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오마이뉴스)
 
최근 어느 유명인사가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세계 주요 언론을 장식했다. 뜻밖의 홍보효과에 아디다스는 만세를 불렀을까? 하지만 아디다스는 그 인물과 관계없다고 손사래 치기 바빴다. 그 유명인사는 바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인구나 경제력, 무엇보다 군사력으로 볼 때 쿠바가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는 아니다. 과거 소련이 건재했을 때는 소련 핵무기를 쿠바에 가져다 놓을 뻔한 경우처럼 실질적인 위협도 가능했지만 소련도 망하고 쿠바 경제도 미국의 끈질긴 봉쇄로 숨이 턱에 찬 지금 미국이 쿠바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한마디로 '기분 나쁘다' 정도.

카스트로, 영화서 악역으로 등장했을 법도 한데...
 
미국 턱밑에 자리 잡고 앉아 해가 뜨나 달이 뜨나 반미로 일관하고 있는 쿠바. 이제 와서 새삼 카스트로 의장이 세계인들을 사로잡을 것도 아니고 카스트로 못지않게 미국을 괴롭히던 리비아의 가다피 원수도 손을 든 마당이지만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시작으로 페루, 브라질로 번져가는 반미 성향 지도자들이 남미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진즉에 카스트로를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미국이 손을 놓고 있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쿠바 비밀정보국을 이끌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는 최근 펴낸 책에서 CIA가 무려 638회에 걸쳐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했다고 밝혔다.

CIA의 시도 중에는 카스트로가 즐겨 피는 시가에 폭탄을 장치하거나 수영을 즐기는 카스트로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예쁘게 색칠한 조개에 폭탄을 장치하는 등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수법들도 있었다. 이에 카스트로 역시 자신을 닮은 대역을 세우는 등 영화스러운 방법으로 화답했다.

카스트로에 대한 미국의 애증이 이 정도라면 천하의 악당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즐겨 등장했을 법도 하지만, 뜻밖에도 카스트로는 할리우드에서 외면당했다.

대체로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 대외정책을 추종하거나 예측해서 악당을 세우는 반면 카스트로는 이상할 만큼 무시당했는데 악역이던 엑스트라건 아예 카스트로를 언급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코미디 영화 <총알탄 사나이>(1988) 도입부에는 베이루트에 모인 사악한 지도자들이 등장하는데 카스트로는 책상 끄트머리에 그냥 앉아 있는 걸로 끝이다. 호메이니, 카다피, 이디 아민, 고르바초프의 경우, 클로즈업은 물론 슬랩스틱 액션까지 선보이는데 비해 카스트로는 뒷모습 한 번 보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다룬 영화에서도 등장 안 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진지한 영화 < D-13 >(2000)에서도 카스트로를 찾을 수 없다. 원래 이 영화가 백악관 내부에 중심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하다못해 자료화면 같은 걸로 한 컷 정도라도 나올 법 한데 카스트로는 철저히 배제된다. 백악관에서 핵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인물들은 주름 하나까지 자세하기 묘사되지만 카스트로와 쿠바의 이미지는 거대한 미사일로 대체된다.

할리우드에서 카스트로의 흔적을 간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은 갱스터 영화들이다. 미국은 카스트로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오는 쿠바 난민들을 계속 받아들였고 CIA는 이들을 활용해서 반 카스트로 운동을 조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온 쿠바 난민들 중에는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서 이들은 쿠바계 갱단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중남미에서 생산된 마약을 미국으로 들여와 퍼Em리면서 빠른 시간 안에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알 파치노의 명연기로 기억되는 <스카페이스>(1983)는 쿠바에서 건너와 미국에서 갱단을 형성하는 과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최근작 <마이애미 바이스>(2006)도 마약을 쥐고 흔드는 쿠바계 갱단이 영화를 장악하고 있다.

카스트로에겐 야박한 할리우드, 체 게바라에겐 '관대'

< CSI 마이애미 >에 쿠바 난민이나 쿠바계 갱단을 둘러 싼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특히 쿠바와 가까운 마이애미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들은 좋든 싫든 쿠바를 배경으로 삼기 마련이다.

<스카페이스>의 각본을 쓴 이가 바로 올리버 스톤이다. 스톤은 이때 쿠바계 난민들과 CIA의 관계를 주목하고 나중에 < JFK >(1991)에 이를 반영한다. 쿠바계 난민들로 게릴라를 만들어 쿠바를 침공하려는 CIA의 공작을 반대했기 때문에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주장을 편 것.

올리버 스톤은 쿠바를 방문해서 카스트로를 직접 인터뷰하고 다큐멘터리 <피텔 카스트로를 찾아서>(2004)를 만들어 그나마 카스트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를 남겼다.
 
카스트로는 게릴라로 혁명을 성공시키고 이후 정치가로도 세계 기록을 경신하며 안정된 장기집권을 해 왔다. 그 공과를 따지는 것은 영화 기사에선 벅찬 일이겠지만 서구식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본다면 독재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뉴욕의 까칠한 지식인 우디 알렌은 <바나나 공화국>(1971)에서 쿠바 혁명을 풍자한다. 수염을 기르고 시가를 즐겨 피는, 누가 봐도 카스트로 느낌인 혁명 지도자는 승리와 동시에 돌아 버리는 인물로 묘사되고 차라리 미국인 관광객 우디 알렌이 지도자 노릇을 잘 한다는 농담으로 버무려 버린다.

카스트로에 야박한 할리우드도 그의 동지 체 게바라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게바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가로 변신하기 보다는 혁명가로 산화한 드라마틱한 인생과 게바라 티셔츠가 보여주듯 의미와 관계없이 상업적으로도 널리 퍼져 할리우드도 야박하게 대하지는 못한 듯.
 
오마 샤리프가 주연을 맡은 <체!>(1969)는 지금도 미국 방송에서 심심치 않게 틀어주는 영화고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에비타>(1996)에서는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체 게바라 역을 맡아, 외국에서 온 미남 배우가 게바라 역을 맡는 일종의 전통을 만들었다.

<체!>에는 잭 팰런스가 카스트로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는데 악역도 많이 맡았지만 성격파 배우라 할 잭 팰런스가 카스트로 역을 맡은 것은 그나마 할리우드가 성의를 보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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