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경제학
하노 벡 지음, 박희라 옮김 / 더난출판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상의 경제학>은 ‘일상에 숨겨진 경제학의 수수께끼를 푼다’ 고 합니다. 경제학이라고는 한번 공부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우리의 일상 속에 경제학적인 판단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경제학적 판단‘ 이란 다름 아닌 ‘효율성’에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매순간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비록 사람마다 다를지언정 스스로에게는 가장 합리적이고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죠. 정의하자면, “주어진 수단을 갖고 가능한 한 최고의 결과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효율성이란 ‘완전경쟁의 시장경제’를 의미합니다.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 의 비유를 들었듯이, 경제주체들이 굳이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스스로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한다면, 시장은 일시적인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곧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는거죠.

저자는 경제학자의 효율성과 정치인의 효율성을 대비시킵니다. 소위 ‘시장의 실패’ 를 보완해야 할 역할을 맡은 정치인들이 정책적 규제를 남발하면서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농업보조정책이기도 하고, 복지정책이기도 합니다. 그는 독일 대통령 라우가 “우리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패턴에 각인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합니다.” 라고 말했던 것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합니다. 그는 대통령이 ‘효율성’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생각에, 효율성이란 “최고의 결과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할테니, 공공부문에서 만큼은 효율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공공부문에서는 최고의 결과에 도달할 필요가 없다” 는 것으로 해석될법 합니다.

저자는 대통령의 발언을 오해했거나 오해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의 발언이든 주어진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를 잊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발언은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경계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테니까요. 결국, 공공부문의 민영화는 효율적이냐 그렇지 않으냐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하노씨가 지적하고 있는 농업보조금이나 복지정책의 실패, 즉 과도한 공급의 유지로 농산물 가격이 떨어진다던지, 획일적인 공공정책으로 복지예산이 낭비되는 문제는 객관적으로 발생하는 ‘낭비’ 내지 ‘손실’ 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시장의 실패, 즉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나 사회양극화에서 ‘사회적 갈등’ 이라는 낭비와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 고안되는 것이죠.
하노씨가 소위 ‘시장만능주의자‘ 가 아니라면 후자의 비효율성도 마저 계산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셈을 제대로 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만만치 않습니다. 같은 조건과 입장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최고의 결과’ 는 각자의 가치판단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왜 우리는 선행을 베푸는가」에서 말했듯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이 되는 것만이 ‘결과’ 는 아닙니다.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이 아닌 경우에 그 가치를 수치로 바꾸기란 만만치 않은 것이고, 이것이 또 한번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이를테면 몹시 흥분한 나머지 상대가 인질에게 실수를 할 경우도 계산할 수 있고 (「갱 영화는 왜 현실적이지 못할까」), 자국 선수가 출전하는 국가별 경기에서는 내기와 상관없이 응원 자체에 큰 가치를 둘 수도 있으며 (「내기는 도박일까 보험일까」), 가사노동에 대한 시장에서의 저평가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둘 수도 (「절약하고 싶으면 가사도우미를 써라」)있으니까요.

더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저자의 ‘효율성 경제학’ 은 아쉽게도 소소한 일상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주요 재화나 서비스들은 ‘완전경쟁 시장경제’ 가 아닌 ‘독점 시장경제’ 를 통해 생산되고 소비됩니다. 그리고, 독점 시장경제는 ‘동등한 기회의 제공‘ 과 ’보편적인 삶의 권리‘ 를 의미하는 공공의 영역을 상관하지 않고 침투하면서, ’완전경쟁 시장경제‘ 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니, <일상의 경제학>은 기가 막힌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할인가격은 교모한 상술이다」, 「정품 청바지와 할인매장 청바지에 숨겨진 비밀」, 「상업지구와 카고컬트의 닮은 꼴」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가격을 흥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 나머지 다소 비싸더라도 군말 없이 소비하는 저에게는, 12000원의 효율성을 발휘한 내용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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