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우리나라 출판사의 분위기는 대체로 가족적이다. 규모가 작기도 하고 살림이 넉넉지 않다보니 서로 기대고 다독여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천문학사는 좀 다른 의미에서 특별히 가족적이다. 규모나 살림이야 여느 출판사와 다름없지만, 이 출판사는 명백히 `직장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출판사의 주식 일부를 직원이 고루 나눠 갖고 있는 것도 그렇고, 사장과 직원이 평등하게 서로를 아껴주는 모습도 그렇다. 이순화(37) 편집장은 실천문학사의 이런 분위기를 “자율성”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한다. 지시와 명령 없이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구조인 것이다.

회사가 가족적인 모습이 되는 데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김영현(46) 대표의 성격도 한몫을 하고 있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서민적인 외모와 말투의 소유자인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잔소리하는 것”이다. “여건만 된다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직원들에게 주고 싶다”고 말할 때는 꼭 집안살림을 떠안은 가장 같은 모습이다.

실천문학사의 연혁은 올해로 20년이다. 1980년 신군부가 비판적 담론의 생산장이었던 계간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을 폐간시켜버리자 문인들은 목소리를 낼 공간을 찾지 못했다. 그때 시인 고은, 이시영, 소설가 이문구, 평론가 백낙청씨 등이 모여 만든 것이 무크 <실천문학>이었다. 제3권까지 1년에 한 번 나오던 <실천문학>은 4권부터 계간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통권 57호가 나왔다. 출판사 전예원의 도움을 받아 더부살이 하던 <실천문학>은 84년 실천문학사로 독립했다. 처음부터 실천문학사는 누가 주인이라 할 것 없이 실천적 문인 공동의 자산이었던 셈이다.

엄혹했던 시절 이 계간지는 저항의 본산이었다. 특히 85년 <창작과비평>이 무크로 재등장해 민족문학론을 펼칠 때 <실천문학>은 현장성 강한 민중·노동문학으로 시야를 넓혔다. 시대의 불의에 분노했던 만큼 실천문학사는 탄압을 피해가지 못했다. 85년도 `민중교육' 사건으로 당시 주간이었던 송기원씨가 구속되고 91년 오봉옥씨의 시집 <붉은 산 검은피>로 지은이와 대표였던 이석표씨가 투옥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 진보진영이 방향을 상실하자 실천문학사도 함께 어려움을 겪었다. 그 표류에서 벗어난 것이 95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97년 김영현씨가 대표로 취임하면서부터였다. 지금 실천문학사는 진보적 이념을 바탕에 깔고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체 게바라 평전>도 이런 태도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문인을 중심으로 한 150명의 소액주주들, 대표를 포함한 8명의 직원들이 함께 끌어가는 실천문학사는 다시 원기를 회복한 청년의 풋풋함을 발하고 있다.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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