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저러니 해도 소설 쓰기란 결국, 하찮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진지한 것을 하찮게 생각하기 둘 중 하나다." (구효서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정말로 강한 인간은 상처 없는 인간이 아니라 상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책에 대한 취향은 사람에 대한 취향과 비슷한 데가 있다.

미치지 않으려면 현실감 있는 인간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야망은 실패자의 마지막 도피처" (오스카 와일드)

프레텍스타 타슈는 문체니 주제니 줄거리니 수사법 같은 것들을 통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오로지 작가 자신이라고 했다. 작가들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일 뿐이라면 그들은 하나같이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임에 틀림없다. 자신을 기록함에 충실한 사람들, 자신이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뭔가가 빠져 있는 듯한 삶이지만 그걸 굳이 채우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열등생으로 찍혀 가망이 없어진 그 지옥을 이기는 방법으로 나는 책을 택했고 유희는 잠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타협을 모른다는 건 불행의 첫 번째 근원이다. 하지만 그 타협을 모르는 모습으로 세상 위에 설 수 있다면 절대 행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무작정의 믿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희망 없이 살아남는 법을 나는 모른다.

이성을 잃을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시기는 반드시 지나간다. 진짜 사랑이 문제가 되는 건 그 다음부터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처세술에 관한 책을 읽기 좋아하는데, 정말 현명해지려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처세술에 관한 책은 결론을 가르쳐주지만 소설은 결론으로 나아가도록 생각하는 법을 몸에 배게 해준다. 스스로 생각하여 얻는 결론만이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욕망의 기호가 다른 사람들이 잠깐의 유혹에 넘어가 사랑하게 되는 것, 아니, 사랑한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만큼 불행한 경우가 없다. 그것은 난파가 예정된 배에 승선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현실을 잊고 어떤 사람은 책을 통해 현실을 이해한다.

"사랑은 자기 반영과 자기 복제이며 내가 너를 통해 사랑하는 건 내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이다." (이성복)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쓴다.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글은 마음을 움직인다. 거기에는 그 무엇보다 진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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