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 7색 - 일곱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곱 개의 세상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한 3년쯤 되었을겁니다. 중국에 대한 책을 모아서 읽었는데, 무척 눈에 띄는 책이 있었습니다.
<저 낮은 중국> (퍼슨웹) 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당시 숱하게 쏟아지던 중국 관련 서적들과 이 책과의 차별성은 바로 '현장감'이었죠. 이전에 수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쉬이 느끼지 못했던 갈증이었기 때문에, 반가움이 컸습니다.
현장감의 비결은 인터뷰라는 형식에 있었는데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집필하는 방식이 아니라, 17명의 각 계층의 인물들을 인터뷰하여 묶어놓은 것이었죠.

저는 이때부터 인터뷰에 관심을 갖게됩니다. 그리고, '퍼슨웹' 출판사가 인터뷰를 전문으로 하는 커뮤니티에서 출발했다는 것도 알게되었고, 인터뷰만을 전문으로 하는 코너를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7인 7색>은 인터뷰라는 형식만으로 충분히 흥미를 끌었던거죠. 저자인 지승호씨는 익히 알려진 인터뷰 전문 기자라고 합니다. 웹진 데일리 서프라이즈에서 '지승호의 인터뷰정치'라는 코너를 운영하셨었고, 몇권의 책을 쓰셨더군요.

<7인 7색>의 최소공약수는 소위 '진보적'이라고 불리우는 정치인 지식인들 - 박노자, 유시민, 김규항, 진중권, 이우일, 하종강, 노회찬 - 입니다.
제목에서는 마치 7가지의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지승호씨가 바라보는 그들 사이에는 최소한의 공통점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인터뷰 내용에서 인터뷰이(interviewee) 서로에 대한 생각을 묻는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지승호씨가 이들을 '화해시키려한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저도 대략 동감합니다.

아쉬운 점은, 인터뷰 특유의 현장감이나 기획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것인데요,
인터뷰이 개개인이 내면의 삶을 넘어 (익히 알려진) 외면화된 활동을 가지고 있는, 소위 '유명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지승호씨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터뷰 내용은 인터뷰어의 기획보다는, 인터뷰이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질문 중에는 인터뷰이가 이전에 썼던 글이나 활동에 대한 자료를 근거로 한 것들도 있으니까요.

인터뷰이에게 편향적인 인터뷰는, 이미 인터뷰이들의 활동을 잘 알고있는 독자에게는 그다지 매력이 없을겁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독자들이 훨씬 많이 있지만요.

# 박노자

국제정세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룹니다. 오세철 교수가 말했듯이, 한국 사회주의 운동에서는 무정부주의나 아나키즘을 찾기 어려운데요, 사실 이 둘은 사회주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국가관을 거부한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다르지만,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기 때문이죠. 아나키스트임을 표방하는 박노자 선생은 7인의 인터뷰이 중에서 가장 (현 체제로부터) 열린 자세로 국제정세를 얘기합니다.
그는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패권 싸움을 가열화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리고, 극단의 무력대립은, 단기적으로는 사회억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쟁의 자기파괴적인 특성으로 인해 혁명적인 전망을 열어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패전 이후의 소련, 베트남 패전 이후의 미국처럼 말이죠.

그 외에도, 한국경제와 부동산, 군대문제, 민족주의, 육아, 교수의 귀족화, 등에 대해서도 발언합니다.
"어느 자본주의 국가든 성장기가 끝나면 계급의 경계가 뚜렷해진다." 는 표현이 인상 깊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부의 대물림' 인데요, 70년대 조성된 중산층의 분화, 사회 양극화가 굳어져서 더 이상 신분상승(?)의 기회가 없다는 것이죠. 이런 불만들이 자본주의 체제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라는 성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있듯이, 70년대의 경제개발과 오늘날의 경제개발이란 분명히 다른 것이죠. 산업은 더 적은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고, 이것은 곧 산업의 개발과 일자리 창출의 연결고리가 미약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노동 배제적인 어떤 경제모델도 지속 불가능하겠죠.

# 이우일

이우일 작가의 만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 다소 낯설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함께 비루해하기 보다는, <순풍산부인과>를 보면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편이 낫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역사물이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제 취향은 '현실성'에 있는데요,
별로 유쾌하지 않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현실성이 전제되어야 그 감정이 '날것'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날것이 아닌 가짜 감정, 인스턴트 감정인 바에야, 기뻐도 그만 슬퍼도 그만이잖아요.

