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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생활의 발견 ㅣ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5
임어당 지음, 김병철 옮김 / 범우사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고백컨대 저는 어린 시절 이 책의 9장의 일부로 추정되는 발췌문을 읽고서 이 책에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었다 해야겠습니다. 진짜로 읽게 되게까지는 정말로 아득한 시간이 걸렸는데, 머리 속을 픽션으로 채우느라 바빠 어지간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수필을 일부러 찾아서 읽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을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 읽게 된 건 절반쯤은 무라카미 하루키도 읽어버린 터 딱히 가릴 게 있나 싶기 때문이요, 절반쯤은 [홍루몽] 병이 도져 또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홍루몽] 병이 가깝게는 이 [생활의 발견]으로, 멀게는 보르헤스의 [픽션들]로 저를 끌고 갔던 것인데, 저 두 가지를 읽고 나니 한층 보고 싶은 생각이 더해 곤란한 상황입니다.
Lin Yutang (1895-1976)
photographed by Carl Van Vechten, 1939
한국에 임어당林語堂이라는 표기로 더 잘 알려진 린위탕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으로 대표되는 서양식 교육을 받았고 후에는 미국과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사물을 보는 그의 눈은 확실히 서양식에 가깝고 실제로 중국에서는 한동안 서양 잡것 취급을 받기도 했지요. 그의 [My Country and My People]이나 [생활의 발견]은, 중국으로 *돌아온* 린위탕이, 서양인의 눈으로 중국을 재발견하고 쓴 글입니다. 어린 시절 '중국 신파를 보는 것도 금지당했으며, 중국 악사의 노래를 듣는 것도 절대로 허용되지 않았'으며, '중국 민족의 전설이나 신화와도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던' 그는 라프카디오 헌이 일본에 반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중국과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방의 동화의 나라로 간 서양의 아이처럼', 기쁨에 들떠 동양으로 돌아왔던 것이고, 그가 받은 서양식 교육은-폼페이를 덮어 묻었던 베수비오 화산처럼-다시 발견될 때까지 중국의 문화를 덮어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보편적인 중국인의 머리 속보다는 린위탕 개인의 머리 속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꾸어 말해, 이렇게 생각하는 중국인이 그 당시라고 해서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린위탕은 '중국인의 눈으로' 미국인의 느긋하지 못함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깊어지면 나만의 세계로 흘러가기 일쑤입니다. YMCA의 서기와 야구 선수를 겸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단순히 당대의 역사적 사실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악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실을 굳이 지적하고 마는 것이 바로 이 린위탕이라는 남자의 귀여움을 말해 주는 부분 되겠습니다.

샹하이 게Chinese mitten crab
(사진 : J. Patrick Fischer )
이것은 오로지 개인적인 취향일 지도 모르겠으나, 린위탕은 정론에 가까운 것을 펴려고 할 때보다 취향에 가까운 것을 이건 좋고 이건 싫고 하며 손꼽아 옹알거릴 때가 훨씬 더 매력적입니다. 물론 그는 어디까지가 취향이고 어디까지가 사상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풍류인입니다만... 이 책은 그런 사상과 그보다 조금 적은 취향과, 약간의 자기모순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은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이 제 9장 '생활의 즐거움' 으로, 이 챕터는 의자와 차와 담소와 담배와 향, 술과 주령을 거쳐 다량의 게(蟹) 이야기로 흘러들었다가 '중국인은 먹을 때가 진짜배기다' 라는 주장을 하고 양복의 해악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아무튼 앞에 열거한 것 중에는 무엇 하나 제가 탐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대호다당(大好茶黨) 운운하는 이립옹의 말에 코웃음을 칠 수도 있는 지경인 것입니다.
결국 원전이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번역은 일본어판을 꽤 의존하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9장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만 10장 '자연의 즐거움'의 추부秋芙와 운芸에게 바치는 글의 인용문에서는 모처럼 콧등이 찡할 만큼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도 작가처럼 이 운이라는 여성이 중국문학에 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 이 책에서 얻은 것이라면 올발이라는 한자어인데 찾아봤더니 마르멜로 올에 마르멜로 발이라고 해서 좀 할 말을 잃었습니다.
Trivia
1. 아래는 린위탕이, 황산곡의 기준으로 서구 문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꼽은 '사상이 약동하는' 얼굴의 주인공입니다.
G. K. Chesterton (1874–1936)
과연.
2. 이런 중국인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하고 탄식했더니 아는 분이 "문화혁명이 있었잖아요" 라고 답하시더군요. 슬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