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386의 사상적 배후는 '강철서신'의 김영환?
(출처: 월간 말 구영식 기자)

'전향 386'들의 다수가 80년대 NL 주사파로 활동했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사상적 배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86인사들은 대체로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남한 주사파의 대부로 잘 알려진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을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김 위원은 1986년 서울대에서 구국학생연맹(구학련)을 결성하고 최초로 주체사상을 학생운동권에 전파한 인물이다. 구학련은 한국 학생운동사에서 '최초의 비합법 주사파 조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당시 '강철'이라는 필명으로 '한 노동운동가가 청년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를 단 편지형태의 글로 운동진영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강철서신'이다.

80년대 학생운동권 강타한 '강철서신' 주인공

김 위원은 구학련 활동 이후 구속되었다가 출소해 반제청년동맹(1989년)민족민주혁명당(1993년, 민혁당) 등 비합법 주사파 조직에서 핵심활동가로 활동했다. 특히 민혁당은 90년대 중반 내부 사상투쟁을 통해 '김영환파'에 의해 장악됐다. 김 위원은 90년대 초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두차례 면담하는 '거물'로 성장했다. 그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김일성주의자'였다는 것이 당시 동료들의 평가다. 그와 민혁당에서 함께 활동했던 한 386 인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94년 김영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해는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영환은 '육체적 아버지와 정신적 아버지를 모두 잃었다, 94년은 내게 가장 슬픈 해'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철저한 김일성주의자였다."

김 위원은 99년 터진 '민혁당사건'에서 공소보류라는 파격적인 조치를 받았는데 그가 국정원에서 '반성문'을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민혁당을 해체한 뒤 구해우(현 광주평화개혁포럼 대표) 등과 함께 '푸른사람들'을 결성했다. 푸른사람들은 80년대 NL 주사파로 활동했던 운동권 출신의 친목·학습모임이었다. 그는 구해우 대표에 이어 2기 회장을 맡았다. 또한 김 위원은 홍진표·한기홍 등과 함께 1998년 11월 현재 젊은 우파의 사상지인 <시대정신>을 창간했다. <시대정신>은 80년대 NL 주사파 그룹이 사상전향을 선언한 후 만든 잡지였다는 점에서 운동권 안팎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3년 1월호를 끝으로 격월간지에서 계간지 형태로 발간해오고 있다.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가 단골 필자로 등장한다. 2004년 가을호에는 박세일 의원(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권두 인터뷰로 내세워 눈길을 끌고 있다.

'전향 386'의 사상적 거처 역할을 해오고 있는 <시대정신> 그룹은 북한민주화로 포장한 북한붕괴론을 제기해오고 있다. 특히 이들은 황장엽 전 비서가 만든 주체사상이 60년대 이후 김일성 주석에 의해 '김일성주의'로 변질됐다고 비판한다. 즉 황 전 비서의 주체사상이 진정한 주체사상이라는 것. 그래서 운동진영 일각에서는 이들을 '황파'라고 부른다.

한홍구 교수 "김영환은 주체사상을 끝내 소화하지 못한 채 토해 버렸다"

한홍구 교수(성공회대)는 11월 25일자 <한겨레21>의 '남한 주사파의 비극과 희극'에서 김 위원을 이렇게 평가했다.
"김영환은 황장엽 등이 화려한 당의정을 입혀놓은 주체사상을 가장 반주체적인 태도로, 대단히 교조적으로 집어삼켰다. 그러고는 끝내 소화하지 못한 채 토해 버렸다. …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지만, 그와는 달리 차분하게 북을 바라보는 연구자가 된 어느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그는 환상이 깨진 자리를 치열한 반성적 대안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악으로 규정하고 반공, 반북으로 나감으로써 최대한 보상받으려' 하고 있다."

