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3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점령

- 이스라엘 검문소(몇일씩 기다리기 일쑤)
- 주거지역 폭격, 철공소 폭격
- 자식, 남편, 여성(오빠와 약혼자가 이미 순교)의 순교
- 가자지구 주변으로 콘크리트담 건설, 해안선 봉쇄, 국제공항 파괴

-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을 보며 성장
- 하마스의 창시자(87년) 야신의 암살과 지하드(성전) 운동의 확산
"무슬림으로서 남의 땅을 침략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땅을 침략당했을 때에는 되찾아야 한다."
- 87년 1차 인티파타(팔레스타인 민중봉기)

- 부서진 자치정부 청사 안에 천막을 쳐놓고 집무
-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상징 아라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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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 돔 사원: 예루살렘에 살고있는 팔레스타인인 생활의 중심. 심판의 날에 알라가 내려와 구원.
- 통곡의 벽: 메시아가 내려와 세울 천년왕국의 기초. 유대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곳. 예루살렘을 시온이라 부름.
- 유대교, 아르메니안, 기독교, 무슬림이 공존하다가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분열.

- 1917년 밸포어 선언
- 1947년 UN총회. 팔레스타인 국가와 이스라엘 국가 동시 인정
- 1948년 시온주의자 벤구리온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건국
- 주변 아랍국가들의 정규군의 팔레스타인지역 침공
- 1950년 요르단이 요르단강 서안지역 합병했으나 인정 못받음
- 팔레스타인 난민(주변국 250~400만)의 유랑과 난민촌 건설
- 1967년 6일 전쟁: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이 통치
- 1974년 아랍연맹은 팔레스타인해방동맹을 유일한 국가로 인정(이슬람교도, 기독교도, 유대교도 각각의 국가 수립을 주장)
- 1980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수도로 지정하면서 무슬림들은 2천여년간의 주거를 박탈. 이스라엘은 계속 유대인 주거지역을 확장. 붉은 신분증(점령지역)과 푸른 신분증(피점령지역)
"우리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평화를 원합니다."
- 1993년 평화협정으로 가자와 웨스트뱅크에 자치정부 수립

- "(4천여년 전)예루살렘은 본디 이스라엘의 땅이다." "(난민문제와 관련해서) 그들이 먼저 공격을 시작해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 전 세계(예멘 양탄자 작전, 이디오피아)에서 유대인들을 불러들여. 공격적으로 정착촌 건설하고 군대 주둔
- 이스라엘 정착촌이 평화의 걸림돌, 갈등(이스라엘 정착민-팔레스타인 원주민)의 중심지 "그들은 야곱의 자식들을 혐오한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전쟁인 것 같습니다."

- 국제법상 정착촌 건설은 범죄이다.
- 국제사법재판소는 장벽이 불법이며 철수시키라고 판결

- 2000년 2차 인티파다: 샤론이 무슬림 성전을 침략하면서 발발. 1,000명이 사망. 이후 자살폭탄 테러와 군대 폭력이 지속. 02년부터 장벽 건설

- 샤론 총리의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안에 대한 반대 고조
- 2004.11 아라파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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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3 미국의 이라크 침공
- 2003.05 종전선언
- 2003.12 후세인 체포
- 2004.06 주권 이양. 이라크 임시정부 공식 출범.

- 사담 시절 공무원들은 피신 (사담 시절 수혜인들은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 미군의 침공과 빈곤 추위
- "사담도 싫지만 미국도 싫다." "미국은 체제를 바꾼다고 들어왔지만, 스스로 체제의 점령자가 되었다." "미국은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 미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지지했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 무엇인가."
- 설문조사의 90% "내전이 발발하더라도 미군이 철수하길 바란다."

- 임시정부는 해외망명 지도자(알라위)들로 구성. 국민위원회 역시 위로부터 조직.
- 강경 시아파 종교 지도자들이 중심으로 부각.

- 2004.08 나자프(시아파 종교성지) 대공세. 700여명 사망. 시스타니(시아파 최고 지도자)의 온건 노선으로 인해 교전은 중지.
- 2004.08 팔루자(구 바트당 세력과 수니파 저항의 중심지) 대공세. 1000여명 사망.
- 2004.11 팔루자 2차 대공세

- 미국은 저항세력이 이라크 국민들과 상관없는 알 자르카위(요르단)나 알 카에다와 같은 외국 출신 저항세력이라고 주장.
- 이라크 국민들은 극단적인 테러에 반대하지만, 저항세력에 동조한다.
- 알 자르카위가 가공의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음. 자르카위에 대한 정보의 출처는 전부 미국이다.

