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새해에는 늘 새로운 기대로 들뜨게 마련이지만 올해 출판시장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새해 벽두부터 ‘사재기’란 악재가 터진 데다 일반론으로 악재라 여겨지는 것들이 올해에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 불황을 이야기할 때 주로 상황적 근거를 대기 마련인데 그런 측면으로만 보면 올해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출판의 최대 위기라고 볼 수도 있다.

가장 큰 위기의 원인은 걸어다니는 인터넷 시대의 개막이다. 당초 계획보다 조금 늦춰지긴 했지만 상반기 중에 이동하면서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무선 휴대인터넷인 ‘와이브로’ 상용화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인류가 생산한 ‘모든’ 지식이 인터넷으로 모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데 이제 그것을 언제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게 된다니 정보매체인 책으로서는 크나큰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이 아니다. 5월에는 지방선거, 6월에는 월드컵 축구가 있다. 이미 우리 국민은 2002년에 4강 신화를 맛보았던 터라 밤을 새워가며 열광할 것이기에 책을 가까이 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출판은 희망이 없는가? 아니다. 늘 기회는 위기와 함께 온다고 했지 않은가? 인간은 언제나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방안을 스스로 마련해왔다. 올해라고 예외이겠는가? 올해 그것은 ‘디테일 기획’이 될 것이다.

원래 사소하게 보이는 디테일에 의해 주요 프로젝트나 사업의 방향이 결정되게 마련이다. 책하면 보통 거창한 이론을 떠올리게 되지만 앞으로는 책에서 제시하는 섬세한 디테일에 의해 책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지난해 초에 나는 2005년의 화두는 ‘어젠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작년 출판시장의 최대 화두는 어젠다였다. 어젠다는 인간이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좌표이다. 작년에 그것은 실천매뉴얼, 미래담론, 요다형 책, 기본과 원칙, 임파워먼트 등 다섯 가지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런 담론은 총론에서 각론으로, 총괄성에서 구체성으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종합에서 세부로 변해왔다. 그런 흐름이 올해에는 좀더 디테일로 나아갈 것이다.

그 증거는 지난해 출판시장에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10만 부 이상 팔린 <괴짜경제학>(스티븐 레빗 외, 웅진지식하우스)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인센티브’가 인간의 일상을 어떻게 지배하는가이다. 그런데 논의의 출발점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보잘 것 없는’ 정보, 즉 정보의 ‘노이즈’다. 과거에 노이즈는 늘 무시되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평범한 주부 개개인의 가계부는 소음 같은 노이즈에 불과하지만 1만 명의 가계부가 모이고 그것이 디지털화해 즉각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상태가 되면 그를 통해 기업이나 국가가 경영전략을 세울 수 있다.

지금의 베스트셀러 중에 노이즈라는 디테일의 힘을 강력하게 실증하고 있는 책은 2초 안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인 직관 또는 통찰을 다룬 <블링크>(말콤 그래드웰, 21세기북스)와 행복한 인간관계를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이민규, 더난출판)다. 공들여 쌓은 탑도 벽돌 한 장 때문에 무너지고 1%의 실수가 100%의 실패를 부른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 책들은 일상의 사소한 요소들을 분석해 제시하고 있다.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이뤄내는 디지털 시대. 어떤가? 당신도 디테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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