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가화만사성’이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같은 가치질서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작금의 출판시장 분위기를 보면 그런 가족 이데올로기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 가치질서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했던 여성들이 이기적이고 현실적으로 변하면서 가족이라는 개념이 급격하게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문이당)는 일처다부제를, 드라마 <안녕, 프란체스카>나 영화 <가족의 탄생>은 새로운 대안가족의 유형을 제시한다.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여성의 수는 급증하고, 이미 이룬 가정마저 쪼개지는 일이 허다해 이혼율 세계 1위를 넘보고 있다. 외국 여성을 데려와 억지로 가정을 이루다 보니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민족성에도 불구하고 혼혈가족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향후 30년이면 없어질 대표적인 품목이 가정”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하고 “결혼 4년 중임제를 도입하자”는 농담도 진담처럼 등장한다. 아니 머지않아 그런 일이 현실화될 듯한 분위기다. ‘쇼킹 패밀리’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인간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외투’ 격인 가정마저 해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에 대중은 지친 것일까? 지난해 하반기부터 삶과 죽음, 뇌와 마음을 다룬 책들의 출간이 폭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이 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
36만 부를 넘어선 공지영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과 25만 부를 넘어선 법정 스님의 잠언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조화로운삶)는 인기가 ‘검증’된 저자의 책이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갈수록 증가하는 개인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에 대한 편견을 해소시키려는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두 달 반 만에 13만 부나 판매된 것은 놀랍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예 <행복>이라는 제목의 책이 두 권이나 출간돼 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선물> 등의 저자인 스펜서 존슨의 <행복>은 초판을 10만 부나 발행했으며 BBC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펴낸 <행복>(리즈 호가드, 예담)도 한 달 만에 3만 부나 팔렸다.
그렇다면 최근의 책들이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때에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성공은 행복에 뒤이어 찾아오는 것이며, 내가 행복해야만 온 세상이 행복해진다”는 스펜서 존슨의 메시지가 명확하게 말해준다. ‘행복’이란 결국 ‘성공’의 대체물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공을 꿈꾸던 대중은 수입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와 일상적인 해고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희망을 포기할 정도로 고달픈 현실을 겪으며 결국 ‘나만의 행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차지 않거나 모자라는 것이 없어 기쁘고 넉넉하고 푸근함, 또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최근의 ‘행복’은 모자라는 것이 많아도 나만이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차원의 메시지이다. 철저한 이기주의자는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때문에 개인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을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세태가 우리 모두 인생의 ‘막장’에 이르렀음을 말하는 듯해서 허무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