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서프라이즈)



어느 소설가가 웃기는 놈은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를 두고 한 말이었는데, 난 그 말의 뜻이 궁금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말하자면 그건 아마도 유머와 상식을 아는 녀석이라면 그렇게 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담긴 말일 것이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를 둘러싼 이러저러한 소문들이 많았고, 거기에 대한 얘기들이 듣고 싶었다. 다음은 김어준 총수와의 일문일답이다.

하고 싶으면 해야 한다

지승호(이하 지) - 성인용품 판매나 쇼핑몰 운영, 카드 사업 등 딴지의 상업적인 운영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요. 그분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있으신가요?
김어준(이하 김) = 딴지는 팩트보다는 팩트를 둘러싼 오피니언이 훨씬 더 중요한 매체입니다. 일반적으로 매체들이 팩트도 전달하지만, 팩트를 둘러싼 오피니언도 사설의 형태로 기사 말미 또는 기사 논조에 집어넣어서 전달하잖아요. 저희는 팩트 자체의 전달은 무시하는 편이에요. 저희의 주요 기능은 팩트를 둘러싼 오피니언에 있고, 팩트보다는 팩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태도에 집중해 있는 건데,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도대체 어디다 선을 그어서 전선을 만들어서 전선을 둘러싼 긴장과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를 어떻게 취할 것이냐, 어디에 전선을 두느냐가 저희한테는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과거에는 예를 들어 레드콤플렉스의 극복, 문화의 다양성 이런 걸 주장했었죠. B급문화 이런 것을 주장하면서.
그러나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것도 그래요. "문화의 다양성을 획득하자" 이렇게 말을 하면 뭐해. 그말은 딴지 이전에도 무수히 했었고, 그런 말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사실은. 실질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없다는 말이죠. 실질적인 변화는 사람들이 변화해야 일어나는 거 아닙니까?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받을만한 힘을 얻으려면 예를 들어 엽기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엽기라는 단어를 퍼뜨려요. 그리고 엽기라는 단어가 상정하는 상황들이 인기를 끌게 만들고, 사람들이 따라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근데 그 상황이라는 것이 사실은 문화적 다양성이 인정된 상황, 문화적으로 풍성한 현상이나 또는 액션 이런 걸 권장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엽기라는 말이 인기를 끌어서 엽기가 지칭하는 또는 표현하는 상황이 권장을 받아서 자꾸 자꾸 인기를 끌게 되면 뭔가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기는 거죠. 신바람 이박사가 인기를 끄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거죠. 그런 식으로 퍼져나가서 결과적으로 문화적으로 B급 문화까지 포용하고, 하위 문화가 인정받게 되는 거죠. 소위 문화의 다양성을 획득하자는 말은 선언에서 끝나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사회를 변혁하려면 구체화하려는 전략이나 전술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 - 얼마 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새롭게 똥침 놓을 적을 찾고 있다. 일단 성에 대한 이중의식을 다룰 생각이다. 이름하여 핑크 콤플렉스 극복, 작전명 '난봉'이다"고 하셨는데, 그런 맥락에서 얘기하신 겁니까?
김 = 섹스도 마찬가지예요. 성과 관련된 이데올로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구거든요. 유럽만 하더라도 지금 알고 있는 성인식이라든지 성적 자유도, 성과 관련된 자기 결정권의 확고함 이런 것들이 굉장히 오래된 역사를 가진 것 같지만, 불과 20~30년의 역사밖에 안된 거거든요. 그들의 50년대, 60년대의 성의식이 우리와 차이가 없었어요. 68세대가 그 변화의 꼭지점에 있는데, 68세대를 기점으로 사회 변화가 일어나요. 독일 같은 경우에도 60년대에 길거리에서 키스하면 손가락질하고 그랬어요. 물론 잡아가는 건 아니었지만, 소위 말해서 사회변혁을 68혁명 세대들이 이야기하면서 개인의 권리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다뤘거든요. 성에 관한 것, 예를 들어 피임에 관한 것도 정치적인 권리라고 말했단 말이에요. 그런 인식들이 우리가 만약에 80년대에 장정일, 마광수 또는 몇몇 사람들 어깨에 떠맡겨서 그 사람들 개개인들이 희생했던 부분들을 걔네들은 세대 전체가 떠맡았어요. 68세대 전체가 사회에 진출하고, 포르노, 성과 관련된 인식 전반을 뒤집었다는 말입니다. 걔네들이 갈등이 있었어요. 사회적 논란도 일어나고, 기성세대와의 마찰도 있었고요. 분명히 우리와 큰 차이가 없는 갈등을 겪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걔네는 한 세대 전체가 떠맡아서 사회변혁을 이룬 거거든요. 우리도 80년대 비슷한 계기가 있었는데, 사실은 사회변혁, 정치적인 변혁의 담론의 크기에 압도되어서 그런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니 모양이 안난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국은 따로 왔죠.
