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하니리포터)

볼리비아. 그 곳은 베레모에 콧수염을 하고 아직도 좌파 청년들의 티셔츠에 살아남아 있는 체 게바라(사진 중간)가 게릴라 운동을 하다가 미국 CIA 공작에 죽어간 남미의 가장 못사는 나라다.

이 나라에서 새 대통령이 선출 되었다. 지난 8월 3일 우파인 민족 혁명 운동당(MNR)의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72) 후보가 새 대통령으로 뽑혔다. 그러나 그는 사실상 이번 선거의 승자가 아니었다. 승자는 결선투표에서 패배한 사회주의운동당의 에보 모랄레스(42. 사진 위)이다.

득표수만 놓고 보면 승자는 산체스 데 로사다이지만, 그는 백인이고 1993~97년 사이에 대통령을 지냈으며,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탄광업으로 거부가 된 재력가다. 정치적 기반이 튼튼한 주류 정치인인 것이다.

그에 비해 모랄레스는 인디언 출신의 가난한 농민이다. 15%의 백인이 정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가운데 대다수의 인디언과 혼혈인 메스티조는 하층민으로 인종차별을 받으며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볼리비아는 빈곤층이 70%에 이르는 남미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이다.

미국은 마약유통을 뿌리뽑기 위해 2년 전부터 콜롬비아, 볼리비아, 페루에서 코카 재배를 뿌리뽑기 위한 전쟁을 벌여왔다. 그런데 미국의 이 전쟁은 코카 외에는 채산성 있는 작물이 없는 인디안 농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현지 대사관이 나서 마약전담 부대에게 직접 돈을 주고 코카의 씨를 말리는 작업을 지원해 왔다.

미국의 용병부대는 인디안 농민들을 위협하고 밭을 불태우거나 비행기에서 고엽제를 뿌려댔다. 이들은 저항하는 농민조합의 지도자들을 암살한 혐의도 받고 있다. 코카 농민인 카시미로 후안카는 마약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다가 용병부대가 쏜 총탄을 맞아 사망했다.

이런 무참한 전쟁 덕분에 볼리비아에서는 1998년 9만 헥타에 이르던 코카 경작지가 현재는 1만 4천 헥타로 줄었다. 그 때보다 1/6에도 못 미치는 면적이다. 모랄레스는 2년 전 3만 5천여 볼리비아 코카 재배 농민조합의 지도자로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이끌었었다. "코카 아니면 죽음을" 그가 외치는 구호는 30여년 전 체 게바라가 외쳤던 '혁명 아니면 죽음을"을 약간 바꾼 것이다. 체 게바라가 혁명을 위해 싸우다 죽어간 볼리비아 땅에서 그의 사상은 다시 부활하는 것일까?

네덜란드의 권위 있는 일간지 NRC한들블랏은 볼리비아 농민의 고통스런 이야기를 전했다. 인디안 테오필로 마마니는 코카 재배지를 없애러 온 군인에게 옥수수 같은 곡식까지 다 빼앗겼다고 한다. 군인들은 1주일 후 다시 와서는 자기를 비롯한 다섯 명의 조합 소속 농민들을 폭행하고 턱을 땅에 박고 엎드리게 한 후 발로 머리를 차고, 눈을 수건으로 가린 채 입에 총부리를 집어 넣고는 계속 코카 재배를 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코카 잎을 팔아서 매달 35달러의 수입을 얻는다.

"다른 작물을 해서는 절대 그 만큼 못 벌어요. 커피를 재배한다고 칩시다. 커피는 코카보다 값이 1/4밖에 안 되요. 게다가 코카는 연 4회 수확하는데, 커피는 한번 밖에는 못하거든요. 그러니 코카 농사하지 말라는 건 우리한테 나가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예요."

농민들의 이런 억울한 사정을 앞장서서 외치며 모랄레스는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자유시장 꺼져버려!"
"썩은 정당들 다 꺼져버려!"
"미국 꺼져버려!"

이런 급진적인 구호가 코카 농민들 뿐만 아니라, 광부들과 실업자 교원노조원들을 하나로 묶었다.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인터넷 저널인 제트넷은 미국이 볼리비아 대선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전했다.

