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란 무엇인가?> 크리스 하먼 외, 다함께, 2500원

- 反전 反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단체 '다함께'에서 발행한 소책자입니다. 총파업, 봉기, 혁명과 폭력, 소비에트, 프롤레타리아 독재, 혁명정당까지, 혁명에 관련된 주제들을 말 그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혁명'이라고 하면, '폭력'을 떠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어버리고 마는 분들에게 가볍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총파업

"총파업 구호는 노동자 투쟁의 일정한 시점에는 들어맞는 구호다. 단, 그 시점에 이르기 전에, 총파업 구호를 마치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듯 남발하는 것은 잘못이다."

- 우리 역시 '총파업'에 무척이나 익숙하죠. 매번 정부의 정책이 발표될 때 마다, (조직력을 기준으로 볼 때)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조직 민주노총은 늘상 "총파업으로 대응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익숙함과 총파업은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익숙한 것은 '총파업 선언'이겠죠. 총파업은 말 그대로 산업 전체의 마비를 의미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총파업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극히 적었고, 체제의 발달과 함께 산업과 노동자들이 집중된 이후에 그 빈도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노동자계급의 성서라는 <공산당 선언>을 집필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70년대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총파업 선동을 비판했다는 사실입니다. 총파업 선동에 대한 비판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제 노동자 조직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서'(코민테른, 제3인터내셔널, 1919년 설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칫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는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혁명과 총파업의 관계를 질문하게 됩니다.

- 총파업, 그리고 파업의 중심을 이룰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의 산물입니다. 자본주의의 산물인 총파업은, 기본적으로 방어적이죠.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노동조합과 파업입니다. 총파업이란, 노동자계급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투쟁이지만, 그것은 엄연히 어디까지나 체제 내적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그 위력이나 겉모습과는 별개로, 총파업은 혁명과 그 성격을 달리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총파업의 본질적인 성격 외에 또 하나의 진실은, 혁명은 총파업과 같은 대중적인 열망과 지지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총파업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총파업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그 사이에 혁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총파업이란 완전히 패배하거나, 완전히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아무리 궁극까지 밀어붙인 총파업이라 하더라도, 이것을 혁명으로 전환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배계급에 대한 방어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혁명가들이 반대했던 총파업은, 이러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총파업이었습니다. 창을 든 상대를 방패만으로 제압하려는 총파업에 혁명가들은 반대했던 것입니다.

2. 봉기

"프롤레타리아의 능동적 소수가 아무리 잘 조직돼 있어도, 그 나라의 총체적 여건과 무관하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혁명적 사회주의의 상징인 바리케이드는, 공공연한 거리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의미합니다. 이것의 시초는 1830년대 프랑스의 오귀스트 블랑키라고 하는군요. 그가 일으킨 1839년 프랑스 파리의 봉기가 실패로 끝난 이후, 나폴레옹이 바리케이드를 염두해 거리의 폭을 넓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바리케이드는 곧, 혁명의 막바지가 군사적 대립일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역으로, 군대가 특정 시대 특정 정치권력의 최후 보루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일상적 시기에 이들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지만, 사회적 갈등이 극한에 도달할 때 이들은 어김없이 체제의 수호를 위해 정치무대에 등장함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혁명가들은 블랑키의 봉기 또한 비판했습니다. 총파업이 혁명이 아니듯이, 봉기도 혁명이 아니기 때문이었죠. 물론, 봉기는 총파업과 달리 자본주의의 산물은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권력에 대한 방어가 아니라, 정치권력에 대한 공공연한 공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가들이 봉기를 비판했던 것은, 봉기 역시도 총파업과 마찬가지로 혁명의 반쪽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반쪽은 총파업과 같은 대중적인 열망과 지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소수만의 봉기로 혁명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죠. 봉기는 혁명의 필수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3. 혁명과 폭력

