 자질에서 비롯된 행위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자본은 우리에게 가사노동이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이라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우리가 무임금노동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했다. 결국 부불 가사노동이라는 조건은 가사노동은 노동이 아니라는 보편적인 가정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덕분에 전 사회가 비웃어마지 않는 사유화된 부엌-침실에서의 말싸움 정도를 제외하면 여성들은 가사노동을 거부하는 투쟁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고, 이 때문에 투쟁의 참가자가 대폭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투쟁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바가지를 긁는 년들이라고 생각한다.(p.38-39)
사랑 때문에 결혼한다는 환상을 품고 있는 여성들이 많고, 돈과 안전 때문에 결혼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사랑이나 돈은 결혼과 거의 관련이 없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엄청난 노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힐 때가 이제는 되었다. (p.39)
자본은 여성을 희생하여 진정한 걸작을 만들어냈다.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을 거부하고 가사노동을 사랑의 행위로 바꿔 놓음으로써 일거다득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먼저 터무니없이 많은 양의 노동을 거의 공짜로 획득했고, 여성들이 이에 거부하는 투쟁을 일으키기는커녕 인생 최고의 일로 가사노동을 추구하게 만든 것이다. (p.40)
자본은 여성이 남성노동자의 노동과 임금에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남성노동자 역시 통제했다. 그리고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뒤 집에 가면 부릴 수 있는 하녀를 붙여줌으로써 이 통제에 순응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여성의 역할은 임금을 받지 않으면서도 행복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노동계급"의 하녀가 되는 것이다. (p.40)
하느님이 아담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이브를 창조하신 것과 똑같이 자본은 남성노동자를 육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충족시키고, 그의 아이들을 키우며 그의 양말을 기우고 자본이 그를 위해 마련한 사회적 관계(고독의 관계)와 노동 때문에 그의 자아가 산산조각 났을 때 이를 다시 이어 붙일 수 있도록 주부를 창조해냈다. 바로 여성이 자본을 위해 수행해야 하는 역할과 관련된 바로 이 같은 육체적, 정신적, 성적 서비스의 독특한 결합 때문에 주부라는 이름의 하녀라는 독특한 집단이 만들어지고 주부의 노동이 힘겨우면서도 동시에 눈에 띄지 않게 된 것이다. (p.40-41)
대부분의 남성들이 첫 직장을 잡자마자 결혼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직장이 생기면 결혼비용이 생기기 때문도 있지만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누군가 집에 없을 경우 조립라인이나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미치지 안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p.41)
와... 실비아 페데리치는 뭐, 생각하는 걸 그대로 그냥 쏟아내버렸다. 위에 인용한 부분들이 36-41 페이지의 부분들인데, 사실 그냥 본문을 다 옮겼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무지개 색연필 들고 책 읽다가 너무 줄을 그어대서, 아아, 얼마전에 열자루 사놓길 잘했다고, 내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담쓰담. 보면, 참.. 애가 현명해. 앞을 내다볼 줄 알아..
아아, 여러분 혁명의 영점을 시작합시다.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겁나 흥분되고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아아아아. 미치겠다 진짜.
책날개 보면 실비아 페데리치의 책 두 권이 '근간' 이라고 되어있던데, 네, 제가 다 읽겠습니다!
이 책 다 읽기 전에 무지개색연필은 준비해 두었는데, 아무래도 스티키 북마크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스티키 북마크 주문하기 위해 책을 좀 주문해야겠네. (응?)
아아, 여러분, 혁명의 영점 읽읍시다. 와- 세 장 읽었는데 장난 아니네요. 피가 끓어올라요.
부글부글 부글부글..
이 책 필사해볼까? 라고 생각하다가 아아, 귀찮다, 그러지는 말자, 하고 금세 포기했다. 킁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