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
크리스하먼 지음 / 갈무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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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하먼과 마이클 헤인스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크리스 하먼은 1989년 경에 동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옛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의 의의에 대하여, 마이클 헤인스는 자본주의 동유럽의 향후 전망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두 저자 모두 영국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이며, 이들은 스딸린의 소련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유럽 국가들의 성격에 대해서 독자적인 입장(국가자본주의)을 고수해왔습니다.

- 1989년 동구권의 변화와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를 두고, 많은 매체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해석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에 동의했습니다. 이제 10년 정도가 지나서, 소위 ’신자유주의‘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경제정책들 - 규제의 완화, 공기업 민영화, 노동의 유연화 - 의 폐해가 고발되고, ’자본주의는 아직 승리하지 못했다‘ 라는 얘기도 들리지만, ’사회주의는 패배했다‘ 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패배한 사회주의와 승리하지 못한 자본주의. 무엇이 승리하든, 우리가 먹고 살만한 어떤 경제체제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편역자 이원영씨는 두 사회주의자들의 논문을 소개하면서, 역자 서문으로 뻬레스트로이카가 선언된 1985년과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1991년의 한국 학계와 운동세력들의 논의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와 이론의 흥망을 논하는 거대 담론 속에, 막상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 성격에 대한 연구는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를 말하기 이전에, 소련과 동유럽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인 분석을 해보자’는 것이 편역자의 의도입니다.

- “동구권의 변화가 무엇이었는가?“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변화의 움직임이 1989년에 맞추어 진 것은 아닙니다. 변화는 그 이전부터 조금씩 있어왔고, 정치적 공백기 - 고르바쵸프의 뻬레스트로이카 개혁이 점점 지지를 잃어가고 있을 때 -를 빌어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것 뿐입니다.
폴란드에서는 1988년 대규모 파업이 일어나 기존 지배정당과 노조가 연합정부를 구성하게 되고, 헝가리에서는 1987년 시위로 기존 지배정당이 분열하게 되며, 동독에서는 1990년 고르바쵸프 지지시위가 열려 여행의 자유, 자유선거, 정치개혁, 서독과의 경제통합, 등의 성과를 이루어냅니다. 루마니아에서는 1987년 트랙터 공장의 파업으로 시위가 시작되어 결국 차우체스쿠 대통령이 도피하고 시위대를 지지하는 군대와 함께 행정기구가 결성되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1989년 ‘프라하의 봄‘ - 1968년 소련 군대가 프라하에 투입되었던 - 2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적인 시위가 일어나 정부가 재구성되며 자유선거 실시를 이루어내며, 불가리아에서도 1989년의 시위로 정부의 항복을 받아냅니다.

- 동유럽의 이러한 변화들은 매우 평화적이었다는 것이 크리스 하먼은 분석입니다. ‘평화로웠다’는 것은, 세력간의 충돌정도를 직접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에, 시위를 주도한 ‘반대파’ (기존 정권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들이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거나, 연합정부를 구성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 이것은 다시 말해서, 1989년 동유럽의 변화들이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파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일정정도의 정치적 변화들을 쟁취했지만, 루마니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에서 기존 지배정당들은 유지되거나 분열되었을 뿐이고, 대통령 외에 기존 권력을 구성하고 있던 정치관료들, 기업 경영진들의 지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통령을 퇴진시킨 1960년 419항쟁이나,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1987년 6월항쟁에 비견할 만 합니다. 물론, 두 항쟁의 경우, 동유럽의 경험과는 달리 반대파들이 직접 행정기구에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 크리스 하먼은 뜨로츠키의 명제에 따라, 한 사회의 생산관계와 지배계급을 변화시키는 ‘사회혁명’과 지배권력을 교체하는 ‘정치혁명’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평화적인 변화는, 붕괴할 만한 사회주의는 애당초 없었음을, 즉 붕괴할 만한 ‘차별화 된 생산관계나 지배계급’이 이미 존재하지 않았음을 논증한다고 주장합니다. 소비에트 연방과 동유럽 경제를 사회주의 로 바라보는 시각이나,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모종의 경제체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 ‘평화적이었던’ 동유럽의 체제이행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 그는 1989년 이전의 동유럽 사회를 ‘국가자본주의’ 로 규정합니다. 동유럽 사회는 대대적인 정치혁명을 바탕으로, 국가자본주의에서 다국적자본주의로, 진보도 퇴보도 아닌 옆걸음질했다는 것이죠. 변화한 것은, 과거 국가에 의해 강력하게 통제되었던 국내의 경쟁이 해소된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국가자본주의란 국가가 대외적인 경쟁을 위해 내부적인 경쟁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를 의미하는 것이고, 대립적인 경제체제를 상징했던 미국과 소비에트연방의 경제체제란, 국가 개입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1941~1944년까지의 미국 전시경제와 소비에트연방의 경제체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 그는 1950~60년대 동유럽 경제의 성장률이 세계 각국 경제의 성장률 보다 월등히 높은 것을 근거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세계경제에서, 초기에는 국가자본주의가 다국적자본주의 보다 우위를 점유했다는 것을 논증합니다. 경쟁을 통제하면서, 내부의 자본을 집약적으로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자본주의의 우위는 1970년대를 경과하며 무너지게 됩니다. 국가 내부의 자본을 동원하는데 있어서는 국가자본주의에 뒤쳐졌던 다국적자본주의는, 국가 외부의 자본까지 집적하면서 국가자본주의를 앞질러 나갔던 것입니다. 결국, 국가자본주의와 다국적자본주의의 차이는, 자본주의 고유의 ‘축적’을 하기 위한 전략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 자본주의가 이전의 경제체제와 달리 놀라운 속도로 경제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것도, 그 이면에서 극심한 양극화와 계급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특유의 축적능력에 있습니다. 영미식 다국적자본주의가 저질러 온 엔클로우저 운동, 부랑자법, 식민 지배, 노예 무역과 소비에트연방과 동유럽식 국가자본주의가 저질러 온 강제노동수용소, 파업과 기생주의 에 대한 처벌, 등은 다르지 않은 폭력행위로서, 대규모적인 집중과 집적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된 것이죠.