------------------------

그들은 NL주사파 운동권 핵심이었다
뉴라이트운동 주도하는 '전향386', 그들은 누구인가
(출처: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운동권들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자본가만큼 일을 많이 한 사람이 어디 있나."
소위 '수구꼴통'의 우익집회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다. 지난 24일 자유주의연대 창립 기념토론회에 참석한 한 386 운동권출신이 내뱉은 '자본가 찬양가'다. 그는 범청학련 부의장과 한총련 중앙집행위원장 등을 지낸 'NL(민족해방) 주사파'출신이었다.

지난 4·15 총선에서 전대협 출신이 12명이나 당선되면서 운동권 386은 언론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요즘 또다른 부류의 운동권 386이 뜨고 있다. 자유주의연대로 집결한 이들은 <조선>과 <동아> 등 보수언론의 지원을 받으면서 현재 뉴라이트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전향 386'들로, 대다수가 과거 NL 주사파 출신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홍진표·한기홍, "김정일 정권 타도" 기치 건 <시대정신> 창간멤버

 
▲ 홍진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

<오마이뉴스>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자유주의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향 386'은 신지호·이동호·최홍재·최희섭·한기홍·허현준·홍진표 등으로 확인됐다. 이중 PD(민중민주) 계열인 신지호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는 80년대 NL 주사파의 핵심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먼저 홍진표(42)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 홍 실장은 한때 국보법(2번)과 집시법(1번) 위반으로 3번이나 투옥된 운동권이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전남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홍 실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82학번으로 입학했다가 이듬해 정치학과 83학번으로 다시 입학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홍 실장은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남한 주사파의 대부로 잘 알려진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과 함께 서울대의 구국학생연맹(남한 학생운동사상 최초의 비합법 주사파 조직)에서 활동했다. 그는 당시 김영환 위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현재까지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홍 실장은 이후 전민련(전국연합의 전신) 통일분과 간사와 한겨레사회연구소 연구원,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국장 등을 지내며 10여년 동안 통일운동에 전념했다. 그는 현재 젊은 우파의 사상지 역할을 해오고 있는 <시대정신>의 창간 멤버이기도 하다.

홍 실장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현 정권을 '수구좌파'로 규정한 뒤 "현 정권은 북한인권문제는 외면하고 김정일 정권 유지에 목을 걸고 있다"며 "정상적인 좌파라면 지금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홍 실장과 함께 <시대정신>를 창간한 한기홍(43)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노동운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한 대표는 대학 3학년 때 중퇴한 뒤 인천의 작은 공장을 전전했다. 인쇄노조와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각각 3년씩 일하기도 했다. 한 대표는 이후 94년부터 97년까지 철도청 하급 기능직으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지속했다. 하지만 90년대 말 사상전향한 그는 '푸른사람들'에서 활동했다. 푸른사람들이란 80년대 NL 주사파로 활동했던 운동권들의 친목·학습모임이었다. 그는 1기(구해우)와 2기(김영환)에 이어 3기 회장을 맡았다.

한 대표는 99년 12월 "2000만 북한민중을 구출하기 위해 김정일 독재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이를 계기로 '전향 386'들은 <시대정신>과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과거 전대협은 폭력혁명세력... 민주화운동세력이란 용어 쓰지 말아야"

 
▲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

최홍재(37)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 역시 <시대정신> 편집위원이다. 최 위원은 고려대 신방과 87학번으로 91년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5기 조국통일위원회(조통위) 대행을 지냈다. 최 위원은 94년 한총련 조통위원장을 지냈으며 그 이후 97년까지 전국연합 자주통일위원회에서 일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98년부터 2000년까지 민화협 연수기획부장을 지냈으며 열린사회시민연합의 은평지부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했다.

최 위원은 스스로 "골수 주사파였다"며 "98년 북한 기아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북한체제의 허구성을 깨달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와 함께 전대협에서 활동했던 한 386 인사는 "그는 매우 성실했고 열정적인 동료였다"고 회고하면서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전대협 5기와 6기 중앙위가 이월식을 한양대에서 했다. 교정으로 올라가는 길에 승용차가 길가에 죽 늘어서 있었는데 홍재가 백미러를 다 때려 부시더라.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자본가는 다 때려 죽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조국통일투쟁과 관련해서도 강경발언을 했다." 최 위원은 90년대 후반 사상적 변화를 겪으면서 젊은 우파의 집결지인 <시대정신> 그룹에 합류해 현재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민주통일센터 사무국장도 지냈다.

