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정보없이 이 책을 꺼내들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건 아니었지. 어딘가에서 에로틱하다는 평을 본 것도 같았다. 그래, 에로틱한 걸로 가주자, 하고는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 실린 「만」이 동성애 이야기여서 깜짝 놀랐다. 아니, 동성애 이야기였어? 이미 결혼한 여성과 아직 미혼인 여성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인데, 미혼 여성이 너무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기혼 여성이 반하고...뭐 이러면서 이들 사이에 미혼 여성의 남자 애인이 끼어들어 이들의 사랑을 훼방놓고 질투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거짓말과 오해, 음모..같은 얘기들이 나오다가, 갑자기 기혼 여성의 남편이 기혼 여성을 거기서 빼내오려고 하다가 미혼 여성과 또 사랑에 빠지게 되고...여튼 복잡하고 이해가 될듯하다가도 아아 무슨 막장이냐..싶은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아마도 이 책으로 처음 만나는 것 같은데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자였다는 얘기가 책 뒷편에 실려있다. 대체, 이런 작품을 쓴 것이 왜 노벨문학상에 거론되는 것인가.... 하다가, 다음 단편,「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를 읽었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시게모토의 어머니는 왜 나오지 않는가 의문을 가질 정도로 처음에 육욕과 방탕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판을 친다. 책에서는 '색욕'으로 표현되는데, 빼어나게 잘생긴 두 미남자가 세상 여자들을 다 건드린다는 얘기인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도대체 무엇이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도대체 여기 어디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온단 말인가...하고 갸웃거리며 읽고 있었다.



일단 이 책에 첫 등장인물 헤이주는 세상 여자를 다 건드린 바람둥이인데, 그러다가 자기 마음대로 잘 안되는 여자, '지쥬노기미'를 만나게 된다. 아무리 유혹해도 좀처럼 넘어오지 않고, 넘어 와서도 제 맘대로 되지를 않아, 아아, 뭐 이런 여자가 다있담, 하며 그녀를 포기하고자 하는데, 그런데 잘 포기가 안되니까, 아아, 어떻게 그녀를 포기하지, 하다 생각해낸 방법이 그녀의 배설물을 보고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그녀의 배설물을 본다면 그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람, 지저분한 걸 배설해내는 사람임을 확 깨닫게 될것이고, 그러니 나는 그녀를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하는 생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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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아, 이 남자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굳이 똥과 오줌을 봐야만 포기가 된다니.... 아, 너무 변태스럽다. 이런 것은 .. 변태가 맞는거겠지? 굳이 왜... 왜 똥과 오줌을... 그것도 변기를 훔쳐내서....그러니까 이 때의 시대적 배경은 책에서 몇 번이나 '덴교 *년' 이러면서 나오는데, 이게 몇 년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대가 아닌 엄청 옛날임은 알겠다. 그래서 변기를 치워주는 심부름꾼 아이가 따로 있는 것. 어쨌든 저렇게 마음 먹은 헤이주는 변기를 훔쳐내기에 이른다. 그런데,




변기에서는 똥냄새도 오줌 냄새도 나질 않는 거다. 애초에 거기까지 짐작하고 여자는 변기에 오줌과 똥대신 다른 것을 넣어둔 것. 그래서 똥과 오줌에서 향기가 나고 맛도...


아니, 그런데, 헤이주는 몰랐잖아. 일단 포기하려고 똥과 오줌을 본거잖아. 그런데 향기를 맡고 왜 향기롭냐..이러면서 맛까지 보는 거다. 똥과 오줌이라고 알고 있던 그 때에도 찍어서 맛을 봐..


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지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나는 진짜 나를 포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건 좋지만, 나를 포기하기 위해 내 똥과 오줌까지 냄새 맡고 찍어 먹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 아 ....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지마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왜그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은 뭘까.

사랑은 사랑 그대로의 사랑.

헤이주는 이미 그걸 짐작하고 다른 걸 넣어둔 여자의 기지에 그녀를 더욱 원하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는 그것을 '그리움만 더 용솟음 친다'고 표현한다. 하아.

사랑한다면 사랑할 수밖에...

사랑, 그것은 아무리 거부해도 찾아들고 아무리 거부해도 좀체 달아나질 않아.

넌 뭐니..

왜 거기에서 훅 다가와서 이렇듯 머무는 거니..



