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티스타 봉기 10주년 전세계 기념행사
연합뉴스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신자유주의 반대와 원주민 권익보호를 요구하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일인 1994년 1월1일 일제히 봉기한 지 10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행사에 돌입했다.
특히 이달 17일은 1983년 11월 17일 좌익운동을 주도하던 학생들과 시민운동가들이 비밀결사조직으로 결성한 EZLN이 공식 출범한 지 20주년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에 사파티스타군의 지도자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최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사파티스타군 홍보지 '레벨디아(반군이라는 뜻)'가 중심이 돼 이번주부터 내년 1월 12일까지 7주간에 걸쳐 멕시코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각종 기념행사를 벌일 계획이라
고 밝혔다.
'EZLN 운동:20년과 10년, 발포와 말'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10일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사파티스타군 소속원들이 사파티스타 역사를 기록한 기념 책자를 시민들에게 배포하면서 공식 개막했다. 뒤이어 멕시코 곳곳에서 원탁회의와 함께 ▲무도회를 포함한 각종 파티 ▲비디오 상영 ▲기념사진 전시회 ▲라디오 프로그램▲사파티스타 활동상을 담은 CD 배포 등이 예정돼 있다.
또한 그 동안의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진보적 예술인들이 기증한 작품을 상품으로 내걸고 가격이 1달러에서 10달러에 이르는 복권을 멕시코 전역에서 판매하는 행사를 포함한 다양한 기금 모금도 이뤄진다.
레벨디아는 멕시코 전역을 비롯해 세계 다른 국가의 일반 시민들도 기념행사에 초대한다면서,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www.revistarebeldia.org)를 통해 다양한 주최 기관이 행사 일정을 홍보하고 일반인들이 정보를 얻는 매개체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벨디아는 멕시코 전역에 걸쳐 계획된 다양한 행사 일정을 접수하기 시작했다면서, 멕시코 외에도 아르헨티나 몇몇 도시를 비롯해 베네수엘라, 미국 텍사스주(州), 칠레, 스페인, 브라질, 이탈리아, 캐나다 등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전했다.
이번 기념행사와 관련해 사파티스타군 전문 집필가인 카를로스 몬테마요르 씨는 "사파티스타 봉기는 세계화의 불합리한 점에 대항한 첫 시민운동"이라면서 "이번 첫 10년간은 사파티스타 운동의 시작일 뿐이며, 사파티스타 활동은 앞으로도 끊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파티스타군은 94년 1월 봉기시 남부 치아파스주(州) 산 크리스토발을 시작으로 멕시코 남동부 6개 도시를 점령해 나갔고 멕시코 정부를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나 정부군의 공세에 밀려 단 12일간의 교전 끝에 휴전이 선언되고 이후 활동 영역이 치아파스주 일부 지역으로 한정된 채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단기간에 그쳤지만 마르코스 부사령관의 스키마스크로 대표되는 사파티스타 무장봉기는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알려졌으며,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남미 지역의 원주민 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결정을 영향을 주었다.
또한 멕시코 국내적으로도 정책결정자들 사이에 원주민 현안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했으며, 나아가 원주민 인권의 중요성과 민주의식을 고양시킴으로써 2000년 대선에서 지난 71년간의 제도혁명당(PRI) 장기집권 체제를 허무는 데도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다.
지금도 정부 보조금을 거부하는 사파티스타군은 정부와의 평화협정은 멕시코 인구의 10%인 원주민에 대해 광범위한 자치를 인정하는 개헌이 이뤄질 때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행동당(PAN) 소속의 비센테 폭스 대통령은 치아파스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고 2000년 12월 취임 직후 원주민 권리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그러나 멕시코 사회의 보수우익 기득권층인 의원들은 주요 조항을 대폭 삭제 또는 수정한 채 의결해 원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이 때문에 폭스 정부가 치아파스주 반군거점 지역의 정부군 철수와 반군포로 석방 등 일련의 획기적 조치를 취했다.
