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삼신할매
박흥주 지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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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연구소 박흥주 선생님의 책. '굿의 현재'에 대한 선생님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고, 선생님이 답사를 다니면서 하나하나 기록한 내용이라 현장감이 있었다.
 
책의 절대적인 분량은 굿의 짜임새, 그리고 생활 양식에 남아 있는 삼신사상에 대한 것인데, 뚜렷한 체계나 목차 없이 엮여 있어 읽기엔 다소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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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의식: 왜 굿인가

- 굿철학과 사상이 빠진 채 논의되고 시도된 예술로서의 굿, 그 결과물로서의 작품은 표피적인 양식론에 그쳤거나, 남의 미학을 동원하여 마음대로 요리했거나, 단지 소재나 활용 대상으로만 취급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 유교와 불교를 한국화시킨 것은 무교일 수밖에 없다. 무교와의 충돌과 타협, 그리고 창조적인 결합. 굿을 주목하는 이유다. 굿에 대한 접근은 과거로의 여행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한다고 하여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뭔가에 의지하려는 심리.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언어이자 인식체계이기도 하다.

- 좋은 것은 가리지 않고 다 가져다 내 것으로 만드는 감각과 생각. 죽음의 순간까지도 '수시변통'이었다. 조선시대의 유교식 장례의식도 냉정하게 분석해 본다면 전경환 선생의 장례의식처럼 굿적인 요소가 짬뽕처럼 뒤섞여 있지는 않았을까 라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격식과 예식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다 나를 위해 있어야 하는 것. 이것이면 어떻고 저것이면 어떠냐. 좋은 것이라니까 다 갖다 쓰면 안 되냐. 내가 새로 만들면 어떠하리. 남들도 좋아하면 그만이지. 근본에서 안 벗어나면 되는 것. 이치에 닿으면 그 또한 법."

- 장례식은 성당에서 치러졌으며, 천주교 묘원으로 운구차는 방향을 잡았다. 성도들이 망자를 위해 연도가를 끊기지 않게 불러 주었는데 그 운율이 충격적이었다. 서양 음악에 대한 훈련이나 경험이 없는 초기 기독교 신자 할머니들의 넋두리 같은 타령조 찬송가 억양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인상이 강했다.

- 굿은 정성이다. 정성을 들이지 않고 굿은 이뤄질 수 없다. 온갖 잡다하고 복잡한 속세의 고민이나 일상사를 잠시나마 잊고 신령님만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모으는 정성. 그 정성의 정점에 신령님은 현현하는 것이다.

- 사회와 집단의 질서와 운영을 위해 일상에서 금지되었던 도덕률과 법률이라는 금기도 함께 해제된 상태이니 그 질펀함과 신명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질서를 위해 평소에는 억눌러야만 했던 짓거리를 공개적으로 다 함께, 일시에, 같은 자리에서 해치워 버릴 수 있다. 이 금기를 풀어 줌으로써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일상의 질서와 도덕의 확고하고도 더한 확립과 유지. 그래서 굿은 항상 공개적으로 행해진다. 신의 이름으로.

2. 굿의 현실

- 제대로 된 굿문화를 찾아보기 무척 어려워졌다. 특히 마을굿과 두레굿이 그러하다. 이미 두레굿은 사라져 버렸다. 개인 무당굿의 끈질긴 전승력과 재생산 현상과는 분명 대비된다. 생성 토대와 전승이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마을굿이나 두레굿의 소멸은 그 의미가 단순할 수 없다. 다른 차원으로의 변신을 통해서라도 회생의 길로 접어들 수는 없을까, 그 희미한 기대감이 내겐 가슴 떨리는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연출되고 각색된 민속경연대회 형식의 재현 행사라면 안달이 나 찾아갈 필요가 없다. 수백 년 이어져 온 역사 현장, 그 생활 현장으로서의 마을굿을 봐야 한다.

