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1980년대는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전성기였다. 혁명의 열기로 밤새워, 떼지어 `금서'를 읽던 시대였기에 인문사회과학 도서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혁명의 거품이 푹 빠져버린 90년대는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에게는 끝나지 않는 한파와 같았다. 출판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던 이때에 진보의 기치를 들고 인문사회과학의 부흥을 외치며 탄생한 출판사가 있다. 도서출판 당대.

당대는 95년 4월 출판사 등록과 동시에 재독 사회철학자 송두율씨의 <역사는 끝났는가>를 첫 책으로 내놓았다. 시대의 무게가 느껴지는 당대라는 이름은 송두율씨가 지어준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진보주의가 혼미의 방황을 거듭하던 상황에서 이 책은 진보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을 제출했다. 첫 책은 아주 짧은 시간에 당대를 진보적 출판사로 독자에게 기억시키는 책이 됐다.

문부식(현 도서출판 삼인 주간)씨와 시인 김형수씨가 자금을 끌어들여 세웠던 당대는 97년 큰 모험에 뛰어들었다. 소설가 조세희·윤정모씨가 합세해 계간 <당대비평>을 창간한 것이다. 진중한 내용으로 경박한 현실을 향해 비판의 시위를 당기던 <당대비평>은 그러나, 98년 여름호로 일단 막을 내려야 했다. 신생 소규모 출판사로서 계간지에 드는 비용을 견뎌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출판사와 계간지를 분리하는 것이 둘 다 사는 길이라는 판단 아래 문부식씨와 <당대비평>이 도서출판 삼인으로 옮겨갔다. 그 사이 출판사 초기 멤버들이 모두 바뀌었고, 박미옥(44) 현 사장이 회사를 넘겨받았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이 대다수 그렇지만, 당대는 특히, 98~99년에 시련의 시기를 겪었다. <당대비평>이 남긴 누적 적자를 감당하는 일, 계간지 내느라 단절되다시피 한 단행본 기획을 새로 세우는 일로 몸은 힘들고 살림은 피지 않았다. 그렇지만 편집진이 새로 짜인 이 시기는 당대를 다시 일으키는 시기이기도 했다. “당대가 지향했던 진보성향을 새롭게 다지고 동시에 관심의 영역도 확장하고자 했다.”

올해 들어 당대는 이 기간에 노력한 결과를 조금씩 맛보고 있다. 그 하나가 10권째까지 나온 뒤 2년을 쉬었던 `당대총서' 시리즈 11권 <한완상의 다시 한국의 지식인에게>, 12권 김동춘 교수의 <근대의 그늘>이다. 당대가 시각을 넓혀 포착한 분야에서는 환경생태주의 책들이 여럿 나왔다. 반다나 시바의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권영근 교수의 <위험한 미래>, 참여연대 교수들이 지은 <진보의 패러독스>, 그리고 곧 나올 김재일씨의 <생태기행>이 그것이다.

당대는 올해 20여 권을 펴낼 예정이다. 6권을 내는 데 그친 지난해와 비교하면 매우 활발한 활동인 셈이다. “진보의 시각이 뚜렷이 담긴 다양한 담론이 형성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은 당대와 당대를 찾는 독자들의 일차적 관심사라 할 수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고유한 의미의 사회과학 출판사로 남고 싶다.” 이것이 당대 식구들의 작은 명예욕이다.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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