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가야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도서출판 생각의나무는 헝가리 출신 비평가 게오르크 루카치의 이 탄식을 밑자락에 깔고 있다. 자본의 힘이 모든 것을 제압해버린 시대, 전깃불과 스모그가 가려버린 도시 하늘의 별빛을 높다란 인식의 나무를 키워 다시 보겠다는 것이 이 출판사가 희망하는 바라 할 것이다.

지난 97년 겨울 출판사 등록을 한 생각의나무는 패기와 담력으로 구제금융의 눈보라를 헤쳐나오며 두 개의 나이테를 그렸다. 그 동안 박광성(47) 대표를 비롯한 13명의 출판사 식구가 만들어낸 책이 모두 71종이다. 내용을 하나하나 보면 그리 만만한 책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책도 아니다.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우리의 관심은 대중적인 책을 만드는 데 있었다. 그러니까, 고급 담론이 담긴 출판물을 어떻게 상업화할 것인가, 어떻게 대중과 만나게 할 것인가가 우리의 고민이었다.”

그런 고민의 한 결과가 감각을 자극하는 편집디자인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김민수(전 서울대 교수)씨의 <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과 같은 예에서 보이는 대로 가벼운 틀에 진지한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다. 디자인에 대한 이런 예민한 감각은 이들이 펴내는 문학작품의 성격에도 연결된다. 스토리텔링이나 감상주의와는 거리를 둔, “지적인 감수성의 풍경”이라고 요약할 만한 전경린·윤대녕·배수아씨 등의 작품들이 이 출판사를 내보낸 “투명한 이미지”의 소설들이다.

하지만 이 출판사의 본령은 역시 인문사회과학 분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래인력연구센터(소장 박찬욱)에서 집필하는 `미래인력연구총서', 울리히 벡의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의 세계> 등이 이어지는 `21세기를 위한 비전 시리즈', 영상문화학회(공동회장 도정일·성완경)의 창립선언문이라 할 <이미지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등이 생각의나무를 키운 책들이다.

그리고 빠져선 안 될 출판목록의 최상단에 <비평>이 있다. 얼마 전 2호가 나온 <비평>은 비평이론학회(회장 김우창)의 고민을 대중적으로 확산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오늘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를 인문학적 지성의 눈을 통해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평>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지만 지식인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요컨대, 생각의나무의 욕심은 대중적 감응력과 비판적 진지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는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때문에 주제가 또렷이 드러나기보다는 여러 가지 것의 진열에 가깝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점은 박 대표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좀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 파고드는 것이 `인식의 지도'를 그리려는 이 출판사에 주어진 과제일 듯싶다.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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