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도서출판 새물결은 출판계에서 간간이 발견할 수 있는 부부출판사다. 부인 홍미옥(36)씨가 대표이고, 남편 조형준(36)씨가 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새물결은 1989년 당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사회변혁운동의 하나인 출판운동으로서 출발했다. 일종의 `운동권 출판사'였던 셈이다. 조형준씨는 당시 대학 선후배 4명이 모인 이 출판사의 일원이었다. <세계공산주의운동> <선전선동론>은 그때 새물결이 내놓은 이른바 `이념서적'의 일부다. 그러나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과 함께 새물결은 재정적·정신적으로 일대 타격을 입고 92년 일시 문을 닫아야 했다.

새물결의 출판활동은 1년 남짓 휴지기를 거친 뒤 홍미옥씨의 손으로 다시 이어졌다. 93년 홍씨는 집안에서 메킨토시 컴퓨터 한 대를 들여놓고 출판을 재개했다. 그때 `우리시대의 문화' 시리즈로 움베르토 에코의 <포스트모더니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를 내놓은 것이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시대가 너무 경박해지고 비판적 힘을 잃어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옛 주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한참 풍미하던 포스트모더니즘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내놓은 책이었다.” 에코의 이 책은 상당한 대중적 관심을 얻었고 새물결에도 재기의 힘을 실어주었다.

뒤이어 에코의 책을 여러 권 펴낸 93년 한 해는 새물결이 새로운 출판의 방향을 잡은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새물결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 <구별짓기>, 미셸 푸코에 관한 이론서들, <여성의 역사> 등 아날학파의 역사서들, 앤서니 기든스와 울리히 벡의 저서들 등 주로 유럽의 현대 인문학에 초점을 맞춘 책을 펴냈다. 특히 프랑스의 학문동향은 새물결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처음부터 프랑스 학문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다. 프랑스는 아날학파를 비롯해 20세기 인문학 혁명의 진원지였다. 협애한 `운동권적 사고'를 벗어나 인식의 깊이와 넓이를 갖추는 데 이쪽 학문이 큰 자극을 준다고 생각했다.”

새물결은 올해 하반기에 그 동안 기획했던 비중 큰 책들을 연달아 내놓을 예정이다. 20세기 지성사이자 전기 분야의 명저로 꼽히는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의 <자크 라캉 전기>를 이달 중 선보이며, 라캉의 방대한 정신분석 강의록 <에크리>,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고전적 저작 <천 개의 고원>, 권위 있는 중국역사서인 <케임브리지 중국사>, 울리히 벡의 <적이 없는 민주주의>,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가 이어진다. 또 아날학파의 대작 <사생활의 역사> 전 5권 중 3, 4권이 나오며, 일부가 이미 출간된 <여성의 역사>도 완간된다. 이밖에 `아메리카의 발견' 시리즈를 새로 선보여 미국의 실체를 비판적으로 깊이 파고든 책들을 펴낸다.

이와 함께 새물결은 <제2의 성> <존재와 무> <정신현상학>과 같은 고전의 재번역을 진행함과 동시에 총선연대의 자료집 등 현실 문제에 발언하는 책도 낼 생각이다. “고전의 무게와 향기를 보존하는 한편, 사회개혁에 힘을 싣겠다”는 이들의 각오가 미덥게 다가온다.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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