최 위원은 자유주의연대 창립기념식 토론회(24일)에서 '잃어버린 세대 386(?)-386에 대한 성찰적 회고'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80년대 386'에 대해 "좌경도 용공도 아닌 혁명적 사회주의자"였으며 "소련식 사회주의국가를 만들거나 북한식 김일성주의 국가를 세우려 했던 강력한 이념세대였다"고 규정했다. 최 위원은 '정치권 386'에 대해 "히틀러의 게르만주의보다 더욱 파괴적인 '우리 민족끼리'라는 시대착오적 담론에 매몰되어 있다"며 "한국 386은 김정일과 운명공동체"라고 주장했다.


▲ 이동호 한반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동호 한반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을 지냈다. 그는 이동복 전 의원이 상임대표로 있는 '북한민주화포럼' 간사를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1월 1일 북한민주화포럼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학교 때 조국통일그룹의 지도적 위치에 서서 잘못된 사상에 입각해 살았다"고 '고백'했다. "애국운동세력은 좌파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나처럼 친북주사파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친북주사파에 대한 실질적인 공격에 나서야 한다. 과거 우리(전대협)들은 폭력혁명세력이었다. 더이상 민주화운동세력이라는 말을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남한의 학생운동과 좌파운동을 지도하는 세력은 김정일정권이다.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으로 일할 때 한민전 투쟁지침과 북한의 혁명관을 단파라디오로 듣고 그 내용을 각 대학의 토론자료로 내려보냈다. 애국운동진영은 남한의 좌파를 성장시킨 배후(김정일)를 찾아 집중 공격해야 한다."

유일한 PD계열 신지호... 90년대 초 "더 이상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선언

또 전북대 88학번인 허현준 민주통일센터 연구원(36)은 1994년 전북대 총학생회장과 전북총련 의장을 지냈다. 범청학련 남측본부 부의장로 활동하면서 '남·북·해외 공동연석회의'를 성사시켰던 그는 범청학련사건과 서울대 범민족대회사건으로 두차례 구속됐다. 특히 그는 1996년 한총련 연세대 사건 때 한총련 중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2년간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허 연구원은 98년 (주)다우스마트라는 정보통신회사를 설립하고 2003년 4월에는 인터넷 생선회 쇼핑몰(피시팔팔)을 열면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통일운동과 장애인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03년 민화협과 통일맞이,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탈북자동지회 등에 활어횟감을 무료로 배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허현준 민주통일센터 연구원

허 연구원이 총학생회장으로 있던 전북대는 90년대 중후반 이후 새로운 학생운동의 중심지였다. 즉 NL그룹 주류에서 분화한 '사람사랑(사사)계열'의 근거지였던 것. 이들은 '푸른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대부분의 전북지역 총학생회를 장악했다. 심지어 총학생회 사무실에 '김정일 정권 타도'라는 슬로건을 내걸 정도로 '북한타도론' 혹은 '북한붕괴론'에 집착했다.

허 연구원은 자유주의연대 창립기념 토론회에서 "한총련 중앙간부들은 밤에는 김일성 회고록을 읽고 김일성 항일무장투쟁 비디오를 보면서 탄복하고 박수를 쳤다"며 "386의 이념적 토대는 북한정권의 붕괴와 함께 급격히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최희섭(40) 열린사회시민연합(시민연합) 동대문지부장은 경희대 사학과 84학번. 그는 5기 전대협에서 조통위 정책위원을 지냈으면 이후 전국연합에서 활동했다. 시민연합은 <시대정신>과 연계된 박홍순(87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숭규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시민연합은 서울민통련과 민주쟁취국본 서울지부가 각각 시민단체로 전화된 서울민주시민연합과 서울겨레사랑지역운동연합이 합쳐져 1998년 창립한 단체다. 시민연합은 창립 초기부터 '북한실상과 탈북자 실태', '북한현실과 통일운동의 방향' 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자유주의연대에 소속된 '전향 386'들 중 거의 유일한 PD계열인 신지호(42) 대표는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82학번)를 졸업했다. 신 대표는 노회찬·조승수 의원 등과 함께 활동했으며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추진위 울산 책임자였다. 신 대표는 90년대 초반 '고백논쟁'을 일으키며 운동진영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바 있다. 당시 진보정당추진위에서 활동하던 그는 잡지에 '고백' 등의 글을 통해 운동권을 공개 비판하며 사상전향을 선언했다.