"폭력이 따를까 봐 혁명을 뒤로 미루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에게는 폭력을 쓰지 말라고 점잖게 타이르면서도 자기는 서슴없이 폭력을 저지르는 부르주아 정치가들의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 혁명에는 불가피하게 폭력이 수반됩니다. 지배계급은 소수이고 피지배계급은 다수입니다. 계급간의 갈등이 물리적이고 군사적으로 치달았을 때, 소수에 불과한 지배계급은 그 스스로 싸우지 않습니다. 이들 스스로의 저항이라면, 절대적인 수적 우세로 인해 혁명은 폭력 없이 끝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들이 피지배계급의 일부로 하여금 저항하는 피지배계급과 싸우게 만들기 때문에 혁명은 폭력과 군사적 충돌을 수반합니다.

4. 소비에트: 1905년의 교훈

"파업으로 빵을 얻을 수는 있어도, 빵집을 빼앗을 수는 없다."
"봉기는 기예이며, 모든 노동자들이 기예를 이해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 일단 총파업이 일어나면, 노동조합이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일상적인 시기에는 침묵하는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이지만,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직접 행동을 의미하는 총파업 안에서는 고작 전체 노동자의 10% 미만을 포함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전체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게 됩니다. 공장위원회, 파업위원회, 소비에트, 꼬르돈, 등 시대와 국가에 따라 명칭은 달랐지만, 대중들이 광범위하게 행동하고 (전체의 의사를 모아야 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결집되었을 때 새로운 조직은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 이렇게 일반화된 혁명이론이 존재하기까지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1905년 러시아 혁명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경험은, 대중파업이 소비에트와 같은 대중적 정치기구를 통해 진일보 할 수 있으며, 이것은 기존의 정치기구인 의회와 더불어 '이중권력' 상태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이중권력 상태는 오래 유지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1905년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제복 입은 농민들(군대)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 역설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모든 혁명가들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1905년 혁명의 실패가 필요했습니다. 일부 혁명가들은 혁명이 실패한 이후에서야, 이중권력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노동자계급의 독립적인 운동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으니까요.

5.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의 독재, 이 사회는 지금까지의 어떤 사회 보다도 민주주의적이다."

- 이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독재'로부터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 즉 '소수에 의한 다수에 대한 독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다수에 의한 소수에 대한 독재 역시도, 본질적으로는 독재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보통선거'를 통해서도 이 역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소수가 독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가진 보통선거 제도를 통해서 실질적인 불평등을 은폐하려고 하지만, - 그 마저도 100여년 가까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 다수가 독재하는 사회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1917년 혁명으로 수립된 러시아의 헌법은, 자본가, 임대인, 상인, 수도승과 신부, 구 경찰관료의 선거권을 제한했습니다.

-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소비에트와 같은 대중적 정치기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에 기반합니다. 직접민주주의가 사회를 운영하기에 비효율적이며 광범위한 계획경제와 모순된다는 비판에 대해, 저자는 민주주의의 축소가 아니라 확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에게 무척 생소한 것이 사실이나, 간접민주주의(의회민주주의) 가 유권자 대중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와 같은 제도들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두 제도 사이에 교집합이 존재하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란 제도를 넘어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6. 혁명정당의 구실

- 혁명정당의 구실은 앞서 언급된 내용에서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총파업을 혁명으로 전환시키는 준비, 봉기와 같은 군사적 충돌에 대한 준비, 이중권력 상태에서 흔들리지 않고 노동자계급의 독립적인 운동을 대변하는 것, 등의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의견과 행동의 통일이 필요하겠죠. 이것을 '정당', 더 나아가 '혁명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 물론, 혁명정당 이론은 '일당독재'라는 숱한 오해를 해명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저자는 과거 소비에트연방, 중국, 북한과 같은 국가를 지배했던 공산당을 비판하며, 레닌의 당 개념은 당이 노동자계급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대중들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혁명정당은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는거죠.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이루어냈던 볼셰비키당 역시 대중적인 지지를 받기까지 굉장한 우여곡절이 많았으니까요. 혁명정당 이론은, 혁명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단일하고 일관된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이론이지, 그러한 정치세력이 오로지 자신들임을 자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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