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매일경제)
 
오랜만에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라는 베스트 셀러를 내놓았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제3의 물결을 시간과 공간과 지식의 혁명으로 이끌어야 부의 창출이 미래에 가능하다는 논지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정부, 학교, 노조도 기업만치 속도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게 제도 혁파가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로 축적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유리한 상황이다. 우리 미래를 걸머질 자라나는 세대에 정보의 바다에서 유용한 지식을 가려내는 안목과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토플러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미국 뉴욕대학 재학 시절 역사와 문학을 공부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의 책은 거의 다 베스트 셀러다.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지식과 전망이 합쳐져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꿰뚫어보는 혜안에서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진실로 알려진 지식도 시대마다 유용성이 다르다는 그의 `폐용지식(obsolete knowledge)`론에서 오늘의 인문학 위기의 허실을 살펴볼 수 있다.

최근 인문학의 위기를 둘러싸고 대학 안팎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의 외면과 사회의 홀대가 위기의 징후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 변화를 읽지 못하는 인문학자의 위기이지 인문학 자체의 위기는 아니라는 반론이 있다. 사실 우리의 경우 사회가 기피하는 것이 인문학 그 자체인지 아니면 인문학 전공학도인지 명확치 않다. 인문학의 중요성은 대학이나 사회에서 모두 공감하고 있다. 기초학문으로서 인문학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지적 시야와 안목을 열어준다. 인문학적 소양 또한 시민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배우게 함으로써 건전한 직업인의 덕성을 제공한다.

물론 지식을 유용도에 따라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시대 변화를 읽는 지식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지식의 현실 적합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IT, NT, BT를 뺀 자연과학이나 공학도 위기다. 시대에 따라 학문에 대한 수요는 달라진다. 모든 학문은 현상을 적확히 설명하기 어려울 때 패러다임의 교체를 통해 위기를 돌파해왔다. 토플러가 간파한 대로 진부한 지식으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인문학의 위기가 운위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문학이 살아 숨쉬는 지식으로 학생들을 길러낸다면 사회로부터 냉소적인 인식도 바뀔 수 있다. 세상은 융ㆍ복합(convergence)으로 가는데 두꺼운 칸막이를 쳐놓고 과연 시대변화를 통섭하는 문제틀의 개발이 가능하겠는지 회의적이다. 인문학은 내부의 장벽을 거두고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 인문학이 위기라면 위기를 가져온 자본주의 시장논리 탓만 하지 말고 세계화로 이어지는 시대적 도전에 대한 학문적 응전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자성이 필요하다.

과연 정부의 지원만으로 인문학이 살 수 있는가. 인문학은 투자한다고 당장 이익이 나오는 학문이 아니다. 먼 미래를 봐야 한다. 정서가 메마르는 경쟁 시대에 인간의 의미를 되새기고 사회를 교화할 수 있는 것이 인문학적 소양이다. 인문학은 부단히 시대와 대화를 통해 대중을 끌어안아야 한다. 급격히 변화하는 현실을 수용하고 그 변화가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줄기차게 천착할 때 인문학은 살아움직일 수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라는 소설로 세계 500대 갑부에 끼는 행운을 안았다. 무려 3억부가 팔린 그녀의 책은 캐릭터,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등으로 엄청난 부를 만들어 냈다. 그녀는 영국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에스터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포르투갈에서 영어강사를 하다가 에든버러에 정착한 그녀는 동화를 쓰기 위해 동네 카페를 전전하면서 소재를 모아갔다고 한다. 여러 판타지 모험담을 쓰면서 결국 대작 `해리 포터`를 내놓았다.

인문학으로 돈 벌자는 얘기는 아니다. 생명수로서 인문학은 문화의 핵심을 이룬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문화의 발전은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여러 학문의 연계발전에 달려 있다. 인문학은 인간구원에 더하여 실사구시의 소임을 다할 수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가 중심이 되는 디지털시대에 인문학이야말로 과학기술에 인간가치를 조화시켜야 한다. 미래 한국의 힘을 인문학의 바로서기에서 찾을 수 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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