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몰리뉴, 레온 트로츠키 外 / 다함께 / 1000원
- 반전 반자본주의 단체인 다함께에서 발행한 소책자입니다. 30여쪽이 채 안되는 분량이지만, 트로츠키의 「테러리즘 비판」을 포함해 다각적으로 테러리즘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테러를 빌미로 사회운동 전체를 억누르려 하는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 외에도, 테러리즘 자체가 가진 심리적 사회적 배경, 그리고 문제점을 명쾌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 저자는 테러리즘과 테러리스트에 대한 태도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테러리즘은 비판하되 테러리스트에 대해서는 옹호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테러리즘은 단지 소수가 다수에 저항하기 위한 '방법'의 문제이지만, 테러리스트는 '피지배계급'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지배계급은 '테러리즘과의 전쟁'이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을 하고 있죠. 어떤 전쟁도 이념(테러리즘)을 없앨 수는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결국 테러와의 전쟁이 의미하는 것은 '지배계급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전쟁'이 될 것입니다.
- 테러를 수행한 빈 라덴의 세력이, 몇년 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의 세력 확장을 막으려 했던 미국 CIA의 물질적 재정적 지원을 받아왔다는 상징적인 사실 외에도, 중동의 반세기 역사는 자원과 영토를 둘러싼 열강들의 침략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것의 연장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 따라서,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오직 '테러리즘'에 대한 비판입니다. 저자는 테러주의가 (1) 테러의 대상이 된 지배계급을 연민의 대상으로 만들어 지배계급에게 탄압의 빌미를 주며 (2) 대중운동에 대한 무기력감을 확산시키기 때문에 비판합니다. 테러리즘의 심리적 근원 역시, (1) 대중운동에 대한 실망과 (2) 지배계급 요인에 대한 과대평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 저자는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사회운동을 예로 들어보입니다. 우리에게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알려진 나로드니키(인민주의자)들은, 본디 (당시 러시아의 절대 다수였던) 농민 대중운동을 위해 대거 농촌으로 투신했던 지식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농민들을 설득하고 조직하는데 실패했고, 그 결과 이내 분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중운동에 실망해버린 이들이 '나로드라야 볼야(인민의 의지)'를 결성하고 테러를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죠.
- 이들은 19세기 후반 짜르 정부의 요인들에 대한 테러를 수차례 시도했고, 그들 역시 목숨을 담보로 하는 대가를 치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희생은,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많은 혁명가들이 혁명운동에 뛰어드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레온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쟁쟁한 혁명가들 역시 어린 시절 나로드니키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죠.
- 하지만, 정작 나로드니키들이 영향을 주어야 했던 러시아의 대중들은 대답이 없었고, 파괴하려 했던 짜르정부 역시 건재했습니다. 이내 새로운 관료가 빈 자리를 채웠던 것이죠. 저자는 이렇듯, '피지배계급의 저항수단'이라는 측면에서 테러를 바라봅니다. 수단으로서 테러는 효과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효과로 기대하는 '대중들의 심리적 고양' 역시, 기대와는 반대로 대중운동에 대한 무기력감을 퍼뜨린다고 주장합니다.
-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계급사회의 소멸'이라는 사회의 발전이, 지배계급 일부에 대한 테러를 통해 인위적으로 강제될 수는 없으며, 오로지 역사적 조건을 통해 발전해 나오는 혁명을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테러 행위를 반대하는 것은 단지 한 가지 이유, 즉 개인적 복수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기 대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도 커서, 장관이라는 관리 한 명이 그것을 다 처리할 수는 없다. 왜곡된 체제에 반대하는 집단적 투쟁 속에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불타는 적개심이 최고의 도덕적 만족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레온 트로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