3. 굿 제대로 알기

-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서 해양 세력의 부흥과 발흥을 막기 위해 해안을 봉쇄했으며, 농본주의의 조선은 바다를 변방으로만 인식하였다. 우리 문화는 농촌문화뿐만 아니라 산촌문화와 어촌문화로 대별되는 해양문화가 적절히 결합돼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라는 점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인종, 기후, 건축구조물(마루), 음식문화(젓갈), 장례풍습(풍장) 등 어촌문화가 정당하게 인정을 받고 조망을 받아야 할 주요한 근거들이다. 해양문화와 대륙문화의 충돌과 조화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문화를 다시 조명할 필요가 있다.

- 무굿의 구조는 여러 거리로 형성되어 있으며, 각 거리는 그 거리에 합당한 신을 모셔서 원하는 것을 해낸 다음에 신을 다시 돌려보내 드리는 구조를 갖는다. 거리는 연극으로 치면 '막'과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12거리가 내용상 제각각 독립되어 있어, 연극으로 보면 옴니버스 스타일인 셈이다. 신복은 그 거리에서 모실 신의 성격과 실체를 드러내 주는 상징이자 신 자체이기도 하다.

- 정성과 염원을 강력하게 쏟아 부은 부적에 기가 전달되어 응축돼 있기에 사용자가 그 기를 받아들이려는 강렬한 믿음과 정성을 들이면 그 기를 흡수하여 원하는 바대로 변화를 줄 수 있다. 우리의 부적은 단순히 초조와 불안을 벗어나기 위한 심리적 안정을 기대하는 차원에 만족하지 않고, 우주자연과 생명의 원리라고 빋는 3과 삼신을 통해 나 스스로 원하는 바를 이룩해 나가는 주체적이면서 적극적인 방편이기도 하다. 미신이 되는지 훌륭한 방편이자 도구가 되는지는 여기에 달렸다.

- 성주님은 새집 주인이 모셔 들여야만 비로소 그 집안의 성주가 될 수 있다. 성주로서의 신격 부여, 성주 모시기는 사람의 선택과 의향에 크게 좌우된다는 뜻이다. 사람이 원하는 바와 상관없이 항상 존재하면서 영향력을 미치는 토지신과는 다른 점이다. 집이라는 구조물이 인간들의 창조물이듯이 성주의 성립도 인간의 의지에 달렸다.
성주님의 신체는 몇 가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대들보에 붙이거나 매다는 흰 종이다. 그리고 성주단지나 성주독이다. 북어 대가리를 흰 종의로 묶는 형태도 발견된다.
'성주풀이'란 성주굿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집 짓는 과정과 모습을 소리로써 묘사한다.

- 씻김굿을 조정하는 주체는 굿을 주재하는 단골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단골과 고인의 기예이다. 유족들의 반응에 대한 순간 판단에 입각하여 당대 최고의 기예를 밑천 삼아 이를 자유자재로 놀리는 것이다. 이 때 이뤄지는 음악을 시나위라고 하였다.
- 익살스런 차림을 한 가짜 상주가 등장하여 진짜 상주에게 풍자와 해학으로 상주의 속마음을 건드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상여놀이는 다음날 나아갈 상여를 마당에 갖다 놓고 동네 사람들이 상여소리를 하면서 놀이를 한다. 상여놀이는 전국 어디를 가나 있었던 놀이다.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파격적인 우스갯짓을 함으로써 슬픔의 장을 웃음바다로 바꿔 놓는 탁월함과 파격성이 있다.

- 부군당굿, 도당굿에 참여하는 2백여 가구는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지가 동네 전체가 항상 안전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동네의 몇 사람만 좀 고생하면 온 동네가 편안한데 못 할 게 뭐 있느냐."는 주인의식을 여전히 갖고 있다.

