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대학생신문 149호)

어떤 어려움에도 나는 비관하지 않는다
류재영 기자 unipress@e-unipress.com

조정환 - 서울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에서 일제하 프롤레타리아 문학 연구. 1987년에 문학운동의 당파성 강화를 주장하는 민주주의민족문학론을 제창했고, 1989년에 월간 「노동해방문학」창간에 참여, 노동해방문학운동을 전개했다. 이로 인한 1990년 말에서 1999년 말까지의 수배기간 동안에는 이원영이라는 필명으로 국제주의적 및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와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다. 2000년 9월 다중문화공간 왑의 창립에 참여했고 현재 도서출판 갈무리 편집인을 맡고 있다.

"노정권의 수배 조치로 저자는 지금까지 15개월동안 사랑하는 동지들과 단절되고 정든 아내와 강제로 헤어져야 하며 이 거친 남한 땅에 태어난 딸의 얼굴조차 모르는 채로 살아야 하는 아픔을 겪고 있다." <노동해방문학의 논리> 서문 中, 조정환, 1990

수배가 풀리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얼굴조차 몰랐던 딸' 문영이는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정말이지 12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90년대 초까지 그에게 있어 최대의 화두는 다른 사회주의자와 다르지 않았다. '당 건설' 그리고 '당파성'.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을 더 이상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과거와의 단절, 도대체 12년이라는 시간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인터뷰를 약속했던 갈무리 출판사에 아직 조정환 씨는 도착하지 않았다. 대신 반갑게 맞아주는 분이 있었다. 1980년대 말부터 수배된 조정환 씨와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동지'중 한 명이다. "이곳으로 이사온 지는 얼마 안돼요. 예전에 정말 이사 자주했는데 이제는 좀 오래 머물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는 그동안 조정환 씨와 이곳 사람들이 겪었을 만한 어려움이 묻어났다. 얼마 후 조정환 씨가 도착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건네는 데 "이런 게 별로 익숙치 않다"며 웃는다. 오랫동안의 은둔 생활에서 굳어진 습관 탓이었다. 혹시 아직도 조정환이라는 본명보다 이원영이라는 가명이 익숙하지는 않을까?

- 10년 간의 수배 생활이 정말 힘들었을 텐데요.

지속적으로 만난 사람은 다섯 명을 넘지 않았죠. 가족이나 동지들은 물론 만날 생각도 못했구요.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이상한 오해들이 저에게 들려올 때 였어요. 인도로 갔다, 북한으로 갔다, 지방으로 가서 중이 됐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거나 변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나설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무기력했죠. 한 번은 실종자로 제가 '시사매거진 2580'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걸어서 방송 정지를 요구하는데 그 쪽에서 믿을 수 없다고 해서 무척 애먹었죠. 주민등록번호부터 지은 책, 아는 사람까지 다 대고 나서야 간신히 제가 조정환이라는 걸 설득시켰죠. 아마 방송에 제 얼굴이 나갔다면 제 수배 생활은 훨씬 힘들어졌을 겁니다. 그리고 제 주 관심사가 사회과학이니 책을 살 때도 항상 긴장을 하고 서점에 절대 오래 머무를 수 없었죠. 혹여 불심검문이라도 당할까 항상 긴장하면서 길을 다녀야 했구요. 그래도 수배 기간 동안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수배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 최근 펴낸 「지구 제국」이나, 얼마 전 말지에 연재했던 글을 보면 노동해방문학운동을 했던 과거와는 크게 생각이 바뀌었다고 느껴집니다.

한국사회운동도 80년대와 90년대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고 보는데요. 개인적으로는 94-95년이 그런 시기였습니다. 80년대 운동가들 사이에는 노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노동자 계급을 혁명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었죠. 그런데 89-90년 동구 사회주의와 소련이 몰락하고 사회주의 국가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기존의 혁명 이론에 대해서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옵니다.

그때는 마침 제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수배생활을 시작할 무렵이었죠. 수배 생활은 한편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월세방에 틀어박혀 한국에 번역된 맑스와 레닌의 책을 모아 모두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국제 사회주의 관련 문헌과 SWP(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내부에 존재하는 당 경향과 평의회 경향의 논쟁을 연구하며 평의회에 관심을 갖게되죠. 잊고 있던 파리꼬뮨을 눈 여겨 보게된 것도 그때였죠. 이후에는 68 혁명과 당시 학술계의 관심을 끌었던 알뛰세르와 푸코 등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딸리아의 자율주의 운동과 자율주의 이론가 네그리를 알게 되고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참여했던 당이 얼마나 중앙집권적이고 위계적이었는가에 대한 네그리의 반성은 지난날 사노맹 활동을 하면서 제가 느꼈던 당 건설의 문제점과 유사했습니다. 당파성에서 자율성으로의 전환. 그 이후부터는 자율주의 운동에 대한 번역과 연구를 진행해왔고 <지구 제국>은 그 동안 변화되어온 저의 생각을 정리하고 집약한 첫 번째 책입니다.

- <지구제국>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신다면

제국이란 세계화 시대 지구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입니다. 이전에는 거대한 국민국가가 식민지를 구축하고 패권을 행사했고 대항전선도 제국주의와 식민지 민중 사이에 형성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권력이 특정 국민국가에 모여있지 않죠. WTO, IMF 등의 초국가적 기구, 초국가적 자본이 지구사회에 주권을 행사합니다.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의 이행'이란 바로 이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대항방식도 지구적 다중의 연대를 구축해 제국의 압제를 봉쇄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여기서 다중이란 68 혁명이후에 분화되어온 여러 유형의 대중 집단을 말하는데요. 기존의 노동자 계급이라는 말로는 다양한 대중을 정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네그리는 이 다양한 대중을 스피노자의 개념을 빌어 multitude라 정의하는데요. 저는 이것을 다중(다양한 대중)이라고 번역했습니다.

- 말 지에 실렸던 <국가권력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글을 보면 '바꿀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시고 있던데요.

존 홀러웨이의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책이 곧 번역될 예정인데요. 진보정당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읽고 답해주길 바라는 책입니다.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오히려 현재의 기본 골격을 강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뿐입니다. 반대로 국가, 정부, 당, 국민 등을 약화시키는 정치를 해야합니다. 지금 열거한 개념들은 다중을 수동화시키는 핵심적인 요소들이죠. 의회나 국가 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은 그 구조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중의 자치적인 조직들이 활성화되고 상호 교류가 고도화되면서 그 힘이 거대해졌을 때에만 제도를 활용할 수 있죠.

'활동가는 낙관적이어야 한다'. 사회변화에 낙관적이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인생 속에서 체득한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다'는 그의 믿음, 낙관적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볼 때에 가능하다는 그의 말이 진심으로 와 닿았다.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거대함은 우리의 거대함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거대함을 그들의 거대함으로 오인하고 있을 뿐이죠. 다중의 힘을 먹고 사는 제국은 결국 다중에 의해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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