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imbc)



2004년 11월 29일 (월) / 제 35 회
제 1 부 : 21세기의 게토, 팔레스타인

게토. 중세 유럽에서 설치한 유태인 강제 거주지역, 독일이 만들었던 유태인 강제 수용소. 그러나 게토는 역사 속에 묻힌 단어가 아니다. 21세기인 지금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게토의 현장. 팔레스타인을 찾아가 본다.

◈ 탱크 VS 돌팔매질

마을 농장에 들어온 이스라엘의 탱크와 불도저. 건물을 부수고 농장을 망가뜨리는 그 끔찍한 괴물 앞에서 팔레스타인 소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돌멩이를 집어 든다. 무참히 발포되는 총탄에도 소년들이 집어 들 수 있는 건 작은 돌멩이가 고작. 거대한 탱크를 향한 팔레스타인 소년들의 돌팔매질. 비록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에 불과하지만 소년들은 상처받은 그들의 자존심을 그렇게라도 드러내야만 한다.
죽음을 무릅쓴 분노의 돌팔매질은 이스라엘 군이 쏜 총탄을 맞고 한 소년이 쓰러져도 멈출 줄 모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계란을 바위에 던져야 거대한 바위가 깨질 수 있을지.. 전쟁 같은 일상을 버텨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소년들의 저항. 그 저항의 중심에서 소년들의 외침을 들어본다.

◈ 저항의 상징, 하마스

1987년 이스라엘 공격을 위해 야신이 조직한 저항 단체 하마스. 지난 3월 이스라엘은 야신을 암살했고 한 달 후 새롭게 지도자가 된란티시 역시 암살당한다. 하마스는 그들의 죽음이 촉매제가 되어 더욱 강화된 저항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하마스를 키워내고 있는 훈련장을 찾은 취재팀. 취재팀은 한여름 태양 아래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열심히 훈련 받는 많은 젊은이들의 땀을 담았다.
그러나 취재 두 달 후 훈련장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하마스의 저항과 희생.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순교냐? 테러냐?

팔레스타인의 사브라 마을. 자살 폭탄 테러로 죽은 사람들의 유가족을 취재하기로 결심한 취재팀은 몇 차례의 촬영 시도 끝에 나사르 가족을 만나게 된다. 가족 중 14명이 순교했다는 나사르 가족. 나사르 가족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 순교자 유가족들을 만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동네마다 즐비하게 늘어놓은 순교자의 포스터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순교를 통한 그들의 저항은 끊임없이 계속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순교가 아니라 테러라고 말하는데... 순교라는 미명 하에 왜 그토록 많은 팔레스타인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내 던지는 지. 유가족들이 말하는 순교의 이유와 의미를 들어보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

◈ 아라파트, 눈을 감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었던 아라파트. 11월 11일 그가 숨을 거뒀다. 불과 4개월 전 취재팀이 찾아갔던 7월에만 해도 7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총기 어린 눈빛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아라파트. 언론과 중동 정치권에서는 포스트 아라파트를 준비하느라 분주한데... 자신의 한평생을 팔레스타인에 바친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위해 세계에 전하고자 했던 그의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연설회 현장에서 담은 그의 생생한 음성을 직접 들어본다.

2004년 11월 30일 (화) / 제 36 회
제 2 부 : 누구의 땅인가

3대 종교의 성지 예루살렘. 원래는 ‘평화의 도시’ 란 뜻을 지닌 장소지만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지구상에서 가장 살벌한 곳이 되어버린 땅.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도 정착촌 건설로 끊임없이 유대인 지역을 늘려가고 있고, 2천년 동안 살아온 터전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내 조국’을 도둑맞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테러와 점령.. 악순환 과연 누구의 책임이라 말할 수 있을까?

◈ 공존의 도시, 예루살렘

세계 3대 종교의 성지가 모두 모여 있는 곳,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 성묘교회의 기독교인들, 알 아크사 사원 앞 무슬림들. 이들은 모두 이 곳, 예루살렘이라는 동일한 장소에서 기도를 올린다. 비록 서로 다른 종교를 가졌지만 예전에 이곳은 공동의 성지를 둔 공존의 도시였다.

◈ 평화의 걸림돌, 정착촌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예루살렘을 유대인의 땅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대 예루살렘 계획은 자연스레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고립시키거나 추방하는 꼴이 되어버렸고.. 하루 아침에 자신의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들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형상이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과 분노는 점령에 대한 저항이 되어 오늘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이 되는데..

◈ 정착촌과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 이 곳에는 하루에도 수 십 명의 이디오피아 유대인들이 이민을 위해 들어오고 있으며, 이미 약 9만여 명의 이디오피아인들이 이스라엘에 정착을 하고 있다. 주택과 가족부양비등을 제공하며 해외 유대인들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이스라엘. 그리고, 이스라엘의 정착촌 정책에 내몰려 주변국을 떠도는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고향 땅을 밟을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는데.. 이-팔 평화의 가장 큰걸림돌이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속내를 들어본다.

◈ 이-팔 리더십의 위기! 중동평화는?