- 마을굿은 주기성을 갖고 행해진다. 대개 일 년 단위로 거행된다. 그리고 그 기준은 계절의 변화와 순환에 입각해 있다. 생산 활동과 휴식기간과의 순환 고리, 그 출발점이나 전환점에 마을굿은 위치한다. 뭔가 한 매듭을 확실히 짓고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자리에 제의를 거행하였고, 축제를 마련하였다. 자연, 생산, 노동, 휴식과 놀이가 일관되게 일치하는 삶이었고, 이의 원활하고도 확실한 순환을 꾀하고 기대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대개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음력 정월이거나, 추운 음의 기운이 다하고 따뜻한 양의 기운이 한참 기세를 돋우는 5월 단오이거나, 생산 활동을 다 끝내고 휴식의 기간에 접어든 10월 상달에 마을굿이 크게 행해진다.
마을 단위로 주기성을 갖고, 전환의 저리에서 사람과 산천과 천지 기운이 일치되어 원활하게 상호 보완적으로 돌아가는 삶을 이룩해 내고자 노력했던 우리.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시켜 나가는 짓거리를 우리는 '굿'이라고 했다. 그것을 마을 단위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에 와서 '마을굿'이라 이름을 붙여 부른다. 마을굿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 가장 적절하고 좋은 순간에 함께 만나는 자리이다.

4. 생활양식 속에 남아 있는 삼신사상

- 혼례: 유교식 주자가례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풍습

- 의복: 삼색띠, 노리개, 연지곤지, 굴건의 주름, 고깔 등

- 음식: 쌍합에 만족하지 않고 삼합을 추구한 사례(굴+낙지+쭈꾸미/홍어+돼지고기+김치/콩나물+된장+두부), 제의에 올리는 음식이나 술, 고시레

- 집: 삼간(네 개의 기둥 사이의 주간)

- 문양: 만(삼신의 생명력과 창조력 상징), 삼태극

- 겨울이면 방을 따뜻하게 데우는 구들과 여름이면 사방으로 통풍되는 시원한 대청이 공존하는 가옥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발생과 발달 경로가 이질적인 이 두 가지 속성을 결합시켜내기까지는 긴 세월의 진통과 절충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한번도가 대륙적인 요소와 해양적인 요소가 함께 공존하는 지형 조건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마루에 벽체를 설치하지 않음으로써 밖이라는 속성을 기본적으로 갖지만, 이것을 기둥 안쪽으로 집어넣음으로써 기능상으로는 실내 효과를 만들어 낸다는 이중성.
처마는 치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한옥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처마가 있음으로 해서 처마 밑에 있는 공간은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하는 양면성을 동시에 갖게 된다.
대청마루는 사분합문이란 것을 만들어 달았다. 여름이면 접어 걷어 올린 다음에 천장에 매달아 놓으면 대청마루도 통 빈 공간과 연결시킬 수 있다.
성능 좋은 하중의 전달 매체, 뛰어난 습기 차단장치가 주춧돌이다. 불국사가 1,200 년 동안 지진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그랭이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 터의 주인은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고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생각의 단편이 '터줏대감'이라는 말에서 솔솔 풍겨 나온다.

- 일반적으로 이 만은 불교의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절을 표시하거나 불교를 나타낼 때 이 문양을 표지로 사용한다. 불가에서는 이 문양이 불심을 상징하고, 존재의 바퀴 또는 윤회를 상징한다고 본다. 그래서 석가모니 불상이나 화상의 심장 부분에 이 문양이 쓰인다.
만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사용했다. 십자가 문양의 근원도 이 문양에서 찾을 수 있다. 십자가 문양은 고대 종교의 상징으로서 태양숭배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만자가 갖는 상징성과 무당이 갖는 신의 영력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 삼태극에서는 굳이 사람을 하늘, 땅과 대등한 반열에 올려놓았다. 사람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식의 주체가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 저승에 대한 민간의 순수한 관념은 불교적인 극락과 지옥, 혹은 기독교적인 천당과 지옥처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내세관 역시 미래에 대한 종교적 구원 관념이 없다. 굿은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영혼이 저승인 내세로 간다고 믿는다. 영혼이라는 것이 있어 영혼이 육신과 분리되어 저승으로 떠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본다. 넋은 이승에서의 삶을 죽음으로 끝내면 초상, 소상, 대상을 지내는 동안 이승에 머물러 있다가 3년 탈상과 함께 저승으로 들어간다고 본다. 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넋이 있는 반면, 저승으로 잘 간 넋은 저승에서 영생하거나 다시 현세로 환생하기도 한다. 죽음을 넋의 본원인 저승으로 '돌아간다'고 믿어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저승으로 제대로 갔느냐 못 갔느냐?'가 넋이나 산 사람들 양쪽 모두에게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 여러 악기 중에서도 특히, 피리소리는 저승까지 가는 소리라 하여 삼현육각을 제대로 편성하지 못할 경우 최우선으로 선택하는 선율악기다.