이념의 진보, 생활의 보수라는 것도 큰 맥락에서는 그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개인의 권리도 마찬가지겠지만, 성과 관련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전혀 건드려지지 않고, 70년대, 80년대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80년대의 결과가 2000년대 정치적 상황이라든가 인터넷 정치 등등의 이데올로기적인 지형을 그리는데 밑그림이 되었는데, 성과 관련된 것들은 붕 떠서 뿌리가 없이 지나갔어요.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 게, 성과 관련된 핑크콤플렉스는 레드콤플렉스보다 극복하기 힘들어요. 왜냐하면 레드콤플렉스는 이론적인 바탕도 튼튼하고, 사회 전반적인 공통의 경험도 있고, 도덕적 우위도 이 쪽에 있고, 동지적 연대도 이 쪽이 더 커요. 물리력, 정치력을 실질적으로 누가 장악했느냐, 흔히 말하는 기득권 세력이 오래 쥐고 있었기 때문에 싸움이 치열했던 것이지, 단순한 숫자로만 말하자거나, 보편적인 인식으로 말하자면 승부는 이미 결정지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핑크컴플렉스 같은 경우는 도덕적 우위가 이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하고 싸워요. 개인의 문제로 치환되어 버렸단 말입니다. 서구에서 60년대 이후 사회적 권리의 문제, 젠더의 문제가 된 것과는 달리 여전히 개인의 품성 문제로 치부되고 있어요. 밝히는 놈, 아닌 놈, 헤픈 년, 헤픈 놈 차원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논리를 개인이 개발해야 되고, 변호도 개인이 해야 되요. 동지적 연대 같은 것은 당연히 생각할 수도 없고요. 결코 더 작지 않은 문제고 연관이 없지 않은 정치적인 문제인데, 따로 떨어져 있잖아요. 이 과정은 훨씬 길고, 어려울 거라고 봐요. 하지만 변곡점만 넘어서면 사회가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주류 방송국이 방송에서 성인용품이라는 말을 쉽게 하거나, 성과 섹스에 대한 주제를 자유롭게 다루게 되는 순간 레드컴플렉스의 극복처럼 핑크 콤플렉스 극복의 한 징후가 될 거라고 봅니다. 한번에 갈 수도 있어요. 한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고 봐요. 워낙 그 밑에까지 대중들은 와 있기 때문에. 그걸 넘어서려면 오랫동안 축적된 '개인의 품성..' 이런 기타 등등의 편견을 한번에 뛰어넘기 위한 탄탄한 이론이 필요한 거죠. 탄탄한 이론과 동지적 연대가 필요하고, 소위 레드콤플렉스 극복과 같이 압축적으로 걸어가야 되요. 그런데 생각해 보자고요. 그걸 '성이라는 게 이런 거야' 라는 글들을 쓰는 것으로는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말로 문화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고, 액션이 안일어나는 것처럼 액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해요. 질적인 변화가 있으려면 성인용품이 합법적으로 팔리고, 그럴듯한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성인용품회사가 될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근데 그게 세금을 내면서 제대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하는 것이 저희한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거죠. 누구나 써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은 사람은 엄청난 죄의식이나 그런 것 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게 취향의 문제여야 한다는 겁니다.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로 바뀌려면 액션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걸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권장하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고, 혹은 동영상을 만들기도 하는 액션이 일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지 - 도덕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만족시켜줄 자신이 없으면 다른 걸 이용해서라도 만족시켜줘야 하는 건 도덕의 문제도 될 것 같은데요.(웃음)
김 = 하하하. 그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예의의 문제라고나 할까요? 일종의. 상호 예의의 문제라고 할까요?

