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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살리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형식적으로는 총 8장으로 되어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크게는 조선ㆍ중앙ㆍ동아일보의 잘못된 보도행태를 다루고 있고, 작게는 대통령 노무현과 민주당 내 개혁세력 (오늘날의 열린우리당) 에 대한 쓴소리입니다. 300여쪽에 달하는 본문은 대부분 조중동의 사설과 기사들을 인용하고 반박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조중동에 대한 강준만 선생의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죠. 그 스스로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매개로 해서 강준만이 펼쳤던 싸움이, 근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의 수구 기득권 세력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 자신은, 특정 정권을 방어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존 기득권 세력과의 온전한 단절을 위한 목적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이 지적하고 있는 조중동의 숱한 보도행태를 가장 잘 요약하는 표현은 '당파성'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가지 사례들은, 조중동의 당파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다양한 표현양태인 것이죠. 정치적인 지향과 논조는 필요하지만, 당파성만 너무 앞세워 언론으로서의 기본규범까지 어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선생의 충고입니다.
물론, 선생의 글은 어렵지도 딱딱하지도 않습니다. 선생의 글이 주는 희열이란, 익히 알려져있는 것 처럼, 성실함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인용과 비판문답지 않은 해학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통쾌한 선생의 글에는, 함정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련의 책들이 현실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역사의 기록이라는 의미에만 머물러도 좋은 건지, 저자는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이것은 여전히 600만부 이상을 간행하고 있고, 막강한 의제 설정으로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아성에 대한 토로이고, 전략과 전술을 강조했던 선생이니만큼 그동안의 '글쓰기를 통한 공격전략'에 대한 회의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의지와 별개로, 독자들은 선생의 글을 읽으며, 변하지 않는 현실에서 한걸음 떨어져 자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숱한 저서를 냈고,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셨던 선생의 고백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당파성이란 모든 형태의 의식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특징입니다. (선생이 말하는 '당파성'이란, 마르크스-레닌주의 본연의 당파성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약하자면, 당파성은 글을 통해 공격한다고 해서 약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거죠. 조중동 뿐만 아니라 어떤 세력이라도, 당파성은 곧 존재의 의미일 것입니다. 선생의 주문대로 당파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해체'이거나 혹은 전혀 다른 세력으로의 '변화'를 의미할 것입니다.
소위 "니네 너무 심하니까 좀 살살해라." 라며 조중동의 당파성 약화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지면의 50%를 부동산 광고로 채우는 신문과 절절하게 구독료 인상을 펼치는 신문의 논조는, 크게 볼 때 딱 그만큼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언론의 논조가 수익창출모델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것을 '펜'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들에 대한 헛된 기대를 거두고 정면 승부를 해야합니다.
정면승부란 조중동을 압도하는 의제설정을 의미할 것입니다. 판매부수로 표현되는 의제설정력이, 단순히 자본의 규모나 잘못된 독점판매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분명 신문의 내용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죠. 즉, 비주류 언론 역시 조중동을 대체할 만한 독자적인 의제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불공정한 경쟁구도보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빠진 경쟁이란, 승부가 결정된 경쟁이거나, 결국 그들과 같은 매커니즘으로의 귀결을 의미할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선생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옹호가 전략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에게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부이기 이전에, 수구 기득권 세력이 사정없이 흔들고 있는 정부라는 것이죠. 양당 구조인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노무현 정부의 몰락은, 곧 수구세력들의 재집권을 의미하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자칫 "좌우지간 잘못했다." 라며 수구세력들의 비판과 영합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의 전략이 전략적으로도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이 직접 말씀하셨듯이, "자기가 잘해서 점수 딸 생각은 않고 남 안되는 것에 편승해 이익 보려는건 부도덕하며 성공하기 어렵다." 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강준만 선생께서 좀 더 정치적으로 구체적인 발언을 하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