# 단어

- (천부경) 대종교의 설명에 의하면 한배하느님께서 환웅을 통해 백두천산에 내려와 천하만민에게 직접 가르친 것으로서, 교화를 끝내고 승천하면서 내렸다고 하는 <삼일신고>와 더불어 교훈경전에 속한다.
불경, 성경, 주역, 천부경.
- (주역) 글자 그대로 주나라의 역. 단순히 <역>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점복을 위한 원전과도 같은 것이며, 동시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흉운을 물리치고 길운을 잡느냐 하는 처세상의 지혜이며 나아가서는 우주론적 철학이기도 하다.
- (바리데기) 무당의 조상신.
작자 미상의 무속신화. 바리데기가 사령을 통제하는 신이면서 동시에 죽음이라는 현상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데에 있으며, 개인적인 효녀로서의 바리데기가 국가의 공신으로서 집단적 추앙을 받는 영웅이 되고, 다시 모든 사람의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되어 영속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 (청실홍실) 수명장수, 금실을 상징.
- (납채시루) 시루떡+북어+정화수.
- (삼색) 파랑(하늘/남성), 빨강(땅/여성), 노랑(하늘과 땅의 교삽/사람)
- (상산맞이) 산신령께 굿의 내력을 고하는 굿
- (제가집/대주/계주)
- (무감) 일반인이 신복을 입고 하는 굿
- (활옷) 공주가 입는 옷
- (고깔) 삼각상의 모자
- (삼재) 풍재, 수재, 화재 또는 병난, 역질, 기근. 누구나 9년에 한 번씩 걸린다.
- (조왕신) 부엌을 관장하는 신
- (칠성님) 사람의 생명을 점지해주는 신
- (성주님) 한 집안의 길흉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 가신 중 가장 높은 신. 서사무가인 <성주본가>에 나온다.
- (시김새) 전통음악에서 선율을 이루는 골격음의 앞이나 뒤에서 그 음을 꾸며주는 장식음이나 음길이가 짧은 잔가락, 올라가는 음, 내려가는 음, 꺾어지는 음을 일컫는 용어.
- (첩) 반찬의 종류를 세는 단위
- (동티) 한자어로 동토(動土)라고 한다. 신체(神體)를 상징하는 물체나 귀신이 거주하거나 관장하는 물체를 훼손하거나 침범하는 경우 갑자기 질병에 걸리거나 죽게 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이 신벌을 받거나 사악한 악령의 침범으로 동티가 나는 것이다.
- (과년하고도 열석 달) 12월이 있어서 1월이 있으니 한 해의 시작은 1월이 아니라 이미 12월부터이며, 한 해의 마무리는 12월이 아니라 내년 1월까지도 이어진다는 사고. 시간에 대한 이해가 직선적이거나 단선적이지 않고 곡선적이고 순환적이었음.
- (배연신굿) 배서낭님의 신체를 만들어 새 배에 모시는 의례
- (문서) 머릿속에 있는 굿에 대한 지식을 굿쟁이나 광대들이 이르는 말.
- (조상굿) 혈연관계나 지연관계에 있었던 죽은 자와 산 자가 교감하는 자리.
- (시나위) 씻김굿에서 연주되었던 음악
- (다시래기) 다시락(多侍樂). 여러 사람이 같이 즐긴다.
- (부군당굿/도당굿) 마을굿의 일종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두 주인이 되어 마을의 안녕과 동네 사람들의 복락을 위하여 마련하는 대동굿판.
- (조라술) 제물로 마련하는 술
- (잡귀잡신) 원 많고 한 많은 귀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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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영화 혹은 무속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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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 산자와 죽은자의 화해- Mudang-Reconciliation Between the Living and th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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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신굿, 강신무, 세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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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위로받을 수 있는 한국가요가 없었어요. 전 그런 게 필요했거든요. 연애 이야기가 아닌 가사. 그러다 중3 때, ‘루징 마이 웨이’, 길을 잃었다. 첫 작곡. 속에서 나오는 말들을 무조건 다 썼어요. 나는 대화가 안 되는 애니까. 대화하는 게 힘드니까. 노래로 표현하고 노래로 말을 하자.” 작곡은 어떻게 하나. “그냥 멍하니 생활하다 어느 순간 머리에 계속 맴도는 멜로디가 있어요. 흥얼거리게 되고. 그걸 한 달 동안 달고 있다가 곡이 돼요.”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쓰는 거구나. “정말 그래요. 그냥 나와요.” 작곡 배울 생각은 안 했나. “작곡을 배우면요, 작곡 배운 사람들의 느낌이 나더라고요. 전 그냥 자유롭게 쓰는 게 좋아요.” 혹시 신데렐라, 그거 나중에 보니 고칠 데 있던가. “손댈 곳 없어요. 왜냐면 그 순간에만 만들어질 수 있던 거예요. 그게 완벽하고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좀 빈틈이 있고 뭔가 부족하더라도 그 상태로 충분해요.” 그렇지. 그 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까. 고유하지. “맞아요.” 똑똑한 놈.

