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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신을 꿈꾸지 않았다 - 박근혜 53년 인생 이야기
천영식 지음 / 북포스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생산적인 얘기를 주고받자면, 정치인 박근혜를 '박정희의 딸' 로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접근방식은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박근혜의 정치행적 속에서 박정희를 발견하는 방식이죠.
굳이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녀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녀가 현실정치에 개입하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이라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박정희의 딸' 이라는 수식어는, 당대표까지 역임한 주요 정치인 중의 한명이면서도, 별다른 정치적 이슈를 만들고 있지 못한 그녀의 책임인지도 모릅니다. (04년 415 총선에서 대중동원력을 과시했다든지, 선거 유세 도중 커터칼로 피습을 당해 병원신세를 졌다든지 하는 것들은 정치적 이슈에는 못미치는 사건들입니다.)
그녀의 정치적 경력과 내용의 모순이,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이런 모순은 백수에게도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300여쪽이 넘는 그녀의 일화를 읽으면서도, 그녀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 목표를 묻는 질문에 '나라사랑' 이라고 대답했다는 내용 아닌 내용을 둘째 치자면, "세력과 돈, 충성파로 포진했던 20세기 정치에 대한 거부" 내지 "고성장 경제정책, 안보동맹의 강화, 하향평준화를 막는 교육정책의 도입, 작은정부론" 정도가 고작이니, 이거 너무 싱겁다는겁니다. 이런 정도의 거대담론이라면, 그녀의 당적 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으니까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면, 한나라당 내에서 당내 분파를 형성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나, '약간 샌님 스타일에다 이지적이고 개혁 지향적인 소장 그룹' 이라는 정치적 인맥에 대한 것, 등 좀 더 세세한 분석도 있습니다만, 올해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지켜보건데 꽤나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나 싶구요. 이런 점은 올해 말 부터 내년에 이르는 대선국면에서 좀 더 확연해 질 것 같습니다.
'박풍' 이라니, 연예계 에이전시 산업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흔히들 '3김 시대' 와 함께 인물 중심의 정치가 막을 내렸다고 말하지만, 인물이 중심인 것은 여전하되 인물이 형성되는 방식만 변화하는 것이죠. 과거의 인물이 그 개인의 정치적 행적에 의해서 형성되었다면, 현재의 인물은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미니홈피나 16개에 달하는 인터넷 팬클럽(?)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죠.
형식만을 본다면, 문화가 개인의 영역을 넘어 집단의 영역에서 창조되고, 다시 개인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 에이전시 산업일겁니다. 정치 역시, 정당이라는 집단의 영역에서 창조되고 그것이 정권 내지 대통령이라는 개인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라면, 그 또한 한국 정치의 진일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형식을 넘어 내용까지 닮아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에 의해 내세워진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한나라당의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앞세우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