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김영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행본 출판사 가운데 하나다. 베스트셀러를 줄줄이 쏟아낸 데다 책 외의 화제도 많이 낳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0년을 맞은 이 출판사는 우리나라의 기업 관행과는 달리 설립자가 직원에게 회사를 물려준 극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 82년 편집장으로 입사했던 박은주(42) 현 사장이 89년 김정섭 전 사장에게서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다. 박 사장은 김 전 사장의 경영원칙과 출판원칙까지 그대로 이어받았다. “전문 지식을 대중화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책을 만들자는 게 우리의 원칙이었죠.” 김영사의 모든 책이 이런 원칙을 지켰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흥미롭고도 여운 있는 대중서를 양산한 것은 사실이다.
박 사장 체제가 들어선 뒤 김영사가 이룬 도약은 주위를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89년 첫 해에 김영사는 대우그룹 회장이던 김우중씨의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로 출판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로서는 아무도 넘보지 못하던 `밀리언셀러'(146만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김영사는 그해 연이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빵장수 야곱>을 내놓아 베스트셀러 1, 2, 3위를 휩쓸었다.
외모와는 달리 박 사장은 출판가에서는 배짱이 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김우중씨의 책을 기획했을 때에도 그를 직접 두세 번 찾아가 기획안을 내놓고 승낙을 받아냈다. 이 책은 처음으로 `자전에세이'라는 야릇한 이름을 달고 나왔는데, 그 후로 자전에세이가 한 장르로 굳어졌다. 그의 배짱을 보여주는 다른 일화가 있다. 93년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씨를 찾아간 일이다. 박 사장은 김씨가 머물고 있던 영국 케임브리지를 두 번이나 방문해 “인생의 스승으로서 젊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으냐”며 그를 설득해 결국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를 써내게 했다.
98년 잠시 침체기를 겪었던 김영사는 지난해 다시 도약의 기지개를 켰다. 95년부터 3년반 동안 뉴욕대에 유학을 다녀온 박 사장이 내놓은 기획아이디어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계기였다. <수학이 수군수군>을 필두로 해 나오기 시작한 `앗 시리즈'가 그것이다. 영국 스콜라틱스 출판사의 `호러블' 시리즈를 가져다 우리 입맛에 맞게 다시 짠 이 시리즈는 청소년용으로 기획했지만,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두루 읽고 있으며 지금까지 30여만부가 팔렸다. “제 아이디어라고는 하지만, 김영범 상무를 비롯한 출판사 직원 모두가 땀을 쏟은 결과죠.”
`앗 시리즈'는 청소년용이어서 값을 3900원으로 싸게 매겼는데, “일종의 사회환원”이라고 박 사장은 말한다. 현재까지 39종이 나온 이 시리즈는 최근 들어 국내 필자의 책도 내고 있는데, 공윤조씨가 쓴 <꾸벅꾸벅 클래식>은 스콜라틱스 출판사에 저작권이 되팔리기까지 했다. 김영사는 앞으로 초등 저학년용 `앗'시리즈도 낼 계획이다.
박 사장은 요즘 “전자책 전도사”로 뛰고 있다. 전자책이 피할 수 없는 출판의 현실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서 달리는 쉼없는 출판일꾼의 모습이다.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