올해 초 세 명의 경찰이 코카 재배 농가를 파괴하려다 살해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경찰당국은 그를 배후로 지목해 그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아무런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그가 배후라고 주장했다. 볼리비아 주재 미국대사인 마뉴엘 로챠는 선거가 있기 직전 수요일에 볼리비아인들에게 다음 같이 말했다.

"만약 유권자들이 볼리비아를 다시 주요 마약 수출국으로 만들려는 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한다면 미국은 이 나라에 경제적 원조를 중단하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

코카를 재배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말해온 모랄레스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 경제적인 압력을 가하겠다는 협박이었다. 미국이 모랄레스를 이렇게 경계했지만, 오히려 그런 경고는 마랄레스를 더 부각시켰다. 다른 후보들이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사이에 그는 당당하게 미국이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중남미에 강요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내세워 중남미 나라들을 쥐고 흔들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볼리비아를 외치면서 코카 농민뿐만 아니라 광부와 실업자, 교사들을 제국주의 미국에 반대하는 대열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앞잡이 산체스 데 로사다는 나가 죽어라, 코카는 영원할 것이다." 이런 구호를 외치며 그는 선거운동을 했다. 지난 6월 30일 열린 1차 투표에서 그는 20.94%를 얻었고, 로사다는 22.46%를 얻었다.

볼리비아 선거제도는 1차투표에서 어느 후보도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의회에서 투표로 1, 2위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8월 3일 의회는 산체스 더 로자다에게 84표를 주어, 43표를 얻은 모랄레스를 가볍게 이겼다.

하지만 그 승리는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 모랄레스는 1차 투표 후 타 정당과 연합을 맺지 않겠다고 공언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당들을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부패한 무리들이고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협조하는 사업가들이라고 욕하며 실질적인 힘은 거리의 민중들에게 있다고 말해왔다.

그의 말과 행적은 미국인들을 놀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8월 5일자 타임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태연스럽게 코카 잎을 씹으며 "코카 잎은 볼리비아의 새 국기에 새겨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미국의 마약 단속당국인 DEA를 볼리비아에서 몰아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미국의 제국주의 때문에 코카 농사를 지어먹고 사는 우리가 희생자가 되 버렸다. 코카는 우리 인디안들 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약초인데도 말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코로 들이마시는 마약인 코카인의 원료로 코카를 안 좋게 생각하지만, 남미의 원주민 인디언은 코카를 신성한 약초로 여긴다. 코카 잎은 몸살이나 고열을 치료하고 떨어진 원기를 보충하는데 쓰인다.

"코카는 미국 놈들에게는 골칫거리인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다. 미국 놈들이 코카에 화학약품을 섞어서 마약을 만드는 게 문제다. 코카인 제조하고 유통시키고 흡입하는 건 다 미국 놈들 짓이다."

2년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코카인의 원산지인 콜롬비아와 페루 볼리비아에 코카 재배지를 뿌리 뽑겠다고 선언했다. 2년이 지난 후 저항은 볼리비아 뿐만 아니라 페루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농민들의 시위와 마약과의 전쟁을 중단하지 않으면 도시를 점령 하겠다고 위협하며 시위를 벌여 7월 3일 페루 대통령 알레얀드로 톨레도는 이 전쟁을 조만간 끝낼 것이라고 농민들을 달래야 했다. 이런 농민들의 저항에다 국영 전기회사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자, 시민들의 시위가 거대하게 일어나 페루 정부는 지난 7월 9일 내각이 총사퇴 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콜롬비아에서는 좌익 반군이 국토의 1/3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고, 볼리비아에서는 코카 농민의 지지를 엎고 모랄레스의 사회주의운동당이 제 2당으로 부상했고, 페루정부는 농민과 노동자들의 저항에 직면해 있고, 이래저래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은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 농민들의 생존권 쯤은 우습게 여기는 미국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 한 미국이 치르는 전쟁은 그 만큼의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네덜란드 = 하니리포터 장광열/ jjagal@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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