- 다국적자본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자본주의 체제 아래서의 전략이 불가피하게 수정되어야 했습니다. 외국 자본과의 결합 속에서 더 큰 규모의 자본을 축적해야 했는데, 이것은 곧 '노멘클라투라'라 불리우던 국가관료들의 경제 장악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었죠. 지배세력의 균열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니 체제경쟁에서 밀려날 것이고, 다국적자본주의로 나아가려니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권력의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소비에트연방과 동유럽의 국가관료들은 균열합니다. 이런 지배세력의 균열과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맞물리면서 뻬레스트로이카를 비롯한 대대적인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 크리스 하먼은 이런 변화들 속에서, 소비에트연방과 동유럽 내 사회주의적 좌파들의 무기력을 지적합니다. 기존 정치세력들은 분열하고 있었고, 폴란드의 연대노조 체코슬로바키아의 시민포럼을 비롯해 자생적인 대중조직들이 탄생하며 새로운 사회체제에 대한 열망이 표출되었지만, 좌파들의 대안제시가 미흡했기 때문에, 이들 반대파들은 다국적자본주의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새로이 지배세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통제하기도 했구요.

- 결국, 기존의 정치권력은 반대파에 편승했던 국가관료 일부와 반대파 지도자들로 교체되었고, 밀려난 과거 국가관료들은 대거 사영기업체로 이전합니다. 다국적자본주의로 옆걸음질 친 이후, 대거 설립된 사영기업들의 대다수가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내부시장 경쟁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사라진 다국적자본주의 아래에서, 과거 국가관료들은 여전히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죠.

- 2부에서 마이클 헤인스는 다국적자본주의 동유럽의 전망을 예측합니다. 그는 시장을 개방하며 기대했던, 대규모의 해외자본의 유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과거 소련의 무역보조에 의해 보충되었던 내부시장의 경쟁력은 약화되었고, 불안정한 정치상황이 해외 투자자들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이렇듯 동유럽의 경제는 세계시장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시장으로의 편입은, 일국 차원에서 행사되던 최고권력이, 초국적 기업을 비롯한 세계 시장 맹주들의 주변권력으로 새로이 자리매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북한, 베네수엘라, 쿠바와 같이 소위 '현존 사회주의'라 불리우는 국가들의 공통점은, 세계시장으로의 편입, 즉 기존 권력의 재편과 주변화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국가들이 세계 경제와의 협력 없이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북한과 같이 국가의 폭력이기도 하고, 베네수엘라와 같이 풍부한 석유자원의 소유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체제 유지가 지속가능한 것일 수는 없습니다.

- 소비에트연방과 동유럽 국가자본주의의 다국적자본주의로의 전화가 보여주는 진실은, 세계적인 경제협력만이 높은 삶의 질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로 편입된 동유럽 경제의 현실은, 세계적인 경제협력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세계적인 경제협력은 형식에 불과하며, 무엇을 위한, 누구에 의한, 어떤 방식으로의 협력이냐가 근본적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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