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6
박애경 지음 / 책세상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여기 극단적인 이분법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그냥 즐기자."는, 음악평론가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입니다, 이것은 반쪽의 진실을 담고 있는 비난입니다. 음악은 분명 즐겨야 할 대상이지만, 평론이 쓸모없는 잣대로 음악을 재단하는 행위라는 것은 거짓입니다. 반쪽의 진실로 나머지 반쪽을 왜곡하니 비난일 수 밖에요.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평론은 음악을 두배로 즐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것은 드라마의 NG장면이나, 기자들의 취재후기에 비유할 만 합니다. 음악의 앞과 뒤에 가려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시켜주고, 3~4분의 짧은 감흥 속에서 자칫 놓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전해줍니다. 물론, 감추어진 이야기들만을 소개시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평론가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음악을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고, 두배로 즐길 수 있습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는 대중가요를 듣는 것 만으로 만족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곡이 발표되는 대중가요 시장에서 듣기 좋은 곡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루해질 만 하면, 새로운 곡을 들으면 그만이었죠. 변화는 이런 만족이 불만족으로 바뀌면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와 다를 바 없이 하루 1시간 정도 음악을 듣지만 월등한 만족감을 느끼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들은 같은 음악을 저보다 더 즐기고 있었죠. 저는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따라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김광석을 들었고, 정태춘을 들었죠. 노래 제목 보다 앨범 제목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했습니다. 노래를 듣는 방식은 변했지만, 만족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느닷없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하이텔 힙합동호회 사이트를 발견한 것이죠. 그리고, 거기에서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았던, 한국 힙합의 역사를, 그리고 그 속에서 몇몇 유명한 힙합가수들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네."로 시작된 호기심은, 결국 지난 유행가들을 다시 듣게 했고, 듣고 싶은 노래목록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힙합 음악은 이전에는 없었던 만족감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재밌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 서문에서 저자는, 90년대 들어 대중가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리뷰> <이매진> <이다> 에서의 대중가요 평론은 이러한 대중가요의 양적 질적 확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위문화로 불리우던 대중가요가 문예지에 실리면서, 기존의 고급문화-대중문화의 구분이 퇴색된 것이죠. 저자는 이런 전환기를 맞아, 대중가요의 개념적 정의를 통해서, 대중가요의 인기와 성장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지 고민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 90년대를 통과해 온 힙합, 록, 포크, 뽕짝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 이런 저자의 노력은 교통정리에 비유할 법 합니다. '교통정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재미없는 주제이지만, 이 재미없는 주제는 결국, '어떻게 많은 자동차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가'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필요를,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내용이기도 하니까요. 이미 마련된 제도 아래에서 별다른 불편 없이 교통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노력들이 잘 와닿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 가요 듣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가요평론가들의 노력 없이도, 대중가요를 거리낌없이 듣고 즐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자의 노력 덕분에 대중가요의 빛이며 그림자인 '통속성'을 이해할 수 있다면, 여전히 통속적인 가요계 내에서도, "모든 가요는 통속적이야."라는 쓸모없는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가요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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