내가 표현하고 싶고 고민하던 것들이 이미 40년 전에 다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고 정말 충격받았어요. 잠시지만 음악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생각도 했어요. 이미 모든 것들은 이루어져 있는데. 물론 지금의 것을 표현하자고 생각을 다잡았지만. 모든 곡들이 다 훌륭해요. 그 앨범이 내 인생 최고의 앨범이에요.

제가 밖에서는 그런 유대감을 나눈 사람이 없어요. 그런 걸 해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이 사람들이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이 사람들은 밖에 나가면 그런 관계를 이미 맺고 있던 사람들이 있잖아요. 친한 친구들, 사람들. 전 이 사람들뿐인데. 이제 밖에 나가면 달라질 테니까. 그게 너무 슬펐어요.” 그런데 말이야. 모든 것에 대가가 있지. 좋은 것조차. “맞아요. 이런 것도 배웠어요. 사람들은 필요한 부분을 취하는구나. 각자 필요한 부분을 상대방에게서. 그런데 전 그런 게 익숙하지 않았어요.”

근데 음악만 아는 사람, 멋없다. 사람이 음악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거든. 음악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거지. 음악 이외 관심 가는 건. “역사. 다큐멘터리. 옛날 흑백 사진. 오래된 풍경. 그런 거. 아, 남대문 불탔을 때 정말 엉엉 울었어요. 당장 서울로 올라가 남대문 앞에서 노래를 부르자. 존 레넌의 이매진.”(폭소)

이 아이, 시기와 질투, 배신과 이별, 곡해와 비난, 실패와 좌절, 그 모두를 겪게 될 게다. 삶이, 그러하니까. 안전했던 자신만의 공간은 속절없이 침범당할 것이고 옳고 그름은 더 이상 선명하지 않을 것이며 어디까지 불가피한 비즈니스인지 어디서부터 불순한 타협인지 그 경계는 모호해질 게다. 때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요구받는 자신 사이에서 하릴없이 배회할 것이며 때로 명백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경험들을 맞이하게 될 게다. 그때, 그렇게 모든 게 불안하고 불분명하고 불완전할 때, 모든 이의 조언과 충고와 도움이 세상 모든 방향으로 갈라질 때, 이 아이가 기억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장재인을 장재인 되게 한 힘은 애초 장재인 안에 있었다는 걸. 그러니 오로지 자신에게만 귀 기울이면 된다는 걸. 이 말이 하고 싶어 만났다.

(한겨레/ 김어준, 장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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