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
카르멘 포사다스 지음, 권도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책 읽다가 번역이 입에 좀 걸리면 그 출판사에서 전에 뭘 냈었나 찾아보는 습관, 저한테만 있는 건 아니죠? =_=; 힐끔 넘겨다보니 소설 중에 별로 인상적인 건 없군요. (다행히. ) 좀 걸리는 부분이 몇 가지 있어서,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마땅한 설명이 없어서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저는 이 책의 한국판이 당연히 영어 중역본이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유래하는 걸림과(이를테면 저는 네스터와 같은 인종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그 나라에서 운영하는 케이터링 서비스 업체의 이름이 "Mulberry & Mistletoe" 라고는 생각하기 좀 힘들기 때문에) 자잘한 무지(혹은 게으름)에서 오는 걸림은 이제는 그러려니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주인공 Nestor Chaffino의 이름이 '네스터 채핀치' 가 되었는지는 약간의 해명을 요구하고 싶은데요. :] 웹에서 제가 찾아본 모든 검색결과에서 Nestor Chaffino로 나타나고(오타로 추정되는 배리에이션은 좀 있음), '채핀치' 가 될 가능성은 아무래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Chaffino라는 이탈리아식 성을 '채피노'로 읽었더라도 좀 껄끄러웠을 텐데 너무 멀리 가 버려서 아예 그 점에 대해서는 의문조차 제기할 수 없는 상황. 그 와중에 정정이라도 있나 하고 가 본 출판사 홈페이지에는 이 책 정보가 아예 없습지요. OTL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껍지 않은 소설에는 확실히 뭔가가 있습니다! 애초에 읽기로 마음먹은 것은, "애거서 크리스티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완벽한 배합" 이라는 피가로 지 코멘트가 몹시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저게 대체 뭔 소리냐...=_=' 싶어 마음이 산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감상은, '저 평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입니다. 첫 장부터 주인공은 죽음의 문턱에 있고, 어째서 이런 격한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는가가 펼쳐집니다. 뻔한 암시, 등장인물들의 충돌하는 열정이 연극적 독백으로 서술되고, 한 챕터마다 비극의 실이 짜여...이미 닥칠 것을 알고 있는 비극까지 독자를 끌고 가는 솜씨가 절묘합니다. 여기서 [0시를 향하여] 를 언급하는 것은 너무 진부하겠고, [유니스의 비밀]을 언급하는 것은 너무 무겁겠지만 대략 그런 느낌을 연상해 주세요. 역시 이 소설을 묘사하라면 '연극적' 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해요. 내부에서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비극을 인용하고 있어서뿐만이 아니라...한 챕터가 끝이 날 때마다 연극의 한 막이 끝난 듯한 설레임과 기대감을 안겨 줍니다.
동기는, 그야, 비밀과 비밀과 비밀과 '비밀' 입니다. 마지막 비밀 역시 충분한 암시를 가지고 등장하지만, 그래도 이 결말에는 일종의 콕 쏘는 단편 같은 뉘앙스가 있어요. 좋은 마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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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희 2008-06-2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이 책을 번역한 권도희라고 합니다. 서평 잘 읽었습니다. 지적하신 부분도 잘 봤습니다. 다른 부분은 각설하고, 해명을 바라시는 네스터의 이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제가 텍스트로 받은 책은 2003년 Black Swan사에서 출간된 Little Indiscretions 입니다. 웹에서 찾으셨다는 오타는 거기서 나온 것일 확률이 큽니다. 그 책에는 Nestor Chaffinch로 나와있으니까요. 서평을 보고 아마존에 들어가보니 미국판에는 지적하신대로 Chaffino로 되어있더군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런던판에 이름이 잘못 들어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런던 판을 텍스트로 삼게 되어 문제가 된 것 같고요. 사족입니다만 번역을 하다보면 인명은 제일 신경이 많이 쓰이는 부분이자,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네스터 같은 경우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혼혈이라 어떻게 읽어야 할지 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런던판의 Chaffinch는 말이죠. 아무리 저라도 Chaffino로 되어 있었다면 말씀하시는 것처럼 너무 멀리 가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 정도면 해명이 되었을까요.

eppie 2008-06-25 16:0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권도희 님의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상상하기 힘든 종류의 일이 일어났던 탓에, 본의 아니게 권도희 님께 비난으로 읽힐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를 퍼붓고 말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 보면 설명이 부족했던 것이나 판본의 선정이나 모두, 번역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출판사의 기획 단계에서 벌어진 잘못이었던 것이 커 보입니다. 너무나도 예상 밖의 일이라 말이 좀 심해진 감이 있는데, 죄송합니다. 너무 마음 상하지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위에도 썼듯이 책 자체는 무척 재미있었고, 앞으로도 권도희 님의 번역으로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 글 자체는 예전에 써 두었던 것입니다만, (가장 정확할) 번역자님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으니, 역시 혼자 끙끙거리는 것보다 알라딘에 올리기를 잘 했다고 생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