정몽준은 삐졌다

지 - 자신의 성향을 굳이 정의하자면 어떤?
김 = 어떤 식으로?

지 - 좌파, 자유주의자 이런 것 있잖습니까?
김 =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여러모로. 냉정하게 좌우를 나누자면 우에서도 매력적인 게 많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우파라고 할만큼 우파 특유의 비분강개라든지 하는 게 없기 때문에 우파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웃음)

지 - 비분강개는 좌파 특유의 것 아닙니까?(웃음)
김 = 우리나라는 우파들이 좌파 흉내를 많이 내요. 비분강개하는데 정말 미치겠다니까.(웃음)

지 - 대선 전날 정몽준이 지지철회를 했을 때 조갑제가 핏발 선 보수층이라는 글에서 노골적으로 이번 선거가 적화냐, 체제 유지냐를 가름하는 선거로 규정하면서 선동하기도 했는데요.
김 = 그런 사람들 멋지다고 생각해요.(웃음) 흔들림이 없잖아. 일관되고.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들 의견을 좋아합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화려한 논리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시인의 상상력을 방불케하는 논리의 점프가 있잖아요.

지 - 확실히 시적인 상상력이 있어요. 대단하더라고요. 정몽준이 지지철회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김 = 그걸 학술적 용어로 얘기하자면 삐진거죠.(웃음)
 
지 - 아, 그건 전문용어 아닌가요?(웃음)
김 = 삐진 건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는 것 같아요.(웃음) 이런 것 같아요. 그릇이 크다, 작다의 문제가 아니라 저는 그런 생각을 들었어요. 미국 영화 보면 간혹 악당들이 심리치료사와 얘기하다가 '아빠가 강간했어요' '엄마가 때렸어요' 어린 시절의 이런 얘기들이 나오잖아요. 근데 정몽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쟤가 도저히 열등감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열등감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속에. 표면적으로 완전히 치료되어 보일지는 몰라도 마음속에 열등감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거죠.

지 - 정혜신씨의 '남자 대 남자'를 보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엄청난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 나오잖아요. 그래서 일등주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거라는데, 공감이 가더라고요. 어려서부터 아버지 이병철 회장을 보면서 얼마나 중압감을 느꼈겠습니까?
김 = 자기 감정을 도저히 극복 못하는 거죠. 그것들이 규정해놓은 바운더리가 있을 텐데, 거기서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해야하는 중압감도 있을 것이고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그런 결정들을 통해 사회적으로 커지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경력이나 배포나 이런 거와는 상관없는 품성적인 열등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순간적으로 소파 위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상상했어요. '저 자식 울음이 터졌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지 - 요즘 소위 살생부 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코미디죠. 대중의 성장을 인정할 수도 없고, 근처에서 바라본 적도 없는 거죠. 대중은 이만큼 성장했는데, 의지만 있다면 인터넷 등을 통해 끊임없이 학습되고 있고요.

지 - 일부 정치인들은 철공소 애가 저런 걸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을 보고 웃고 있는지도 모르고, '철공소 직원이 그런 것 만들었다고 하는 걸  보고 국회의원들이 웃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웃음)
김 =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은 물론이거니와 그 외에도 엄청난 갭이 있는 것 같아요. 인터넷 혜택을 받고 20, 30대를 보낸 사람들이 성장한 정도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갭은 엄청난 것 같습니다.