예루살렘 정착촌 건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스라엘 샤론 총리의 가자지구 철수안은 평화 정착과 인티파다 진압 실패를 무마하려는 정치적 놀음에 불과하다는 비판적 목소리에 부딪치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리 우는 아라파트 역시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 실패 이후 국내외적인 압력과 도전을 받으며 위기의 말년을 맞이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중동 평화 정책을 리더 해왔던 샤론과 아라파트. 엇갈리는 협상 과정에서 그들이 맞이하는 새로운 위기. 과연 그들에 의해 진정한 중동평화의 청사진은 그려질 것인가?

◈ 후예간의 슬픈 전쟁

원래 이스라엘인도 팔레스타인 사람도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의 한 후예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웃에 살면서도 서로 적처럼 으르렁댄다. 서로가 이 땅의 주인이 되면 예루살렘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러나 ‘이 땅의 주인’ 이 되기 위한 전쟁과 점령이 가져다 준 것은 정작 평화가 아닌 테러와 보복이며, 그 보복은 또 다른 피의 보복을 불러오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형제간의 전쟁.. 그 끝을 위한 공존의 열쇠는 진정 없는 것일까?

2004년 12월 1일 (수) / 제 37 회
제 3 부 : 바그다드

인구 약 450만의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미국의 바그다드 함락 이후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 바그다드는 어떤 모습일까? 11월 7일 쿠르드 지역을 제외한 이라크 전역에 60일 간의 비상상태가 선포된 가운데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바그다드의 속내를 ‘제 3부 바그다드’에서 들여다보자.

◈ 죄 없이 죽어가는 아이들

바그다드 남서부의 알 아밀. 9월 30일 미군의 하수처리장 개장식에서 차량폭탄 공격이 세 차례 일어났다. 개장식에서 나눠주는 사탕을 받으려고 기다리던 아이들 중 35명이 사망. 아이가 입고 있던 셔츠의 조각을 보고 자식의 사망 사실을 알아야하는 부모의 마음은 그 어떤 말도 위로가 안된다. 죄 없이 죽어간 아이들, 누구를 원망해도 소용없다. 지금도 바그다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지옥 같은 일상. 그 실상을 살펴본다.

◈ 알라위는 미국의 앞잡이?

시아파 4대 성지 중 하나인 알 카두미야 모스크 앞. 흉물스런 괴물마스크를 앞장 세워 수 많은 인파가 몰려나온다. “알라위는 비겁자! 미국의 앞잡이!”를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데... 하나 같이 알라위 정부를 반대하는 시민들. 7월 1일 출범한 이라크 임시정부의 총리 알라위는 총리 지명 당시부터 반정부세력의 반대를 샀던 인물이다. 임시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앞잡이라는 소리를 줄곧들어왔는데.. 현 정부에 대한 이라크 국민의 감정이 폭발한 그 현장에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 포로들의 지옥, 아부그레이브를 가다

아부그레이브에 아들, 남편, 아빠를 빼앗긴 많은 사람들이 미군의 삼엄한 경계 속에도 구름 같이 모여 들었다. 그들은 수용소에 빼앗긴 가족의 죄목이 뭔지도 알 수 없다. 저항활동을 한 혐의로 아부그레이브에 수감됐다가 석방된 남자. 그를 통해 듣게 되는 미국의 비인간적인 행태. 미국에 대한 수치심으로 가득 차 있는 이라크인의 분노를 들어보자.

◈ 바그다드의 미래는?

도무지 미래가 존재 하지 않을 것 같은 혼란의 도시 바그다드. 후세인도 싫었지만 부시도 싫어진 이라크 국민들. 그렇다면 지금 이들은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과연 중동 제2위 산유국 이라크의 위용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중동 각국의 여러 전문가와 만나 중동평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이라크의 미래를 점쳐본다.

38 회
제 4 부 : 이란, 중동의 힘으로 떠오르다

79년 외세 개입을 반대하고 부패한 팔레비 정권을 무너뜨린 이란의 이슬람혁명은 이슬람근본주의 운동을 확산시키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혁명 이후, 막강한 카리스마와 철저한 반미정책의 독자노선을 달리며 이란 시아파를 혁명의 자존심으로 똘똘 뭉치게 했던 호메이니. 혁명 25주년을 맞고 있는 올 해. 과연 호메이니의 혁명은 성공 이였을까, 실패였을까?

◈ 순교를 지원하는 사람들

위대한 신의 이름으로 성지 카르발라와 나자프 수호를 위한 출정 준비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이란의 시아파 젊은이들. 전체 이슬람교도 내에서도 소수파를 자처하며 끊임없는 반미 투쟁 속에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지켜 가고 있는 이들은 이맘이 부른다면 불덩이 속이라도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이란의 시아파 무슬림들이다.