신 대표는 92년 8월호 <길을 찾는 사람들>에 기고한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에서 "사회주의의 핵심이 사적 소유의 폐지에 있다면 장구한 역사발전이 있는 후라면 몰라도 앞으로 상당기간은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그것을 신봉하지도 행동에 옮길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당시 기고글의 편집자주에는 "지난 수년간 지하노동운동을 해오면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을 추진해왔다는 필자가 맑스레닌주의자에게 묻고 있다"고 적혀 있어 그의 운동경력을 짐작케 한다. 이후 그는 "운동권은 이제 경실련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자신의 충고에 따라 경실련에 들어가 정책파트에서 활동하며 서경석 목사를 보좌했다. 신 대표는 경실련 활동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팀 초빙연구위원을 지냈다. 현재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신 대표는 최근 "현 정권의 참여민주주의는 80년대 운동권이 주창했던 민중민주주의의 노무현 버전"이라며 "지배계급 교체, 기존질서 해체 등의 발상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변종인 민중민주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노무현 정부를 공격해왔다.


▲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왼쪽)과 지난 92년 8월호 월간 <길을 찾는 사람들>에 실린 신 대표의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 기고글.

전대협 출신들의 반응 "극단적 단절... 정치세력화를 위한 이미지화작업"

이들에 대한 전대협출신 386인사들은 대체로 "이해할 수 없다", 또는 "슬프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성원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사무처장은 이들의 변신을 "극단적 단절"이라고 표현하면서 "극우와 극좌는 통한다는 말을 증명해주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전문환 전대협 동우회장은 "우익인사가 후원하고 우익매체가 띄워주고 있는 자유주의연대의 출범은 우파의 위기의식에 기반한다"며 "하지만 이들의 고백에는 무게나 비전이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전 회장은 "이들은 정치세력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며 "현재의 활동은 결국 정치권 진출을 위한 이미지화작업"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지역기반 등 하부조직력이 없어 영향력 있는 조직으로 등장하긴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향 386'의 사상적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김영환 위원의 과거 동지였던 A씨는 "왜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했냐고 그들에게 따져야 하는데 도리어 그들이 우리를 욕하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환이나 홍진표는 당시 학생운동권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컸다. 이들은 우리한테 공장에 들어가라고 하면서도 자신들은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들은 혁명 지도자기 때문이란다. 이들은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다. 이들은 그동안 운동권에서 나름의 지위를 누려왔다. 이것은 당시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던 많은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자신들이 사상적 지도자인 것처럼 행세하면 어떡하나."

-----------------

"한국 좌파는 가장 후진적인 외눈박이"
386 골수 사회주의자→자유주의자 전향한 서강대 신지호 교수
(출처: 주간조선 정장열 기자
jrchung@chosun.com)