지 - 지난번 수능 0점 파문 기사에 관해서 사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지가 무슨 김어준인줄 아느냐는 비아냥도 있었는데요. 김 총수의 '우짜겠습니까? 니가 참아야지'라는 무대뽀식 사과(?)는 사실 상식을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귀엽게(?) 넘어갈 수 있었거든요.
김 = 제가 그때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몰라요. 저희 편집장님이 정확한 내용을 아는데, 가볍지 않은 수준에서는 기획인터뷰를 했는데, 우리 수습기잡니다. 수능시험에서 커닝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나봐요. 그래서 '그게 무슨 자랑이냐'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된 것 같은데, 그 뒤부터의 대응이 나빴던 것 같아요. 삭제도 하고, 기왕 쓴 거 뭘 삭제를 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사과도 어설프고, 사과하려면 사과만 하든지, 튕길려면 튕기기만 하든지.

지 - 일부 네티즌들이 '총수의 글을 보고 싶다', '지금 수준 낮은 글들이 많은데, 총수는 그거 알고 있냐?', '기자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아 딴지의 앞날이 걱정된다' 이런 종류의 글들을 올리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되었다기 보다는 수준이 안되는 글이 올라가는거죠. 예전에는 짤려서 안 올라갈 글이 올라가는 건데, 그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곧 개선될 겁니다.

지 - 어떤 식으로?
김 =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그렇고, 내부 개혁을 통해서 개선해나갈 겁니다.(웃음)

지 - 딴지 기자들 중에서 월급을 못 받고 나간 사람들이 많다던데요.
김 = 경영상황이 계속 안 좋았었어요. 체불자가 10명쯤 되는데, 지금도 계속 갚아나가고 있어요. 딴지 기자들은 거의 밀린게  없어요.   

지 - 항간에는 '딴지 초기에 좋은 글쟁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왜 안보이냐? 총수의 인간성이 안 좋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거든요.
김 = 흐흐흐.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자기 갈 길을 찾은 거죠. 소진되고, 글쟁이가 직업인 사람들이 아니었거든요. 전부다. 회사 다니다가 합류한 사람, 밴드 하다 합류한 사람, 다른 회사에 있다가 합류한 사람도 있는데, 다들 독립했죠. 몇 명은 자기 회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몇 명은 방송국 같은 데로 나갔고.

지 -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화제가 되는 결정적 장면, 결정적 캐릭터를 쓰는 사람이 딴지 출신이라고 하던데.
김 = 그 친구는 원래 방송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고, 인기가 있으니까 계속 하는 것 같아요. 별의별 이야기가 있다는 건 알아요. 나도. 재미있는 얘기가 많더라고요.(웃음)

지 - 김 총수는 인터넷으로 성장한 새로운 형태의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지식인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의 지식인 비슷한 사람들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증이 '박정희 시대부터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요. 어릴 때 월남의 패망은 지식인 탓이다. 국론분열의 결과로 나라가 망하지 않았나라고 공포심을 심어준 부분이 있고, 그게 필요한 문제 제기를 막고, 고민을 못하게 하려는 우민화정책의 일환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과거 지식인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디서 어디까지가 지식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식민을 겪었고, 아직도 우리가 탈식민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두 부류로 나눠서 어용이었거나 아니면 오로지 까기만 하는 겁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대중이 지식인들로부터 마음이 떠난 이유는 뭐냐하면, 그 글을 읽다보면 의기소침해지는 거예요. 비판이 중요한 기능이기는 하지만, 비판하는 것 투성이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자부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선동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미국은, 프랑스는, 일본은, 근데 우리나라는' 그러는 거에요. 계속 듣고 있으면 좇같거든요.(웃음) 맞긴 맞는데, 열받는 거지. 사람들이 야단 맞는 국민학생처럼 느껴지는 거죠. 근데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지적 마조히스트라고 보는데,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맞다, 맞어 그러면서,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비판을 넘어서서 오로지 혼만 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결국 이룬 것은 뭐가 있느냐' 이렇게 연결되는 거죠. 한편에서는 앞서서 나가서 사람을 일깨우고 고생했다, 이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한쪽에서는 훈장선생에게 혼나듯이 혼만 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박노자 글을 계속 읽다보면 '야, 똑똑하다. 외국놈이 어떻게 우리나라를 이렇게 잘 아냐? 이 친구는 역사책을 도대체 얼마나 본 거야'하다가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그래 우리 좇같애. 어쩌라구' 이런 생각이 막 들거든요.(웃음) 그런 면이 있어요. 욕먹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미를 대중들에게 가르쳐주려는 기본적인 태도가 너무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대중들과 괴리시킨 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방식은 여러 가지여야 하는데, 대중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은 거죠.

