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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지 마
카린 포숨 지음, 김승욱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평점 :
(역시 작년 여름 글입니다)
-아...정말 좋습니다. 요 몇 주간은 그야말로 승승장구로, 취향에 맞는 책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레이븐 블랙],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샤바케]의 3권과 [바로크 사이클]. 이건 물론 나온 지 좀 된 몇몇 책들을, 재미있을 걸 뻔히 알면서도 '재미있는 것만 사긴 좀 그래...' 라는 되도 않은 기분으로 무시하고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대체 재미있는 걸 안 하면 뭘 할 거냐?
카린 포숨의 1997년 Glass Key award(*) 수상작 [돌아보지 마]는...
음.
또 '안 쓰느니만 못한, 뻔한 수식어'를 좀 쓰겠습니다. '특이한 긴장감과 묘한 여운'의 소설입니다. 발란더 시리즈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소설 두 편과 유사한 정서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가장 유사한 느낌을 주는 소설을 고르라면 역시 [레이븐 블랙] 이네요. 분위기와 전개, 안도하지 못할 결말까지 상당히 닮아 있어요. 혹은, 배경과 인물을 모두 털어낸 이야기 자체의 속성이라면 [벌집에 키스하기]와도 비슷하겠네요. 즉, 이런 겁니다-'비밀을 가진 소녀가 살해당했다'.
동기가 중요하지 않은 살인사건이 실제로 증가하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추리소설의 세계에서는 '왜' 란 여전히 필수적인 질문입니다(***). 금전적 이득이든 충동적 살인이든 '왜'를 배제하면 글쎄요, 저는 좀 긴장감이 떨어지고 마는 편이라서요. 그리고 여기서 지금까지 수많은 추리소설의 범행동기 중 하나였던 '비밀' 이 등장합니다. 올 상반기에 읽은 것 중에서만 해도 꽤 되는 것 같군요. 숨기고 싶은 것은 어떤 '사실' 일 때도 있고 '자신' 일 때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높은 확률로 '어디까지 들여다볼 것인가' 라는 도덕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지요. 우리는 어디까지 자신을 내보이거나 타인을 들여다봐도 되는 걸까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은 어디까지가 법적, 도덕적으로 과잉방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단, 고민의 깊이와 시간이 결행의 쉽고 어려움과 비례하는 것은 결코 아니어서 선을 넘는 것은 순식간이며 그 결과는 당연히 법에 저촉됩니다. 법은 수많은 사람을 지켜 주거든요. -ㅅ-
제목의 '돌아보지 마'의 출전은 피요르드에 전해 오는 바다뱀 전설입니다. 바다에서 노를 젓다 보면 배 뒤에서 첨벙거리며 따라오는 바다뱀의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럴 때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군요. 바다뱀을 계속 무시하면 아무 일 없지만, 뒤를 돌아보다가 바다뱀과 눈을 마주치면 사람을 끌고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후회에 가득차서, 혹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성(城)을 지키기 위해. 내가 무너졌던 순간을 지우기 위해. 우리는 모두 약합니다. 지켜야 할 것이라는 유혹에 넘어가기는 너무도 쉬우며...너무 쉬워서 생명이라는 가치에 대한 감각을 잠깐 잃고는 하지요. :] 잠깐 뒤를 돌아보면 금방 그렇게, 바다뱀의 새빨간 눈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 Glass Key Award라면 1992년에 시작되어 그 첫번째 수상작이 헤닝 만켈의 [얼굴 없는 살인자들Mördare utan ansikte]였던 북유럽 범죄문학상이죠. 진짜로 유리 열쇠를 준다고 합니다. (저 상 이름의 출전은 대쉴 해미트.) 대상은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작가에 한합니다. 1993년 수상작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Frøken Smillas fornemmelse for sne], 그리고 2002, 2003년에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이 두 번 연속으로 수상. 그 두 권 모두 한국어 번역본이 나와 있지요. 두 권 다 읽었고 썩 만족했습니다. 이쯤되면 지금 제 취향과 감성이라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추천(혹은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는 상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듭니다! (즉, 아부 한 번 하자면, 한국 안에서라면 영림카디널의 Black Cat 시리즈의 셀렉션이 가장 믿음직하다고 해야겠습니다. :] )
(**) 이게 소위 '북유럽삘' 일지도 모르죠. 이제 겨우 약간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유일하게 '왜' 를 붙일 수 없는 것은 사건이 가진 폭력성의 수위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