동아일보에 칼럼을 정기 기고하는 신지호(申志鎬ㆍ42) 서강대 교수가 요즘 지식인 사회에서 화제다. 386 골수 운동권 출신인 그는 과거 운동권 동지였던 열린우리당 386 의원들을 향해 “동지들을 속일 수 없다”며 친북좌익의 성향과 주사파적 시각이 변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이들에게 “과거 청산 자격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향한 사회주의자’로서 우리 사회 좌파의 시대착오에 대해 메스를 가하고 있는 신 교수를 지난 10월 2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평소 칼럼에서 386 주사파 출신 정치인들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하던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주사파의 목소리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나.
“노무현 정권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말 중 하나가 386 정권이고 17대 총선 이후 386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386의 다수가 주사파 출신이다. 또 민노당의 다수파도 주사파 출신들이다. 주사파들은 아직 한국 정치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일반 국민에게 반미(反美)ㆍ친북(親北)의 바람을 일으키는 진원지이다. 한국 정치가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주사파 문제를 제대로 검증하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 사람들이 과거 어떤 사람들이었고,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한국을 앞으로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가 명확해져야 국민의 정치적 선택도 분명해질 수 있다.”

- 386 주사파 출신 정치인들이 아직 친북 성향이라고 단정했던데 이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와 다름이 없다는 얘기인가.
“물론 주사파도 다양하게 분화됐다. 민노당 주사파 출신들은 거의 변함이 없는 반면 열린우리당 주사파 출신들은 김일성 체제를 찬양하고 신봉했던 데서 이제는 북한을 감싸고 이해하는 식으로 변했다. 이들은 북한의 문제점에 대해 애써 외면하거나 침묵을 한다. 이런 변화도 제대로 된 자기 반성을 통한 게 아니라 북한 체제의 문제점이 만천하에 폭로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이뤄진 것이다. 이들은 아직도 북한에 대해서는 외눈박이들이다.”

- 386 주사파 출신 정치인들이 과거 자신들의 오류에 대한 반성과 고백이 필요하다는 입장인가.
“그렇다. 주사파는 기본적으로 민족사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는 게 아니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대한민국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나. 그들이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번이라고 밝힌 적이 있나.”

- 3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주사파적 시각이 아니라 통일의 염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 정서를 앞장서 대변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나.
“그런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민족이나 통일 지상주의로는 그들의 태도가 설명이 안된다. 친(親) 김정일 노선을 걷는 것과 민족ㆍ통일지상주의가 일치할 이유가 없다.”

신 교수는 주사파 출신 정치인들을 비롯해 현 정권에 참여한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은 ‘자아분열증 환자’라는 주장도 폈다. “이 사람들은 세계사적으로 검증된 선(先) 산업화, 후(後) 민주화 노선이 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경시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북한 인권 문제를 물어보면 인권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게 생존권이라며 ‘북한도 일단 먹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민주주의 인권은 나중에 해도 되지 않느냐’는 논리를 편다. 과거 우리의 권위주의 정권에 적용했던 논리와 북한 전체주의 정권에 적용하는 논리가 180도 모순이다.”

“한국 좌파는 수구 맹동적”

- 주사파를 포함한 우리나라 좌파들의 문제점이 뭔가.
“한국의 좌파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가장 후진적인 좌파다. 한국의 좌파는 크게 세 덩어리로 분류가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는 주사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민노당 내의 과거 PD계열이다. 또 하나가 주사파나 PD계열을 극복하고자 하는 포스트 막시즘 등 서유럽풍의 세련된 좌파이다. 이런 세련된 좌파가 대표주자가 되면 그래도 괜찮을 수 있다. 독일의 사민당 같은 정당은 과거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와 치열하게 투쟁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 좌파 진영에서는 아직도 주사파가 가장 영향력이 크다. 성숙된 좌파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수구적 맹동적 좌파다.”

신 교수는 주사파에 대해 “고쳐서 새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100% 폐기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최악의 전체주의인 김일성ㆍ김정일 체제를 지탱하는 주사파가 사회주의 내에서도 가장 문제가 많은 사회주의였으며 북한의 실패가 곧 주사파의 실패”라는 것이다.

