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삶과 전설 1
부사령관 마르코스 지음, 주제 사라마구 서문,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윤길순 옮김 / 해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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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사파티스타 운동. 이들이 계승하고자 하는 에밀리아노 사파타는 1911년 멕시코 혁명의 주역으로서, 원주민 자치권과 토지 개혁을 요구해 1917년에 헌법으로 제정시켰습니다. 100여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 벌어지고 있는 사파티스타 운동은 곧, 헌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음을, 원주민의 자치와 토지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 멕시코 뿐만 아니라, 16세기의 영국을 시작으로, 봉건사회의 질서가 무너지는 모든 곳에서 토지 개혁의 요구는 있었습니다. 지주-소작농 관계에서 자신이 직접 생산한 생산물의 대다수를 빼앗겨왔던 이들은, '새로운 생산관계'가 이러한 모순을 해결해주기를 바랬던 것이죠.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생산관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토지의 사유화가 이루어졌고, 소작농과 소농들은 자신이 일구어온 토지를 분배받기는 커녕 빼앗긴 채, 생존을 위해 도시로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1960년대 자본주의 한국이 그러했고, 오늘날 자본주의 중국이 그러하듯 말이죠. 땔감으로 쓸 나무 한 그루만 내 손으로 베어도, 가혹한 법적인 처벌을 받는 곳. 그곳이 바로 사파티스타 운동의 진원지인, 멕시코의 사파티스타주입니다.

- 멕시코에서는 그 진통이 길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래도록 땅을 갈아 생계를 유지해왔던 원주민들은 1911년 멕시코 혁명 이래로 줄곧 토지 개혁을 요구해왔으나, 1992년 토지 개혁은 공식적으로 종료되고 토지 사유화가 결정됩니다. 종료된 토지 개혁과 강행되는 사유화 앞에서, 원주민 공동체들은 1993년 원주민혁명비밀위원회를 구성하고, 10년 가까이 무력 항쟁을 주장해 온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인정하게 됩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NAFTA 가 시행되던 1994년 1월 1일, 그렇게 사파티스타 운동은 시작됩니다.

- 기실 사파티스타 운동이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100여년 넘게 지속되어 온 '원주민의 자치, 토지 개혁'이라는 요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주목받았던 것 뿐입니다. 이들은 과거와 달리 인터넷을 이용해 전 세계로 자신들의 요구를 알렸고, 정치적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1994년 8월에는 6,000여명이 참석한 전국민주주의대표자회의를 개최했고, 1996년 4월에는 전 세계에서 참가하는 대륙간 엔쿠엔트로(encuentro)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70년간 집권해오며 행정 입법 사법을 독점하고 토지 개혁을 끝내버린 제도혁명당(PRI) 대신,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와 원주민 공동체들까지 참여할 수 있는 전국민주주의대표자회의를 통해 민주적인 헌법을 제정하고 새 정부를 구성하자는 계획까지 제안했습니다.

- 하지만,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은 이들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1994년 2월 시작되었던 평화회담은 무위로 끝났고, 1년 후에 재개된 회담을 통해 '산 안드레스(san andres) 협정을 통해 일정한 합의에 이르렀지만, 법률로 제정되지 못하고 결국 협정이 폐기되기에 이릅니다. 2001년 무장을 해제한 사파티스타 원주민들과 20여만명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산 안드레스 협정의 이행을 촉구했지만, 협정에서 협의된 내용은 몹시 후퇴한 채로 입안되었습니다.

- 사파티스타 운동에 국한되지 않은, 토지 개혁 운동의 근본에는 '새로운 생산관계'가 있습니다. 봉건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규모 자본(토지)의 축적과 이를 바탕으로 한 규모의 경제가 그것입니다. 새로운 생산관계의 문제는 '규모의 경제'라는 월등한 생산력에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내기 위한 '생산관계'에 있습니다. 대규모 자본(토지)의 축적이죠. 자본과 토지를 축적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산관계는 합의되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강요되었습니다. 토지의 실질적인 생산자였고 소유자여야 할 이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소유권에서도 완전히 배제되었습니다.

- 단지, 결정의 비민주성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제된 자본주의화의 혜택 역시도 올바르게 분배되지 않았습니다.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방적인 약탈행위는, 오로지 축적된 자본(토지)을 독점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더 많은 자본과 토지, 자원을 축적하기 위해 자본주의 세계화를 하는 것이지, 그들이 내세우는 것 처럼 세계적인 경제 분업과 효율적인 생산이라는 경제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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