그렇지만 사파티스타 반군은 2001년 2월 원주민 권리법의 의결을 촉구하기 위한 '평화 대장정' 이후 정부와 열었던 협상 창구를 모두 굳게 닫았다. 치아파스주남부 라칸돈 열대우림에서 침묵 투쟁을 벌여온 사파티스타는 현재 인터넷 사이트(www.ezln.org)와 방송국을 만들어 세계 각국 정부와 인권단체와 국제기구들을 상대로 멕시코 정부의 부당성과 기득권 층의 횡포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에 사파티스타 운동을 알리러 왔다'
[오마이뉴스 2003-10-10 19:12]
"사파티스타 운동은 민주, 자유,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 기예르모 미셸 교수가 사파티스타 운동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03 최한성
기예르모 미셸 멕시코 메트로폴리탄 개방대학 교수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이명순)이 주최하는 제3회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8일 밤 한국을 찾았다. 사파티스타 운동 연구의 권위자인 미셸 교수는 방한기간 동안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 투쟁사와 이들이 조직한 '좋은 정부위원회'에 대해 강연을 여는 등 사파티스타 운동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벌이게 된다.
지난 9일 '사파티스타 운동의 발전'을 주제로 한 강연에 앞서 만난 그는 "사파티스타 운동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민주화를 위한 투쟁으로써 사파티스타 운동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리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미셸 교수는 사파티스타 운동을 "'희망의 철학', '평등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아울러 "사파티스타 운동은 민주와 자유, 정의를 추구한다"고 덧붙였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얼굴에 스키마스크를 쓰고 다닙니다. 맨 얼굴을 드러내면 그저 한 개인의 얼굴만 보일 뿐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얼굴을 가림으로써 여자·농민·노동자·어린이 등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고대 마야인들은 주체와 객체가 동일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는데, 그 후손인 치아파스 주민들이 이를 이어받아 사파티스타 운동의 정신으로 계승한 것이지요."
▲ 기예르모 미셸 교수가 자본주의 매스미디어를 비판하고 있다.
ⓒ2003 전미희
미셸 교수는 사파티스타 운동은 자본주의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나가는 운동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사파티스타 운동가들은 '정치세계는 범죄와 거짓, 그리고 배신으로 가득 차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 인간은 자기 본성에 어긋나지 않는 생각과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파티스타 운동의 존재이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겁니다."
그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사회권력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사회권력으로 정치권력을 압박, 자본주의로부터의 인간해방을 달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그 예로 지난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를 들었다.
"당시 결의안이 통과되지 못했던 것은 WTO에 반대하는 세계 각국의 저항세력들이 계속해서 정치권력을 압박했기 때문입니다. 이경해씨의 죽음도 그 같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큰 몫을 한 겁니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세계 민중들의 존엄성을 지킨 것이지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저술활동도 벌이고 있는 미셸 교수는 기성 매체들이 사파티스타 운동을 포함, 전세계 민중운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매스미디어의 경우 민중운동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어쩌다 관련된 주제를 다루더라도 정보를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지난번 칸쿤의 경우 WTO에 반대하는 각국 민중대표들의 활동이 다양하게 전개됐습니다. 그러나 기존 매스미디어에선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각국 언어로 소책자를 만들어 나눠주면서 스스로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미셸 교수는 자본주의 체제 하의 대중매체들이 거대자본에 의해 통제되어 있음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이 매체들은 민중들로 하여금 삶에 있어 진정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 고민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기존 미디어에 맞서 대안매체를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새로운 매체를 만드는 것, 기존 미디어의 사용방식을 달리하는 것 모두 필요합니다. 퍼블릭액세스 운동은 그 중요한 일부로써 큰 의미를 지닙니다. 시민사회의 작지만 다양한 목소리가 기성 매체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권리의식을 표현하는 것 아닙니까."