◈ 이란 혁명의 별

이맘 아야툴라 호메이니. 그는 이란의 영웅이자 시아파를 혁명의 자존심으로 강하게 묶어 놓은 백색혁명의 장본인이다. 외세개입을 반대하고 세계 최초로 이슬람혁명을 달성했던 막강한 카리스마의 호메이니. 지금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 호메이니의 생가를 취재팀이 직접 찾아가가 그가 살아생전 혁명을 주도 했던 당시 상황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혁명과 순교의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들

1979년 11월 4일. 이란의 회교도와 대학생들은 미국 병원으로 이송된 팔레비 전 국왕의 인신 인도를 요구하며 테헤란 주재 미대사관을 점거하고 미대사관 직원 60명을 인질로 억류해 무려 444일 동안 그들을 감금했다. 당시 세계적으로 떠들썩했던 미대사관 인질사건을 주동했던 핵심 인물 중 한 명을 취재팀이 직접 만나 당시사건 배경과 함께 그렇게 오랫동안 대사관을 점거하게 된 속사정을 들어보았다.

이맘의 부름을 받고 19살 나이에 이란·이라크전에 지원병으로 참전하여 한 쪽 팔을 잃었다는 한 남자. 그러나 그것마저 영광의 상처로 여기며 자신의 팔을 스스로 땅에 묻었다던 어느 참전자와 그를 따라 신혼여행을 전쟁터로 갔다 온 간호사 부인을 만나보았다. 참전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에게 전쟁은 또 하나의 ‘성스러운 방어’ 였음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주저 없이 말한다. 다시 이맘이 부르다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고.

◈ 중동의 힘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시아벨트

예멘, 레바논, 파키스탄, 이라크 등 중동 전 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시아파는 전체 무슬림의 10%밖에 차지하지 않는 소수파이다. 그중 이란은 전체 인구의 95%가 시아파로 수니의 바다에 떠있는 시아의 섬에 비유되면서 이른바 시아파벨트의 중심이라 불려지는데, 특히 9.11테러 이후 이란은 뜻밖의 선물을 얻게 된다. 이란 시아파에 적대적이었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붕괴와 시아파를 핍박하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축출로 인한 뜻밖의 수혜자가 된 것. 이슬람교의 2대 종파인 시아. 그리고 그 시아파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정권을 장악한 이란과 함께 그 영향력이 엄청 커지고 있는 시아벨트는 이제 중동의 새로운 힘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4년 12월 3일 (금) / 제 39 회
제 5 부 : 알 카에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비행기 두 대가 차례로 무역센터와 충돌한다. 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끔찍한 장면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을 엄청난 재앙이다. 그 배후로 지목된 알 카에다와 빈 라덴. ‘제 5부 알 카에다’에서는 이슬람전투주의를 표방한 국제적 테러단체인 알 카에다와 알 카에다의 1인자로 알려진 빈 라덴의 실체를 파헤쳐본다.

◈ 현상금 300억원의 남자, 한국을 공격하겠다!

흔히들 ‘알 카에다=빈 라덴’을 떠올린다. 그러나 알 카에다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따로 있다. 지난 10월 1일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을 알 카에다의 공격 대상으로 지목해 우리나라를 긴장케 했던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바로 그 장본인. 이집트의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 카이로대학 출신의 의사였던 자와히리. 지금 빈 라덴과 똑같은 300억원의 현상금이 걸려있다고 하는데...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 암살 사건 후 감옥에서 만나 자와히리와 친하게 지냈다는 자야트 변호사를 만나 무엇이 그를 알 카에다로 만들었는지 들어본다.

◈ 알 카에다를 소탕하라

2001년 미국의 대대적인 알 카에다 소탕 작전이 진행됐다. 알 카에다 가담혐의로 아들을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보내게 된 남자.
예멘에서 그를 만났다. 아들이 잡혔다는 소리를 신문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는 아버지. 지금은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아들. 아버지는 아들이 알 카에다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한편 파키스탄에서도 역시 관타나모에 수감되었다 무혐의로 석방된 22살의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알 카에다에 가담했다는 것이 그의 죄목이었다는데... 아무런 죄 없이 잡혀간 관타나모에서 받았던 상식 밖의 고문! 한 청년의 버려진 18개월간의 시간은 누가 어떻게 보상해주어야 할런지...

◈ 빈 라덴의 흔적을 찾아서...

빈 라덴의 흔적을 찾아서 취재팀이 떠난 곳은 아프가니스탄의 토라보라. 민병대의 경호를 받으며 높고도 험한 산 토라보라를 등반한다. 그곳에서 만난 빈 라덴의 흔적들. 빈 라덴을 잡으려는 미국과 미국을 피해 다니며 괴롭히는 빈 라덴. 미국의 알 카에다 소탕작전으로 형체도 온전하지 못한 빈 라덴의 은신처와 훈련소를 현지 민병대장의 안내로 살펴본다.
또한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이 살았다던 페샤와르의 부촌과 79년 대소 아프간 전쟁 당시 알카에다의 실질적 집결지였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가 그의 흔적을 좇는다.

◈ 단독 입수한 빈 라덴 모습 공개

전세계를 테러의 공포로 떨게 하는 빈 라덴. 그렇지만 페샤와르의 사들 바자르(시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빈 라덴을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이라크전으로 인해 알 카에다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무엇이 빈 라덴을 좋은 사람으로, 알 카에다를 강하게 만들고 있는지 이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취재진이 단독 입수한 빈 라덴의 모습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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