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또 누군가에게 그 감상을 말한다면,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듣거나 읽고 다음 읽을 책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어제 북플을 살펴보다가 북플 친구가 책 두 권을 함께 링크해 감상을 써둔 것을 보았다. 그 책 두 권은 내가 영화 《서치》얘기를 하면서 나란히 링크해두었던 책들이었다. 나의 한 페이퍼에 있던 그 두 책을 나란히 읽고 그 감상을 적어둔 북플 친구를 보니, 아 우리는 서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란히 링크해둔 그 책을 그대로 읽은 북플 친구라니. 그간 그 분과 나는 이 공간에서 따로 어떠한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사이가 아니어도 이렇게 북플이란 앱에서 알게 되어 책 읽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나를 즐찾한 이천명이 넘는 사람들 중의 거의 대부분은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내 글을 읽으러 들르긴 하지만 조용히 글을 읽고 조용히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찜해두고는 읽거나 또 글을 쓴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내가 즐찾한 많은 분들의 글을 읽고 부러 말을 걸 때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 이런 책을 읽고 이런걸 느꼈구나' 하고는 돌아와 그것들이 쌓여 내 독서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아주 작게, 정말 작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더러는 아주 크게.



- 주말에 친구에게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글 좀 쓰라고 엄청 버럭버럭 댔는데,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나 역시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고 싶었다. 페미니즘 책장 한 칸은 따로 마련되어 있는 터라, 그 앞에 가 섰다. 자, 무얼 읽을까? 이 책을 집었다 놓고 저 책을 꺼냈다 놓았다가, 결국 내가 선택해 꺼낸 책은 '마리 루티'의 이 책이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이미 마리 루티의 책 한 권을 읽었던 사람으로써 기쁘고 반가운 마음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읽지도 않고 악플을 다는 것을 보았다. 감히 니가 뭔데 전문가인 과학자와 진화심리학자들에 대한 불만을 말하느냐, 는 것이 악플들의 내용이었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잘못됐다는 걸 사실 속으론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악을 쓰는 경우가 생긴다. 이 책에 대한 읽지 않고 쓴 평들은 바로 그런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마리 루티는 직접적인 악플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는데, 그 악플은 이곳에 달린 악플과 다르지 않았다. '남자는 이런 종이고 여자는 이런 종인데 그걸 왜 부정하냐!라는 글이었다. 이 글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써놓고는 개인에 대한 모욕적인 글들을 꼭 덧붙인다. 마치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의 기를 죽이겠다는 듯이.


마리 루티에게 달린 악플들은, 어제 읽은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들에 등장한 못난이 남자들과 닮았다. 내 유혹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내 뜻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너무 싫고 짜증나서 상대에게 쌍욕을 하는 거. 이건 여우의 신포도보다 더하다. 여우는 자신이 먹지 못할 포도를 분명 '실거야'라고 생각하고 돌아섰지만, 이 악플러들은 굳이 '너는 시어 이 미친 신포도야!!' 라고 하는 꼴이랄까.


나는 내가 왜 그많은 시간동안 남자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차갑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알고 지낸 삼십 몇 년이 너무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 누구보다 흥분을 잘하고 감정적이고 일단 화부터 내고 큰소리치는 존재들인데, 머릿속에 '여자들은 감정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편견을 꽉 틀어박고서는, 여자의 논리적인 반박에도 '너는 감정적이야'라고 대응하는 걸 볼 때마다 "응????????????????????" 이렇게 되는 거다. 아마 논리가 무엇이고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는채로 그냥 세팅되어 있는 것 같다. 남자는 논리적 여자는 감정적. 후훗. 감정적인 게 나쁜 게 아니고 논리적게 더 우월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 머릿속의 셋팅은 저렇게 되어있고, 저것은 자신들이 가졌다고 생각한 것-그러나 실제 갖지 못한것-을 더 우위에 두게 만든다.



출근길에 이 책의 머리말만 읽는데도 온 몸이 근질거린다. 벌써부터 뒤의 이야기들이 궁금해 몸이 들썩인다. 마리 루티, 힘내요!



나는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일쯤으로 여기고 그 일을 털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몇 가지 점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첫째는 많은 악플러들이 드러낸 우쭐한 여성혐오였다. 그들은 과학 탐구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에 대해 악의적인 말을 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p.40-41)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축으로 하는 성 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만은 제발 하지 말아라. (p.35)




- 《밥블레스유》에 '정해인'이 나왔다. 나는 정해인에 대해서라면 아무 관심이 없는 노관심의 사람이지만, 그 편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송은이가 정해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정해인이 송은이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거다.


"누나 전화하셨었어요?"


나는 이 순간 정말이지 막 웃음이 났다. 물론 당연히 전화했으니까 부재중전화가 찍혔겠지 이놈아, 그걸 뭐 말이라고 물어봐 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저 말, '누나, 전화하셨었어요?' 이 말이 너무 다정하게 느껴지는 거다. 누나, 누나라니...


누나라는 말을 내가 남동생말고 들어본 적이 있기나 하던가... 내가 연하의 남자들하고 연애하고 돌아다녀도 그들이 내게 누나라고 부르진 않았고, 나 역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아, 누나라니, 너무 다정한데? 갑자기 나 역시 누군가로부터 '누나'라고 불려지고 싶어지는 것이다. 으악, 어떻게 누나라고 불려지지?


이 얘기를 회사 동료에게 하니, '우리 남자직원들한테 누나라고 부르라고 할까요?' 하는데, 상상해보니 아으- 너무 징그러운 거다. 으악- 싫어, 그러지마! 하면서, 내가 그간 연하남과의 연애에서 왜 나를 누나라고 부르도록 하지 않았을까..지난 시간이 후회되는 것이야.