- 아부 그레이브 교도소 : "15일동안 벌거벗은 채 있었다."
- 이라크 이슬람 혁명 최고위원회(이라크 최대 정당) : "우리는 점령을 끝내길 주장했고, 구체제 붕괴 이후에 치안유지를 맡길 바랬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았다." 이라크의 모든 이념, 민족, 종교를 포괄하는 정부를 수립할 계획

- (1) 이스라엘 지원을 위한 정치구도의 변경 (2) 2위 산유국 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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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시아파는 인구의 60%. 지난 30년간 차별받아 옴. 레바논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13억 무슬림 중 10% / 이란은 시아파가 90% (시아파가 권력 장악한 유일한 국가)
- 나자프 침공과 포로학대에 대한 이라크 시아파의 저항이 중동의 시아파를 자극.
- 시아파 무슬림들의 순교 신청이 계속됨 / 레바논 50만 대중집회

"왕의 억압과 폭정에 맞서 봉기하라" - 이맘 아야툴라 호메이니
- 1953 미국의 지원으로 쿠데타 일어나 왕정 복귀
- 1978 팔레비 왕정 타도 시위
- 1979 호메이니 귀국. 혁명에 착수. 최초의 시아파 정권 수립.
- 1979 급진적 대학생들이 주이란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팔레비 환송 요구.
- 1980~1988 왕정 타도 직후 이란-이라크 전쟁. 100만명 사망.
- 1981 인질 석방
- 1989 호메이니 사망 : 이슬람 원리주의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함. 반이스라엘 반시오니즘 반서구 반기독교 의식.
- 1997 하타미 대통령 당선(개혁성향) * 치안과 사법, 등 보수파 종교 지도자들이 장악. 신문, 대학은 개혁파 / 모스크, 경제는 보수파
- 젊은이들은 별로 관심이 없음 / 젊은 여성들의 옷차림이 불량해지고 있다며 전통고수 집회

- 1983 레바논 헤즈볼라: 이란과 같은 정부를 세우는 것이 목표

- 2004.12 국민적 지도자로 인정받던 이라크 이슬람 혁명 최고위원회(이라크 최대 정당) 하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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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만 자와히리(빈 라덴의 참모, 이슬람 율법학자)는 아랍 정권을 반종교적인 미국 종속적 권력으로 본다.

- 1979~1989 소련의 붉은 군대가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슬람 세력(무자헤딘)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인 저항 시작. 빈 라덴도 포함. (다양한 국적의 무슬림들이 성전을 위해 결성된 첫번째 사례)
미국 CIA의 무기, 재정, 등 지원도 있었으나 공식적인 증거는 없다. 미국은 반소, 반공을 위해 이슬람 세력들을 규합. 알 카에다의 조직적 기초가 됨.
- 1996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정권을 수립
- 1998 빈 라덴이 '유대인과 십자군에 대항하는 국제 이슬람 전선'을 결성. 빈 라덴의 주장은 (1)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외국 정권을 몰아내는 것 (2) 이스라엘군의 철수와 팔레스타인의 해방
- 2001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군인들이 알 카에다 소탕작전을 실시.

-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은 이슬람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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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인구는 62만 2091명(1997)이다. 아라비아인은 이 도시를 쿠드스(신성한 도시)라고 부른다. 행정수도는 텔아비브야파이다. 동부는 요르단령이며, 서쪽은 1948년부터 이스라엘령이 되었고, 1950년에는 그 수도가 되었다. 1967년 6월 중동전쟁 이후로 유대교도·그리스도교도·이슬람교도가 저마다 성지(聖地)로 받들고 있는 동쪽 지역도 이스라엘의 점령지이다.

이스라엘 (인구: 647만 3000명)

수도는 예루살렘이고 공용어로는 헤브라이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중해 동쪽 팔레스타인 지방의 아랍 세계에 존재하는 유대인 공화국이다. 이스라엘이란 헤브라이어로 '하느님이 지배하신다'는 뜻으로, 구약성서(창세 32)에 나오는 이삭의 둘째 아들 야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일기 시작한 시오니즘 운동을 배경으로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하여 1948년 5월에 국가를 수립하였으므로 주변 아랍 여러 나라와 적대 관계에 있으며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1967년의 중동전쟁으로 옛 예루살렘시(요르단령)를 비롯한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등 인접한 아랍 여러 나라 영토를 점령하였으나 점령지역을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이스라엘화하려고 하는 노력은 국제적으로 승인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 지역을 합치면 이스라엘 영토는 3배로 불어나고 133만의 아랍인 인구를 수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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