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역사비평사는 민주화의 열망이 군부 출신 대통령의 당선으로 일시 좌절된 뒤, 그러나 민중의 끈질긴 힘으로 자유의 숨통이 트인 1988년 봄에 태어났다. 5공화국에서 고난받던 민중과 양심수들의 투쟁 기록인 역사학자 서중석 현 성균관대 교수의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이 출생신고서였다. 이후 역사비평사는 12년 동안 한국역사 전문 출판사로서 쉽지 않은 길을 한발 한발 걸어왔다.

역사비평사는 역사문제연구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역사문제연구소(역문연)는 1987년 우리 현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뜻이 결집돼 세워진 연구조직이다. 여기서 논의된 내용들이 묶여 그해 9월 무크 <역사비평>으로 나타났다. 제2호까지 무크로 나오던 <역사비평>은 88년 5월 정기간행물 등록을 하고 3호부터 계간지로 다시 출발했다.

역사비평사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계간지를 출간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51계단을 쌓아올린 <역사비평>은 젊은 연구자들을 불러모아 우리 역사 연구를 질적으로 비약시키는 데 산파 노릇을 했다. <역사비평>의 태반인 역문연이 이제껏 국내 역사학 연구의 공백지대로 남아 있던 현대사를 역사연구의 주요 영역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반민주적 집권 세력이 왜곡하고 은폐했던 현대사의 진실을 이들은 집요하게 파헤쳐들어 사회 개혁의 한 고리로 삼았다.

단행본 출판사로서 역사비평사가 걸어온 길은 <역사비평> 혹은 역사문제연구소의 궤적과 겹친다. 그것은 역사비평사의 주요 필진이 역문연의 멤버였다는 데서 확인된다. 먼저, 역사비평사가 펴낸 책들의 목록에는 역문연의 이름으로 나온 것이 14종에 이른다.

역문연을 대표하는 연구자 개개인들의 저술도 역사비평사로서는 소중하게 간직하는 책들이다. 역문연의 현 소장을 맡고 있는 서중석 교수는 그 중에서도 돋보인다. 해방과 분단 시기 남한의 통일운동과 이를 제압한 극우반공체제의 구축 과정을 탐구한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1·2, 조봉암과 진보당을 프리즘으로 삼아 분단반공체제의 폭력성을 분석한 <조봉암과 1950년대>가 서 교수의 땀이 밴 연구서다. 북한 문제 전문가 이종석씨의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는 김정일 시대의 북한 체제의 변화상에 관한 뛰어난 연구서로 평가받는다.

그런가 하면 역사비평사는 일반인을 위한 역사대중서에도 관심을 나누어 기울여왔다. 오랫동안 역문연을 이끌었던 이이화씨의 <역사인물이야기> <이이화의 역사풍속기행>이 눈길을 끌며, 한국사연구회가 지은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전 3권)는 한국인의 생활상을 흥미롭게 조감해 독자의 환영을 끌어낸 대중서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화해·협력의 새 지평이 열림으로써 우리 현대사의 바른 이해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대결과 굴절로 점철했던 지난날을 정직하게 되돌아볼 때만이 통일의 앞날도 소망스러운 모습으로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현대사 연구의 산파인 역사비평사에 주어진 시대적 책임은 더욱 막중해 보인다.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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