- 노무현 정권을 평소 좌파 정권이라고 지칭하던데 현 정권 인사들은 좌파 정권이라는 평가에 반발하고 있고 사실 구체적 정책들을 봐도 좌파라는 평가는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많다.
“과거 PD계열은 주사파들에게 개량주의자라고 비판했다.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노선을 걷지 않고 자본주의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오로지 미 제국주의 반대투쟁만 한다는 것이다. 지금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을 보면 그때 구도와 비슷하다. 시장친화적인 주장을 펴는 일부 386 출신 의원들을 보더라도 경제 정책은 우로, 사회ㆍ문화적인 것은 좌로 가져가겠다는 태도다. 이들에게 결정적으로 빠진 것은 통일ㆍ외교ㆍ안보 문제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점이다. 이제까지 노무현 정권의 방향을 보면 반미는 아니라고 해도 탈미(脫美)는 분명하다.”

- 현 정권의 정책이 과거 주사파의 전략과 비슷하다는 얘기인가.
“구도가 닮았다. 현 정권은 시장경제 마인드를 갖고 있는데 왜 우리가 좌파냐며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시장을 조금 중시하는 마인드를 보여준다고 좌파 혐의를 벗을 수 없다. 경제 정책은 기본적으로 시장이 작동하기 때문에 정부가 좌지우지할 단계를 넘어섰다. 정책에서 일정한 편향이 나오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를 조정해 나간다. 하지만 안보ㆍ외교ㆍ통일 문제에는 시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조정자가 없다. 국민에게 이 부분에서 확고한 믿음을 주지 못하면서 시장이 감시하는 경제 정책에서 약간의 우파적 경향을 보인다고 좌파의 이미지를 벗을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은 주사파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좌파 정권이다.”

유시민씨 권위·전체주의 차이 몰라

- 좌파 진영이 지금도 ‘박정희보다 김일성이 낫다’는 식의 사고를 한다고 보나.
“과거에는 박정희·전두환이 싫고 김일성을 좋아한다고 내놓고 얘기했지만 지금은 조금 변했다. 지금 좌파의 멘탈리티는 김일성보다는 박정희가 싫다는 쪽이다. 과거 유시민 의원이 한 신문 칼럼에 ‘유신 5공의 체육관 민주주의나 김일성에게 100% 찬성표를 던지는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나 오십 보 백 보다’라는 글을 쓴 걸 기억한다. 유시민 의원은 운동권 내에서 우파라는 평가를 받았고 주사파 출신이 아니다. 이런 사람조차 과거 개발독재는 우파 독재였고, 저쪽은 좌파 독재였는데 뭐가 다르냐는 위험한 논리를 편다. 이는 권위주의 체제와 전체주의 체제의 차이점을 전혀 모르는 한심한 얘기다. 과거 문화혁명 시기의 중국이 전체주의였다면 지금은 권위주의 체제다. 이 차이를 중국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하늘과 땅 차이다.”

신 교수는 한국의 현 정치 지형을 ‘시대착오적인 20세기 수구 연합’이라고 규정했다. 북한과 운명을 같이 할 열린우리당의 수구 좌파 세력과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한나라당의 수구 보수 세력,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민노당의 반동 좌파 세력이 우리 정치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한국 정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수구 보수를 대신할 혁신 보수가 등장하는 보수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박정희 시대를 역사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지금 박정희식 모델로는 절대로 2만달러 시대를 열 수 없다. 지금은 작은 정부와 민간의 활력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모델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조도 내용도 없이 기득권에만 집착하는 보수가 아니라 철학과 영혼이 있는 배고픈 보수가 필요하다. 이런 보수 혁명이 일어나 우파로의 정권 교체가 이뤄진 다음에라야 우리 사회 좌파도 진정한 변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b 2006-09-2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념과 사상은 변화해야 한다. 단, '현실과의 호흡을 통해서'라는 전제이자 근거가 있어야 한다. 전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향 근거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전향근거에는 '북한 체제가 대안이 아니다'라는 현실은 있는데, 정작 한국의 현실은 없다. '철학과 영혼이 있는 배고픈 보수'가 대체 어떤 현실적 정책을 의미하는가. 이들은 북한을 이상사회로 생각했던 과거에도, 사회주의를 만병통치약 정도로 생각하는 현재에도, 현실 불가능한 배고픈 보수 운운하는 미래에도, 여전히 현실과는 담을 쌓은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