미셸 교수는 이번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가 우리나라 대안언론운동 활성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파티스타 운동이 한국사회의 자율적인 시민사회 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도 밝혔다. 10월 10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이번 영상제에서는 미셸 교수와 동행한 비디오 액티비스트 칼로니코의 사파티스타 관련 다큐멘터리 다섯 편이 상영된다.
/최한성 기자 (hanmunjung@freechal.com)
“사파티스타 생생한 역사 영상에 담아”
[한겨레 2003-10-10 01:00]
[한겨레]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 참여차 한국온 비디오 아티스트 칼로니코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활동상을 10년째 영상에 담아온 ‘비디오 아티스트’ 크리스티안 칼로니코(46·멕시코 메트로폴리탄개방대학 영화·비디오학과 교수)가 한국에 왔다. 멕시코의 독립 다큐제작 프로덕션인 ‘마르카 디아블로’와 엔지오 단체인 ‘침묵에 맞서는 소리’의 대표이기도 한 그가 서울에 온 것은 민언련이 개최하는 ‘퍼블릭액세스 시민 영상제’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 영상제에서는 칼로니코가 찍은 사파티스타 관련 다큐멘터리 다섯 편이 10~12일 상영된다.
9일 ‘멕시코의 퍼블릭액세스 운동’을 주제로 한 영상제 강연에 앞서 만난 그는 “먼나라로만 여겼던 한국에서 사파티스타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니 정말 뜻깊고 기쁘다”고 말했다. 칼로니코가 찍어낸 사파티스타 필름은 500시간 분량의 대기록이다. 그는 자신의 필름을 “사파티스타 운동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고갱이를 추린 것이 이번에 소개되는 <치아파스:완결되지 않은 역사>(1995), <치아파스:역사와 존엄성>(2001) 등 다섯 편의 작품.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80년대 이후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운동,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고 각자 길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갑자기, 1994년에 멕시코의 오지 치아파스, 그것도 오래도록 소외돼 왔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후예를 통해서 민주주의와 자유, 자율, 공존 같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이 솟아오른 겁니다. 이 운동은 말하자면 하나의 새로운 희망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는 사파티스타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대표적 반세계화 운동이라고 이야기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활약중인 반세계화주의자들의 활동이 시작된 것은 1994년 사파티스타 무장봉기 이후입니다. 반세계화주의자들은 치아파스에 관심을 가진 최초의 사람들이고 실제로 교류를 통해 서로 배워간 겁니다.” 그는 사파티스타 혁명가 마르코스 인터뷰에 얽힌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1995년 사파티스타 혁명가 마르코스에 대한 인터뷰 약속을 받아냈는데, 그 직후 정부군의 군사 움직임이 있어, 인터뷰가 무산되었죠. 긴장의 시간이 지난 뒤 나를 포함한 제작팀 3명은 치아파스로 갔어요.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여러날 지나도록 응답이 안 와요. 할 수 없이 ‘우리는 독립 다큐를 하는 사람들이라 예산이 없어서 돌아가야 한다’는 작별 편지를 보냈죠. 숙소에서 돌아갈 채비를 하던 어느날 밤, 갑자기 누군가 복면을 한 채 기관총을 들고 나타나 ‘너희들 여기서 체포되었다, 누구 맘대로 가느냐’고 외쳤어요. 그게 바로 마르코스 사령관이었죠.” 그렇게 장시간의 마르코스 인터뷰는 성사되었고 그 성과물이 이번에 상영되는 한시간반짜리 다큐 <역사와 말>(1996)이다.
‘침묵에 맞서는 소리’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독립 다큐필름 페스티벌에도 관여하고 있는 그는 퍼블릭 액세스 운동이 필요한 까닭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멕시코는 불과 몇년 전에야 70년 일당 독재가 마감했어요. 퍼블릭 액세스란 공적인 미디어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제작한 영상물을 공적인 공간에서 방영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권리 운동입니다.” 이번 영상제에는 사파티스타 운동 연구의 권위자인 기예르로 미셀 멕시코 개방대학 교수도 함께 왔다. (02)392-0181.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