누나.


나 너무 누나 소리를 들어야겠는데. 칠봉이 너, 다시 돌아오기만 해봐라, 이번엔 누나라고 부르라고 할거야. 으르렁-


누나. 너무 누나 되고 싶네. 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마리 루티의 책에 연하의 남자에 관련된 부분이 있었다. 다시 책 인용 들어가시겠다.



내가 처음 올린 글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퓨마' 현상에 대한 농담 섞인 짤막한 글이었다. 퓨마 현상이란 연상의 여성이 연하의 남성과 데이트하고 때로는 결혼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그 글에서, 연상의 여성이 연하의 남자와 자는 이유는 생식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애가 타서 폐경이 닥치기 전에 마지막 시도를 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진화심리학 논증을 조롱했다. 나는 연상의 여자가 연하의 남자와 연애하고 싶은 이유들은 그 밖에도 많다고 지적햇다. 연하의 남성들은 평등주의적인 성 문화에서 사회화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그 결과 그들은 여성성에 대한 구태의연한 이상들을 들먹이며 여성들을 숨 막히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상의 남자 가운데 이런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젊은 남성들 -특히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는 것이 더 쉽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최근들어 남성과 여성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르게 변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나이가 좀 있는 여성들 가운데 일부는 섹스가 좋다는 단순한 이유로 섹스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아기를 낳는 것이 연상의 여자가 근육질의 젊은 남자와 자는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p.38)



이 나라에서 연하라고 해서 특별히 더 성평등을 장착했다고 보여지진 않지만, 나는 마리 루티의 말에 깊은 공감을 했다. 평등주의적인 성문화에 아무래도 더 사회화 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러나 '꼭' 그런건 아니다. 연하라고 해서 성평등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정말 그렇다. 세상에는 빻은 연하남이 쌔고 쌨으니까.




- 토요일에는 제주에서 있는 강아솔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사실 나는 알지 못하는 가수였는데, '니가 좋아할거야'라는 친구의 말에 무작정 가서 보고 듣게 됐다. 친구의 말대로 콘서트는 좋았다! 강아솔의 목소리며 노래들도 하나같이 너무 좋았는데, 일단 콘서트 시작에 앞서 강아솔이 무대에 자리잡았을 때 콘서트장(까페였다)의 뷰도 어찌나 좋았는지!!



(강아솔 님은 콘서트에 앞서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창밖으로 바다와 노을이 지는 것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아아..... 제주의 하늘은 얼마나 낮던지, 아름다운 구름들과 구름들의 색이 바뀌는 것을 나는 계속하여 목격하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아, 아름다운 제주여...


여담인데, 같이 제주의 하늘을 보며 감탄하다가 그 친구와 '먹고사는 일이 해결된다면 너는 제주에서 살고 싶냐 하노이에서 살고싶냐' 라고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는 고민할 새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나는 제주지!' 응.. 그렇구나. 나는 하노이... (응?)


아무튼 그렇게 점점 까맣게 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좋은 노래들을 가만가만 들었다. 나는 처음 보고 듣는 가수인데 벌써 3집 가수였다.













콘서트장에서 강아솔의 3집 CD 를 팔고 있길래 친구와 하나씩 구매하고 싸인을 받았다. 그리고 노래를 듣던 중에 '온전한 그대를 원해요'라는 가사에 꽂혀서, 얼른 핸드폰을 꺼내 가수가 말하는 노래의 제목을 적어두었다.







-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게되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어제 일요일 오전의 대화가 그랬다. 대화를 하다가 내 진심을 들여다보고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진심은 나도 모르는 사이 입밖으로 말이 되어 나왔고, 말해놓고 나자, '아, 이것이 내 진심이구나, 내가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선택한 것은 바로 이 이유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것이다. 나 혼자서 늘 고민하고 생각하고 되물어도 분명하고 명징한 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가, 대화도중에 벼락처럼 찾아온 것이다.


그래, 내가 원하는 건 이것이었어. 이것이었구나. 이것이 나의 깊은 진심이었어.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나는 항상 내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있었고, 진심 역시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대화로 인해 더 분명해졌달까. 분명해진 내 진심을 들여다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나조차도 놀라긴 했지만, 당연하구나 생각도 했고. 그러자 더 힘이 났다. 지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에너지를 얻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또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내 경우에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도 분명히 그 한 방법이다. 대화를 함으로써 마음이 좀 후련해지는 것도 있지만,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도 한다. 어제처럼, 분명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가능해지고. 내가 잘한 것을 일깨워주는 것도 또 내가 잘못한 것을 지적해주는 것도 모두 나를 만나는 타인으로부터 가능해진다. 로스토프 백작에게 다른 많은 친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필요하다. 다른 좋은 사람들.




- 어제 수키 시리즈에 나왔던 문장을 찾고 싶어서, 그런데 그게 어떤 책인지를 몰라서 시리즈에 내가 포스트잇 붙여둔 데마다 읽어보는데, 다 내가 표시해둘 만큼 좋은 문장들이었다. 좋고 당당한 문장들. 아아, 이렇게 붙여놓은 나 칭찬해. 그리고 이런 글귀 나올 때마다 표시해둔 나 잘했다. 역시 책 너무 좋다. 책 너무 좋고 글 쓰는 것도 너무 좋다. 나는 활자중독증 뭐 이런 건 아니지만, 뭐랄까,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고 보고 듣고 배우고 또 말하고 싶다. 그렇게 하는 게 책이 있어서 가능해진다. 책 너무 좋다. 내가 하고 싶은 말, 그리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까지 다 나와 있는 책은 정말이지 너무 좋은 것이야.


나는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늙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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