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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와 노동자 정치
오세철 지음 / 박종철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 술자리에 예의 빠지지 않는 정치 얘기.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냅니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논쟁이 무르익는 것과 함께 막차 시간이 다가오면, 소소한 일상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옮깁니다. 그리고는, 시간에 맞춰 터덜터덜 집으로 향합니다.
- 이것이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는 국민 일반의 정치 참여는 아닐까요. 정치인의 그것과 국민들의 소소한 일상이 서로 떨어져있지 않을진데, 우리는 늘 이것을 분리합니다. 전자에는 격렬한 논쟁으로, 후자에는 한숨섞인 자조로 대합니다.
- 정치가 청와대나 여의도에만 갇혀있을 때, 우리는 4년 내지 5년에 한번 정치에 참여할 뿐입니다. 물론, 좀 더 적극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의회정치 내에서는 정당을 만들 수 있고, 바깥에서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정부와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의회민주주의 아래에서, 정치가 국민들의 뜻을 올바르게 대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정당이 국민에게 다가오던지, 국민이 정당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술자리 정치 얘기는, 이 두가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무기력하고 공허합니다.
- 과거를 돌아보건데, 두 가지 방법 바깥에 술자리 정치 얘기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중적인 시위가 있었습니다. 가장 대중적이라 꼽히는 60년 419, 87년 610 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419는 대통령을 하야시켰고, 610은 대통령 직선제를 따냈습니다. 결코 무기력하지 않았습니다.
- 술자리 정치 참여와 대중적인 시위를 통한 정치 참여. 전자에 비해 후자는 무기력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것인데요, 그것을 비제도적 정치 참여의 한계라고 일반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제도적 정치 참여는 접근성이 떨어지고, 비제도적 정치 참여는 일상적이지 못한 것이죠.
- 사회주의 정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합니다. 정당이라는 책임있는 정치적 결사체로서의 장점과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참여라는 장점을 한번에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죠. 직업적 정치인이 아닌 국민들로 구성되는 정당이 바로 그것입니다.
- 물론, 사회주의 정당이 기본시하는 위와 같은 명제는, 자본주의 정당도 얼마든지 추구하고 있는 목표들입니다. '진성당원제'가 대표적인 경우가 되겠죠. 소수 몇몇이 내는 거액의 후원금이 아니라, 다수 당원이 모은 소액의 당비를 통해 당을 운영하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취지입니다.
- 따라서, 이러한 형식만 가지고 사회주의 정당을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내용에서도 사회주의 정당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포함한 어떤 정당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는 우리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이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 내용입니다. 이러한 정당의 정치적 목표가 활동 형태를 규정합니다. 이 정당에게 집권은 (중요하지만)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 사실, 우리에게 '사회주의 정당' 보다 더 익숙한 것은 (그나마 최근의 일이지만) '진보 정당'입니다. 우리는 기존 정당과의 차별성을 '표방'하는 정당들을 뭉뜽그려 진보 정당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기준에 따르자면, 아직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정당은 아직 한국에 없는 셈입니다.
- 물론, 그동안 사회주의 정당을 조직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무수한 시도가 있어왔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결실이 없었던 것 뿐이지요. 사회주의 정당의 내용과 형식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그간의 얘기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의 저자인 오세철 교수가 말하려는 바가 그것입니다.
- 오세철 교수는 정년을 5년 남겨두고 그가 오래도록 몸담았던 연세대학교 교정을 떠나왔습니다. '좀 더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는 1975년, 32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연세대 교수가 되었지만, 그가 가르쳤던 제자들의 유신반대 투쟁을 보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자 故이한열의 죽음을 보면서 직접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 그는 먹고사는 문제의 궁극적 표현이었던 정치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정치 활동의 궁극적 표현인 정당 조직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정치연합, 민중당, 민중회의, 민중정치연합, 정치연대, 노동자의 힘, 사회주의정치연합(준)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가까이 그는 사회주의 정당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 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은 무게와 더불어 무기력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나아가야 할 바를 고민하며, 동시에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단체와 조직의 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처음에 말씀드렸던 사회주의 정당으로서의 형식과 내용은, 그가 강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내용과 형식에 입각해서만 정당을 조직하려는 그의 노력은 오늘도 '사회주의정치연합(준)'을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각각의 길을 걸어온 사회주의 단체들의 네트워크를 조성해, 정당을 조직하기 위한 내용과 형식의 문제를 토론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동시에 한국 사회주의 정치 운동사를 집필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고,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보급하기 위한 (가칭)사회과학대학원을 설립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사회주의와 노동자 정치>는 지난 20년의 한국 사회주의 운동을 회고하는 그의 문제의식이 담긴 칼럼 모읍입니다. 다소 일관성 없이 난삽한 면이 있지만, 그가 좀 더 체계적이고 일관된 작업으로 미래의 사회주의자들에게 디딤돌을 놓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