진보는 비즈니스다

지 - 딴지일보는 요즘 유행인(?) 자발적 유료화를 할 생각은 없습니까?
김 = 전 자살이라고 봅니다.(웃음) 고육지책이라고 보는데,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데 대한 이해는 100% 하는데, 그건 일종의 구걸이거든요. '자존심이 상한다' 이런 차원이 아니고, 그건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정 안되면 그렇게 할 것 같기는 한데, 지금도 먹고살기 힘들지만, 그게 모델이 될 수도 없고, 잠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 - 아까 진중권씨 얘기를 했었는데요.
김 = 진중권씨한테는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라고 권하고 싶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표하는 식으로 했으면 해요. 그 분이 가진 재능이 대단한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많은 게시판에서 소진되서, 본인이 재밌어서 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지 - 지식인 중에 인터넷에서 끝장을 볼 정도로 글을 쓰는 유일한 분 아닙니까?
김 = 그렇죠. 인터넷으로 시작한 사람일지라도 지쳐서라도 그렇게 안하게 되죠. 전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가 정치를 하면 잘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요.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들 의견을 조율해야 하고, 별의 별 요청이나 욕설 같은 것도 때로는 걸러 듣고, 때로는 반응해야하는 판단을 하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거든요. 사실 일일이 반응한다는 그 자체가 쓸데없는 일이니까 안하는데, 진중권씨는 끝장을 보겠다고 하는 것 같아요. 전 그런 방식이 거의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돌려놓는 방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행동을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할만큼 했으니까 개인 홈페이지 만들어서 운영하고 관리하고 하면서 그 안에서 차분하게 소통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웃음)

지 - 한국의 종교문화, 특히 기독교 문화에 대한 비판은 왜 하지 않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김 = 정치, 종교, 섹스 이 3대 주제가 유럽 사교계에서는 거론하지 말아야하는 주제랍니다. 근데 이게 빠지면 뭐가 재밌어요?(웃음)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거 세 개란 말입니다. 근데 딴지가 정치, 섹스만 얘기하고, 아직 종교는 얘기 안하는데, 종교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종교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차원이 아니라, 논리를 넘어서는 문제 아닙니까? 섹스나 정치는 논리로 얘기할 수 있어요. 만약에 유사종교와 사이비 종교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이비 종교가 사회적인 해악만 있냐고 하면 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추천하거나 권장하거나 할 문제는 아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거든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겠지만.(웃음) 기독교라는 걸 건드리기 시작하면, 기독교가 쌓아놓은 허구의 세계가 얼마나 어마어마합니까? 이거 장난 아니게 된다고 봅니다.(웃음) 하지만 다음 아젠다로는 한번 해보죠. 뭐. 우리가 기복신앙적인 성격이 강해서 종교라기보다는 주술적인, 기복적인 거라서요. 물 떠놓고 비는데서 한 발도 안나갔다고 보거든요. 기독교가 탄생했을 때 기독교와 우리가 토착화한 기독교는 모양이 다른 것 같아요.

