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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ㅣ 네버랜드 클래식 13
케니스 그레이엄 지음,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 그림, 신수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딘 검색만으로도 다른 삽화를 사용한 버전이 몇 개나 보이는, 유명하기 그지없는 작품입니다만 첫인상은 역시, 100년 전의 신사들의 많은 행각이 그러하듯이 이 소설도 엄청나게 게이하다는 겁니다. 보는 시간의 3분의 1은 내가 [윌&그레이스]의 한 장면을 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피크닉 바구니로 시작해 파티로 끝나며, 그 사이의 내용은 사교적인 방문, 어이없는 소동, 나이트 가운과 스모킹 재킷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유명한 작품을 이제서야 읽는 제가 가장 놀란 것은 미스터 배저는 그렇다 치고 래티, 모울, 미스터 토드가 소년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녀석들 애들이 아니라 어엿한 신사였어! 그리고 래티는 배를 젓고 모울의 디폴트 코스튬은 스모킹 재킷입니다. 이뭐...
케네스 그레이엄Kenneth Grahame (1859-1932)
풍경은 시적이고 생활은 풍요로우며, 우정은 아름답고...래티의 집에는 언제나 불이 타오르는 따뜻한 벽난로가 있고, 피크닉 바구니에는 차가운 닭고기 차가운 혓바닥 차가운 햄 차가운 쇠고기 오이 피클 샐러드 프랑스 빵 샌드위치 병조림 고기 진저 비어 레모네이드가 들어 있으며...
...고만 좀 해.
네, 이 책은 훌륭합니다. 저 신사분들은 아침을 먹고 돌아서서 바로 점심을 드십니다. 호빗 정도는 따라오지도 못합니다. 저분들은 비잔티움의 꿈에 눈물을 흘리며...아앗, 또 딴 길로 샜다! 아니, 샌 김에 이 이야기 좀 하도록 하지요. 래티가 지나가던 선원 쥐(...)로부터 항해 이야기를 듣고 열에 들떠 떠나려고 짐을 싸다가 친구한테 붙들려서 정신차리려고 훈계를 듣는 대목입니다만 서술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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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울은 깜짝 놀라서 래트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래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건 모울이 잘 알고 있는 친구의 눈이 아니라, 전혀 다른 동물의 눈이었다! 모울은 래트를 꽉 붙잡고 안으로 끌고 넘어가서 넘어뜨리고는 꼭 붙들었다.
래 트는 몇 분 동안 온몸으로 저항하더니,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간 듯했다. 그리고 기진맥진한 듯이 잠자코 누워서 눈을 감고 몸을 떨었다. 모울은 곧바로 래트를 부축해서 일으키고는 의자에 앉혔다. 래트는 풀이 죽어서 몸을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격렬하게 몸을 떨더니 눈물도 흘리지 않고 흐느끼면서 병적으로 발작했다. (p. 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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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없음. 진짜.
읽는 내내 이런
신사의 함정에서 허우적거리게 되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의 원형, 그 근원이 아닐까 싶은 종류의 이야기입니다. 작가
케네스 그레이엄은 아들에게 둘도 없는 멋진 친구들을 만들어 주었고, [Winnie-the-Pooh]의 일러스트로 유명한
E. H. 쉐퍼드의 아름다운 수채화 그림은 숲의 동물들을 정교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미스터 토드의 자동차 피버라든지, 자동차 사고라든지, 체포된다든지, 재판관과 경찰관과 간수가
사람이라든지 하는 가끔 미간을 부여잡게 되는 부분이 있지만서도 그냥 힘을 빼고 킥킥거리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에요.
Trivia
1. 여담인데 쉐퍼드는 사실 위니 더 푸를 무척 싫어했다고 합니다.
2. 본문에 의하자면 래티의 종은
'물쥐Water Rat'입니다.
대체 물쥐가 뭐란 말이냐 하고 검색을 해 봤더니...
...귀...귀여워!
European Water Vole이라고도 부른다는군요. 좀 말을 잃게 만드는 종류의 귀여움이 느껴집니다만, 사진 탓이겠지요. 전 절대 애완용 물쥐 따위를 추가로 검색해 보지 않았습니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