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씩씩바이러스'에 지구촌이 감염
펴낸책 모두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여행가’에서 ‘닮고 싶은 사람’으로 독자층 확장
미사여구 없앤 생생한 비유 술술 읽히지만
쓸 땐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치고
“내가 말하는 투로 써야 독자들이 날 느껴요”
 
구본준 기자 박종식 기자
 

“제가 저술가라고는 저~언혀 생각 안해요. 저술가라면 타이틀이 너무너무 엄청나요. 어느 때는 작가라고 해도 민망해요.”

본인이 프로 글쟁이라고 생각 안하는 사람. 자기가 글을 잘 못쓴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책이 왜 잘 팔리는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사람. 그게 한비야(48)씨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분명 저술가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한씨는 꼭 10년전 <바람의 딸 한비야 걸어서 지구를 세바퀴 반>이란 책으로 처음 대중들에게 다가왔다. 혈혈단신으로 6년 넘게 전세계를 걸어서 돌아다닌 여자. 다음에는 우리나라를 걸어서 종단한 이야기(<바람의 딸, 우리 땅에서 서다>를 들려줬다. 역시 바람의 딸 답다. 그러다 어느날 중국어를 배우러 떠나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을 쓰더니, 이번에는 세계 곳곳 긴급구호현장을 누비고 <지도밖으로 행군하라>를 썼다. 이건 매번 진화해댄다. 그리고 진화의 결과를 몇년 만에 한 번씩 들려준다.

4종, 7권. 지금까지 한씨가 쓴 책은 그게 전부다. 그러나 한씨의 책이 이끌어낸 호응은 실로 ‘경이적’이다. 실패한 책 하나 없고, 낸 책이 모두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문학, 비문학을 통틀어 한씨만큼 확실하게 독자를 거느린 글쟁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책 <~세바퀴 반> 4권이 100만부 이상, <~우리 땅에 서다>가 20만부, <~중국견문록> 48만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41만부. 책을 낼수록 판매부수가 늘고 생명력도 길어지고 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출간 1년이 지난 지금도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2~3위권을 지키고 있다.

판매부수가 50만부에 이른다는 것은 상업적으로 볼 때 작가의 차원이 일반 저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과 여 양쪽 모두에게 인기가 있어야 가능하고, 좌와 우를 막론해야 가능하다. 청년층과 장년층 어느 한쪽에게만 인기가 좋아서도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모든 연령, 모든 성별, 모든 성향을 뛰어넘는 호응을 얻어야 가능한 수치다. 곧 한씨가 남녀노소 모든 독자들에게 보편적인 즐거움을 준다는 뜻이다.

자기책 외울정도…편집자는 죽을맛

독자들이 꼽는 한씨의 최대 매력은 바로 ‘건강함’이다. 한씨의 책을 읽으면 ‘씩씩바이러스’나 ‘행복바이러스’ 그리고 ‘봉사바이러스’에 옮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매력은 한씨의 모든 책이 공통적이다. 하지만 저술가로서 한씨는 세번째 책 <중국견문록> 이후 한단계 변신했다고 볼 수 있다. 초기 두 책에서 한씨는 ‘여행가’를 벗어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와는 다른 생생한 표현, 그리고 한씨만의 독특한 유머가 묻어났다. 그런데 <중국견문록>부터는 ‘사회적 역할모델’로 거듭났다. ’정력적이고 호기심 많은 드센 여성 여행가’가 긴급구호활동가가 되면서 ‘닮고 싶은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팬층은 더 넓어졌다.

실제 한씨의 사인회에는 30~40대 직장 남성들이 딸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 한씨의 책을 편집했던 지평님 황소자리 대표는 “아버지들이 동년배로서 자기가 못해본 것을 해내는 이 여성을 자기 역할모델로 여기는 동시에 딸에게도 역할모델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행복하자, 부자가 되자 그런 구호들이 넘쳐나는데 한비야를 만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10만원만 내면 각 대륙별로 한 사람씩을 구할 수 있다는 거죠. 내 삶이 제대로 가고 있나 불안할때, 모호하고 불안한 삶을 되돌아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을 때 한비야의 목소리가 있다는 거에요.”

이런 당위적 메시지로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역시 저술가로서 한씨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씨 글의 특징은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술술 읽히는 점이다. 미사여구로 글을 꾸미는 법도 없다. 대신 생생한 비유를 곁들인다. 그래서 한비야 최고의 장점을 그래서 ‘전달력’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씨의 글이 이렇게 쉽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것도 술술 쓸 듯하지만, 실은 그 정반대다. 한씨는 원고를 자기 마음에 꼭 들 때까지 수십번씩 퇴고한다. 그래서 교정지가 ‘딸기밭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불바다가 되어’버린 듯 새빨개진다. 한씨는 또 자기 책의 목차는 물론, 목차의 순서, 각 항목별 쪽수와 분량을 모두 스스로 정한다. 그러다보니 자기 책 본문을 거의 외우다시피한다. “저는 제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정말로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좋은 소재로 왜 이정도 밖에 못쓰냐며 자학하는 스타일이다. 글을 쓴 다음에는 반드시 소리 내어 읽어본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수만명이 죽어가는 현장이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는 연시이건, 글이란 것은 운율이고 리듬이라고 생각해요. 호흡이 짧아지거나 거칠다 싶으면 다 고쳐요. 입으로 읽어서 거칠면 눈으로 읽어서도 거칠다고 생각해요.” 한밤중에 글을 쓰고는 친구며 편집자에게 전화해서 무조건 읽어주면서 점검해댄다. 좋은 아이디어나 표현이 떠올라도 전화를 한다. 당연히 편집자들은 ‘죽을 노릇’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장의 호흡은 물론 한권 전체의 강약중강약 호흡도 따진다. 그러다보니 거의 자기책을 외우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투를 써야 독자들이 나를 느껴요. 독자들은 결국 글쓴이의 오감을 빌어 내 호흡을 같이하고 싶어하는 거잖아요. 저는 제가 현장을 전하는 리포터에 가깝다고 봐요. 긴급구호 현장을 본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든 전해야 하잖아요.”

이 모든 것의 기본은 한씨 자신의 ‘일기’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그토록 일기를 많이 써야 문장력도 늘고 생각도 깊어진다고 했던 이야기의 모델이 있다면 바로 한비야다. 한씨의 일기장은 취재수첩 같이 생긴 작은 스프링노트. ‘그날 하루 느끼고 떠올린 모든 것들’을 적는다. 기자와 인터뷰하면서도 수시로 메모를 해서 누가 취재를 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취재 중에도 수시로 메모

한씨는 요즘 피 흐름이 좋지 않아 잠시 휴식중이다. 북한산 줄기를 바라보는 한씨 아파트 내부는 글과 관련된 것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소파에도 책상에도 화장실에도 안경과 책들이 있었다. 몸은 안좋다면서도 이 에너지덩어리 같은 글쟁이는 온갖 아이디어와 꿈을 받아적기 힘들 정도로 쏟아냈다. 자연히 다음 책이 궁금해졌다. “정한 것은 없지만, 어떤 방향이 될지는 알지요. 말하고 싶은 게 목구멍까지 차서 도저히 토해내지 않으면 못견딜 때까지 기다렸다가 써야해요.” 아, 이번 책도 4년만에 나왔지. 한씨 팬들은 이미 기다리는 데 익숙할 듯했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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