지 - 노당선자가 한겨레 방문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방문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한겨레가 오히려 큰일 났다고 생각해요. 이제 어떻게 하나?(웃음) 저는 한겨레를 보면서 진보진영의 한계를 봅니다. 딴지의 한계를 보는 거죠. 오마이뉴스가 하고 있는 자발적 유료화의 한계 같은 것을 봅니다. 발상이 아마츄어적이거든요. 우리편끼리 돈 좀 보태달라는 건데, 사실은 기업이 할 짓이 아니라는 거예요. 냉정하게 말해서 기업의 논리대로 살아남은 조선일보 같은 곳에 부끄러운 일이거든요. 사실은 제가 조선일보 욕하고 그러지만, 나쁜 놈들인 건 맞는데, 기업의 논리로 따지자면, 조선일보의 반의반도 안되는 게 한겨레거든요. 조선일보의 근로자에 대한 복지, 급여를 보면 한겨레 열악합니다. 물론 한겨레는 아직 아니지만, 자발적 유료화 같은 발상은 아마츄어리즘입니다. 그게 우리 진보의 한계라고 봅니다. 솔직하게 비즈니스화하고 살아남고, 자기 생각을 퍼뜨릴 기반을 만들어내고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좌파 진영의 도덕적 올바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 같은 것하고 부딪히는 부분이 많아요. 저도 겪고 있고, 오마이뉴스도 겪고 있다고 보는데, 크게 부딪히지 않으면서 기업의 기본 룰들을 지켜내는 생존가능한 비즈니스 기업이 되느냐에 소위 말하는 진보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아마츄어리즘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 - 도올은 문화일보는 오지 말라는 사설을 썼는데요. 만약 노당선자가 딴지일보를 방문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김 = 오라고 하죠. 우리한데는 득이 되는 뉴스니까.(웃음) 노당선자의 방문은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해요. 고마움에 대한 표시 같기도 하고, 한겨레 졸라 고생했잖아, 근데 돈 못 벌잖아.(웃음) 이직률이 제일 높아요. 이제는 소위 먹고사는 문제로 가야되는 시점이에요. '얼마나 진보적으로 먹고 사냐? 그게 진보적이기만 하면 되느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조선일보는 보수적으로 잘먹고 잘산다는 말이거든요. 거기에 비하면 저희나 오마이뉴스나 한겨레나 또이또이로 아마추어입니다.

지 - 그런게 매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난번에 비판하기 위한 비판으로 상업성을 거론하면 이렇게 말한다고 하신 적도 있는데요. '니가 돈 안벌면서 해봐. 자식아'라고. 대중들이 진보진영의 열악함을 인정하고, 어느 정도는 소비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거든요. 실제 MP3가 아티스트 진영의 앨범을 안팔리게 하는 측면이 있어요. 신해철 말대로 오빠의 사진에 대한 열망이 있는 아이돌 진영의 앨범은 여전히 산다는 말입니다. MP3 다운 받는 건 좋은데, 그러고 나서 '홍보해주는데 왜 그러냐?'라고 오히려 욕하는 것과 '성인용품이나 팔아먹는 새끼들'이라고 욕하는 것이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김 = 이중적이죠. '나는 시민단체에 돈 한푼 안내지만, 니네는 고고하게 살아남아야 해' 하고 욕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오마이뉴스가 자발적 유료화라는 칼을 빼들었을 때 몰리고 몰려서 뽑은 거거든요. 쉽게 뽑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전 걱정했어요.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거든요. 돈을 왕창 투자를 받거나,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되는데, 그 이외에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저는 그 길이 독자들을 위해서도 나쁜 길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전반적으로 돈 버는 것에 대해서 치사하게 보고, 옛날에 상행위 자체를 천박한 거라고 봤잖아요. 文을 중시하고. 건강하게 돈을 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우리가 정당하게 돈을 벌지 않고, 편법으로 벌어서 그런 거지. 정당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찬양 받아야 될 행위예요. 권장되어야 할 일이죠. 진보진영의 자기 강박을 빨리 벗어야 합니다. 룰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데, 모양을 만들려고 기를 쓸 필요는 없죠. 한겨레 같은 경우 '저러다 간다' 싶은 게 안타까워요. 정말. 조선일보가 돈을 잘 벌어서도 밉거든요. 진보는 배고파야 한다고 그딴 소리나 하고, 지가 배가 고프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방문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방문할 수 있고, 욕할 수도 있다고 봐요. 한겨레를 보다보면 걱정이 된다는 거죠. 걔네가 진보진영에서는 가장 돈도 많고, 덩어리도 크고, 역사도 오래 되고, 사람들도 많이 모여 있고, 힘도 가지고 있는데, 비실비실 대는 거 봐요. 못 벗어나잖아요. 거기서. 악순환이예요. 사장 뽑는 것도 보세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웃음)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제대로 된 공산주의도 아니고, 사장을 2년에 한번씩 바꾸고 그러고 있으니.