# 유시민

유시민 의원은 스스로를 이렇게 평합니다.
"나는 온건 진보 혹은 중도 좌파적인 성향의 정치인이다. 경제 정책 분야에서는 다소 보수적이고,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서는 다소 진보적인, 그렇게 결합되어 있는 소셜 리버럴"

그를 비롯한 개혁세력의 정체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뒤에 등장하는 하종강, 김규항씨의 평과 유시민 의원 스스로의 평이 다르지 않아요.
이들 이 말하는 개혁과 국민들이 기대하는 개혁은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중점이 달라요. 전자가 후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전자를 아무리 제대로 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추상적으로 '경제의 민주화'죠. 나의 의사가 온전히 정치에 반영되는 것이 정치의 민주화이고 정치개혁이라면, 나의 노동이 나의 경제활동이 온전히 나의 무난한 생계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이 경제의 민주화입니다.

물론, '경제 정책 분야에서 다소 보수적'이라는 것을 두고 시장만능주의라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현재 한국 시장체제에 그의 문제의식을 옅볼 수 있습니다.
하종강 선생은 "어느 구조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느냐가 유익과 해를 결정한다." 고 말했습니다. 유시민 특유의 합리성과 유쾌함도 딱 거기까지만이겠죠.

# 진중권

지식인으로서 자기정립이 매력적입니다. 지식인이 지사인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인데요, 이제 지식인도 엔터테이너(entertainer)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의 변명>에서, 진실과 존재조건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로 지식인을 규정했는데요, 진중권에 따르면 그 존재조건이 변했다는겁니다. 존재조건이란 쉽게 얘기해서 먹고사는 문제인데요,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는 시장에 달려있는데, 과거 권력에 대한 폭로가 청와대를 대상으로 했다면 이제는 시장이라는거죠. 생존을 앞에 두고, 지식인의 갈등은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다는겁니다.
교수 노릇을 하고 있는 그이지만, '진중권 교수' 가 아닌 '진중권' 으로 불리우는 것을 개의치 않는, 그만의 냉정한 자기정립입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균형자로서의 진중권의 모습입니다. 강준만 선생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균형자의 역할을 자임합니다. 개혁세력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수구세력들을 돕지 않으려면 전략적으로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저로서는 좀 생소한 모습이에요. 물론, 그는 민주당 구주류에 대해서 호의적인 입장을 가진 강준만 선생을 비판했지만, 정도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 노회찬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07년 대선을 두고, 보수 대 진보의 양대 축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과의 경쟁이 막바지에 달할 것이라는거죠.
노회찬 의원의 예측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양대 우파정당간의 극한 경쟁과 더불어 민주노동당의 실력발휘가 필수적이겠죠. 지금까지의 민주노동당은 그 스스로 지적하고 있는 것 처럼, 이미지에 의해서 지지율을 유지해가는 측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정당의 스펙트럼, 그 중에서도 경제 정책에서의 스펙트럼은 주관적으로만 결정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국가 내 산업의 경제적 지불능력이 객관적 요소로 존재하는 것이죠. 유럽의 좌파정당들 역시, 충분한 산업발전의 토대 속에서 성장하고, 신자유주의와 함께 쇠퇴하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성을 당장의 집행가능성으로 풀이한다면, 민주노동당 경제정책의 폭은 굉장히 좁아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현실성을 따지면 정책의 독자성이 떨어지고, 보수 정당들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려면 당장의 선거일정에 연연하지 않아야 하니까요.

"지지나 호감을 얻기 위해서 나의 정체를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는다"는 노회찬 의원의 선전을 기대합니다.

# 하종강

진보적 지식인들의 화해를 추구한다던 지승호씨와 부채감을 지고 묵묵히 활동하는 하종강 선생의 각축전(?)이 드러난 인터뷰였습니다.
소위 제도권과 타협했다는 배일도 의원에 대해서 조직운동과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부분과, 조직운동을 할 자신은 없지만 '평생 노무상담이나 하고있다는' 자평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직한 선생의 모습을 응원합니다.

# 김규항

김규항 선생의 블로그를 가끔 들르면서, <고래가 그랬어>의 출간에 대한, 그리고 두 아이와 아버지의 대화를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화제로 등장하는군요.
"이미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과 실제 삶이 연결되지 않는 세대를 상대로 글을 쓰는 것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는, 아이들의 인권교육에 대한 선생의 고민이 인상적입니다. 타성에 물드는 것을 다시 한번 경계하게 합니다. '조직'이란 좌우와 규모를 구분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그의 고민에는 약간의 갈증도 담겨있습니다. 그간 "개혁은 진보가 아니다" 라며 강준만 진중권을 비롯해 네티즌 다수가 개혁 우파에 힘을 싣고 있는 상황을 역전시키려 노력해왔던거죠.
하지만, 하종강 선생이 말한 것 처럼, 왕도가 없는 것이 대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장의 지지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장을 견지해야겠죠. 길 잃은 배가 등대의 불빛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등대가 날씨와 상관 없이 불을 밝혀왔기 때문인 것 처럼요.

"전통적인 좌파의 논리 만으로는 부족하기에, 급진성을 유지하면서 미래의 비전을 확보하고 싶다." 는 그의 이후 행보를 주목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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