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개마고원은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도대체 출판사 명칭에 개마고원이라니. 하지만 이름을 만든 장의덕(42) 사장의 가계를 들여다보면 수긍이 간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직전 홀홀단신 남으로 내려와 평생 월남민의 망향의 한을 쌓았다. “개마고원은 한반도의 지붕이잖아요. 둘로 나뉜 반도가 개마고원이라는 지붕 아래 하나로 합쳐지는 날이 오기를 바랐던 거죠.”

지난 89년 출판사 등록을 할 때 장 사장은 그런 생각을 했다. 통일의 길을 찾는 책을 내보겠다는 각오였다. 그래서 혼자서 기획·편집·영업을 도맡아 하던 초창기에 북한 문예물을 몇 권 내기도 했다.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도 냈다. 그렇지만 그에게 통일이니 혁명이니 하는 말은 아무래도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좀더 구체적이고 절실한 주제가 없을까? 출판일을 본격화한 94년 내내 그의 머리에선 온갖 구상이 떠올랐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는 우리 현실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 주제가 지역감정, 정확하게는 호남차별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은퇴'한 정치인 김대중이 있었다. 어머니가 부산 출신이고 대구에서 성장한 그가 김대중을 이야기하겠다는 건 의외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 판자촌 살이의 설움을 겪은 덕에 약자의 마음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장 사장은 이 주제를, 당시 여러 지면에서 명쾌한 글쓰기를 해오던 강준만 교수(전북대)에게 의뢰했다. 강 교수의 첫 답신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전라도 출신이 전라도에 대해 얘기한다면 객관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장 사장은 A4용지 수십장 분량의 기획서를 들이밀며 거듭 승낙을 호소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개마고원과 강 교수의 출세작 <김대중 죽이기>였다.

<김대중 죽이기>로 운명처럼 엮인 장 사장과 강 교수는 <김영삼 이데올로기> <전라도 죽이기>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개마고원은 지금까지 72종의 책을 냈다. 그 가운데 23종이 강 교수의 책이다. 그 중심에 지금껏 13권이 나온 `저널룩' <인물과사상>이 있음은 물론이다. 또 언론 문제를 다룬 <신문읽기의 혁명>, 서울대 지배의 폐해를 고발한 <대학 서열 깨기>, 박정희 현상의 이념적 뿌리를 파헤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유시민씨의 독설이 담긴 <화이 낫?> 등은 “한국사회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발언하자”는 그의 애초 결심이 낳은 결과물들이다.

그 사이 여섯 명으로 식구가 는 개마고원은 이제 시야를 인문학쪽으로도 넓혀 보려 한다. 그 하나가 지난해 펴낸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이다. 개마고원은 작지만, 알찬 담론을 생산하는 의미 있는 출판공간이다.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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