그러다 완전 기가차는 것이,

헤이주가 이미 그 미모를 증명해낸 불륜 상대 '그 분'에 대해 시헤이가 그 여자를 탐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는 이미 오십살 연상의 늙은 남편, '구니쓰네'가 있는 것. 남편보다 40세정도 어렸던 시헤이는 자신의 높은 지위를 이용해 그 남편에게 먼저 다가가서 호의를 베풀고, 그 호의에 감사하는 남편에게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으라' 하는 것이다. 이에 남편은 술에 잔뜩 취해서는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선물로 내어주는 것이다. 애초에 그 선물을 받기 위해 작정하고 간 것이니만큼 시헤이는 이에 '그 분', 즉 구니쓰네의 아내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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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뭘까?

물론, 이제 스무살이 될까말까한 젊은 여자였고, 남편은 일흔이 넘어 오십살 이상 나이차이가 있다지만, 어떻게 된 게 아내의 의도는 1도 없이... 아내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로 이렇게 남편이 다른 남자에게 아내를 건넬 수가 있나. 선물..로 줄 수가 있나. 시대적 배경이 옛날..이라,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모양이었지만,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거다. 게다가 더 어이없는 건, 구니쓰네는 자신의 아내를 진짜 너무나 열렬히, 뜨겁게 사랑했던 거다. 너무 사랑해서 좀체 잊지를 못하는데, 그런 아내를 줘버린 거다... 아, 너무 어리석다 진짜...



자기가 가장 필요로 하면서, 자기가 가장 사랑하면서, 그런데도 그 손을 놔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이 삶을 감당하나, 눈물을 주르륵 흘릴거면서 손을 놓는 거다. 아, 너무 바보야. 어떻게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냈어야지. 계속 자기가 옆에 있었어야지. 왜 보내.


물론 구니쓰네는 자신의 성생활이 예전같지 않음에 젊은 아내에게 미안해했다. 그러니 자신보다 훨씬 젊고 또 신분도 높은 남자에게 보내는 것이 아내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잘한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닥쳐온 큰 아픔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오랜만에 심규선의 <아라리>를 듣는데, 젊은 청년1이 내게 '왜그렇게 눈물 나는 노래를 듣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결국 가지말라고 말해서' 라고 답했다. 그래, 심규선은 자신의 노래 <아라리>에서 잘 가라고, 행복하라고 해놓고서는, 사실은 가지말라고, 나를 두고 가지 말라고 하는 거다. 아아, 이것이 본마음이다!! 물론, 그렇게 가지말라고 부르짖는 심규선 조차도, 속으로 외치는 말이긴 하지만...








왜 나도, 구니쓰네도, 심규선도, 다 속으로만 울부짖을까. 왜 가지말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저렇게 손을 놓고나서, 그게 너를 위한 것이다, 라고 한 뒤에, 그러면서 처절하게 우는걸까.




어느 밤, 구니쓰네는 아들에게 이런 시를 들려준다.





아아, 이것은 내가 쓴 시인가요... 나에게로 빙의해 쓴 시인가요.. 어떻게 이런 시가 있지. 이 책에서는 이 시의 제목을 <밤비>라고 말하던데, 구니쓰네가 울 때 나도 운다...심규선도 같이 운다... 엉엉 운다...






구니쓰네는 이별 후의 과정을 충실히 밟는다. 미친듯이 술에 취한다. 그렇게 해야 아내를 잊을 수 있다는 듯. 그렇게해도 아내를 잊을 수가 없어, 그는 이제 불교에 빠져든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못해 술의 힘으로 잊으려 해보았으나 술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부처님의 자비심에 의지하려 한 게 아닐까.' (p.293)