지 - 예전에 드라마 겨울연가와 관련된 어떤 대담에서 사랑했던 사람을 10년동안 잊지 못하고 기다리는 것은 정신병 아니냐는 말을 했는데, 그런 순애보를 안 믿는 겁니까?(웃음)
김 = 그런 건 아니고, 10년 동안 몰두하면 정신병이죠.(웃음) 그냥 살다가 다른 사람 만나고 연애 하다가 10년만에 다시 만나 보니까 '잊을 수가 없더라' 라고 하면 이해를 해요. 10년 동안 그거만 생각하고 있으면 정신병이지. 그걸 잘했다고 그러니 정신병이지(웃음). 그건 사회 부적응이예요. 연애하고 결혼까지 해서 애 낳고 살다가 다시 만나보니 감정이 되살아나고,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모든 걸 포기하고 그럴 수는 있다고 봐요.(웃음)

지 - 살다가 마흔 넘어서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여자였다' 그런 경우도 있으니까요.(웃음) 노당선자의 광주 95% 득표의 의미를 어떻게 보십니까?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전라도 독립해라, 전쟁하자' 이런 얘기들도 나오는데.(웃음)
김 = 사실 독립해야 할 것은 경상도죠.(웃음) 내가 경상도놈이긴 하지만, 이거는 흑인들 독립하라는 말과 같은 겁니다. 막말하자면 그 말속에서 변호해 준답시고 전라도에 대한 가시가 품어져 있긴 하지만, 미국에서 흑인들 독립하라는 말과 같아요. 흑인들이 흑인들만 지지한다고. 역사를 봐야죠.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왜 그러는지. 그렇게 만든 가해자들이 독립해라고 한다면 좇까라고 할 수밖에 없죠.(웃음) 저는 어린애들이 그런 소리한다고 봐요. 이제까지 그런 데 관심도 없었거나.

지 - 월드컵에 관련된 책을 준비한다고 하던데, 무슨 내용인가요?
김 = 한마디로 월드컵 만세라니까.(웃음) 근대가 국민국가라는 걸 발명해냈는데,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국민국가라는 걸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축구든 뭐든 간에 그런 미증유의 에너지를 끄집어 내놓고 그것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는 작업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서 그걸 그 의미를 한번 정리해 보려고요. 근데 만만치 않을 것 같긴 하네요.

# 필자후기

저는 김어준을 둘러싼 몇 가지 얘기들이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랑 많이 다른 부분도 있지만, 김 총수에게 많은 동질감을 느끼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의 입장과 내 입장이 비슷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친한 사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어도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도 어쨌든 인터뷰는 인터뷰니까 최대한 객관적인 모습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만약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김 총수의 다음 약속 시간 때문에 40분 남짓밖에 인터뷰를 하지 못했고, 제 인터뷰 자체가 원래 상대방을 호되게 몰아붙이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줬으면 합니다. 사적인 대화 같은 분위기가 강했고, 시간이 쫓겨 허겁지겁 진행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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