나 역시 이별 후의 과정을 충실히 밟았던 적이 있다. 이별 후에 미친듯이, 매일 술을 마셨던 것. 매일 울기도 했고. 덕분에 육체의 여기저기가 고장이 났었다. 영화 《러브, 비하인드》에서의 여자도 폭음을 하고 폭식을 하고 마약도 한다. 우리는 잊기 위해 이렇게나 기를 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드플레이의 노래에서처럼,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널 잊는 방법은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런데 부처님의 자비심이라니! 아아, 나도 부처님의 자비심에 기대야 했던걸까? 부처님의 자비심에 기댔다면, 나 역시 모든 아픔을 잊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부처님의...자비심은.....그렇게 해주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막장인가, 에로틱인가... 생각하게 만든 이 책이,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의 끝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바뀌어버린다. 시게모토는 구니쓰네와 아내의 아이인데, 그렇게 다른 남자에게 엄마를 뺏겨버려 평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거다. 어릴 적에야 가끔 엄마를 찾아가 엄마 품에 안기기도 했지만, 엄마가 그 집에서 아들을 낳고 나서는 그 집에 찾아가지도 못하고 평생 그리워하는 것. 이 그리움이 표현되면서부터 책은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데, 야, 이러기 있긔없긔. 비바람에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듯, 아름다운 문장들이 와락 쏟아져 내리는 거다. 그리움과 풍경묘사가 고요하고 아름다워서, 야, 갑자기 이러면 날더러 어떡하랴는 거냐, 싶어지는 거다. 일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으면서도 풍경 묘사에 아름답다 생각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는데, 시게모토가 쉰이 넘어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데에는, 와, 정말 '와락' 아름다움이 쏟아지는 거다. 발길을 어머니에게로 이끄는 힘이 느껴지고 그 신비한 힘에 나조차 끌려가는 느낌이랄까. 뭐죠...뭡니까, 다니자키 준이치로.... 책의 분위기가 이렇게 갑자기 확 바뀌어도 되는겁니까......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그 후반부 때문에, 갑자기 좋아지고 말았다.....




기다리던 윤김쌤의 책이 나왔다. 기존에 내가 리뷰를 쓰기도 했던 책, 《헬페미니스트 선언》의 개정판인데, 내용을 더했다고 한다.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오자마자 다정한 친구가 내게 선물로 보내주었어. 그래서 내게로 오고있다. 꺄울! >.<


















그나저나,

나는 오늘부터 부처님의 자비심에 기대어볼테다.


아라리를 들으면서...

구니쓰네, 같이 들어요.... 이리와서 나랑 아라리를 들읍시다.....




그리도 찬, 서리 같은 마음 어찌 품었나
너는 하오에 부는 바람만큼 온화했는데
우는 날 떼놓고 걸음 어찌 걸었나
하염없이 비 내릴 때 너도 억수처럼 울었나

떠나가소, 아주 가소 지금보다 더 멀리 가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헛된 희망 또 품음이라
나를 두고 가신 임 천리만리 더 멀리 가소
발병일랑 나지 말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소
행복…. 하소

연무처럼 흩어지는 맘 어찌 붙잡나
너는 그믐에 피는 손톱달처럼 저무는데
기어이 돌아서는 널 어찌 탓할까
너는 아무도 몰래 받을 벌을 다 받았는데

떠나가소 아주 가소 지금보다 더 멀리 가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헛된 희망 또 품음이라
나를 두고 가신 임 천리만리 더 멀리 가소
발병일랑 나지 말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소

언약과 증표 가련한 맹세여 다시없을
사람
마침표 없는 문장을 가득히 눌러 안고
안으로 외치는 말

가지 마소 가지 마소 나를 버리고 가지 마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멀리 멀리 저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두고 가신 임 십 리도 못 가 발병 나소
아라리요, 아라리야 끝내 떨치고 가신 임아
돌아보소…


간 밤에 꾼 꿈결인 듯 전부 다 잊고 행복 하소
나를 두고 가신 임아 누구보다 더 행복 하소
행복…. 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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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8-05-1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입학시험을 모두 다 마치고 릴렉스하려고 락방님 글 찾아들어왔지요 근데 아라리를 들을 수가 없어ㅠ너무 듣고 싶은데ㅠ전에도 유튭이 안들려줘서 못듣고 말았는데ㅠ부처님의 자비심에 저도 기대고 싶을만큼 딱히 생각나는 분이 없다는게 더 마음 아립니다..여긴 여전히 덥고 굿즈 보니 사고싶고 한국말 책보고싶고 그래요♡아라라,아라리두요

다락방 2018-05-14 08:54   좋아요 0 | URL
클래비스님, 한국어 책 파는 곳 없나요? ㅜㅜ 있으면 탁 찜해두고 우울할 때마다 가보면 될텐데요. 그러면 뭔가 힘도 나고 좋을텐데... (시무룩)

시험 다 마친것 축하합니다. 시험 치르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토닥토닥 좀 쉽시다. 릴렉스~
주변에서 한국어책 파는 서점 찾았으면 좋겠어요. ㅠㅠ

clavis 2018-05-1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음식 파는곳을 한번씩 보면 심 본듯 기뻐하지만 한국말책은...ㅠㅠ그래서 알라딘님에게 절하는 중이에요 무료 전자책을 무조건 보고 있어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