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독어·라틴어·불어 섭렵 ‘도판 읽기’ 독보적 경지
독일 유학 10년만에 귀국 아내 설득 1년간 ‘놀며’ 글쟁이 단련
1차 원전 처음으로 직접 해석 기존책 오류 잡고
‘미문’으로 대중 포섭 “펜대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요”
 
구본준 기자 이정아 기자
 

출판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 예술 장르는 단연 미술이다. 책에 작품 그림이 실리면 보기에도 좋고, 수천년 세월 미술속에 쌓인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해 책으로 쓸 소재도 많다. 사진도 같은 시각예술이지만 출판 측면에서는 미술과는 비교가 안된다. 최근 ‘교양’ 바람과 맞물리면서 출판시장에는 대중적 미술책이 1년에 수십종씩 쏟아져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처럼 미술이 출판으로 대중들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도 채 안된다. 1990년대 이후 미술책을 전문적으로 쓰는 저술가들이 등장해 교양미술책을 펴내기 시작하면서 미술책은 출판의 중요한 새 분야로 떠오를 수 있었다. 그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미술전문 저술가 노성두(48)씨다.

노씨는 국내 미술교양서 필자를 대표하는 1세대 전문 저술가다. 미술저술가들을 나눌때 교양인 차원에서 출발해 대중적으로 알기 쉽게 미술을 소개하는 ‘저널리즘 기반의 저술가’와, 미술사와 비평을 전공한 연구자 출신의 ‘아카데미즘 기반의 저술가’로 구분한다면 이주헌씨는 전자를, 노성두씨는 후자를 각각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씨는 신문사 문화부 미술담당 기자 출신, 노씨는 미술사학자 출신으로 서로 기반과 출발점은 다르지만 오로지 책만으로 승부하는 프로 저술가로 나선 첫세대 미술저술가란 점에서 같다.

인천 노씨의 아파트는 안방이 작은 방이고 원래 안방인 가장 큰 방은 자료실이다. 책과 도록이 자료실 네 벽을 차지한 것은 물론 방바닥까지 점령해 중간 중간 발디딜 틈만 남겨놓고 있다. “오해하실까봐 말씀 드리는데요, 지금 이 상태가 치운 겁니다.” 워낙 작업량이 많다보니 책상위가 정돈될 틈이 없다. 그래도 이 복잡한 자료더미 안에서 노씨는 원하는 그림이 들어 있는 도록을 10초면 척척 찾아낸다.

노씨는 99년 첫 책을 낸 이후 지금까지 모두 61종의 성인·어린이용 미술책을 짓거나 번역했다. 해마다 8~10권씩을 펴낸 셈이다.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도판해석 능력은 다른 미술저술가들이 부러워하는 노씨의 자산이다. 미술가와 그림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술가들은 여럿이어도 노씨처럼 서양 미술 도판을 직접 보면서 그림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내는 미술저술가는 없었다. 또한 미술사 주요 1차자료를 직접 원전해석할 수 있는 저술가도 노씨가 처음이었다. 독일어는 물론 르네상스 미술로 박사학위를 딴만큼 이탈리아어, 그리고 고전미술의 공식언어랄 수 있는 라틴어, 영어와 불어를 번역할 수 있는 어학능력도 노씨만의 트레이드마크다. 영어판을 통해 2차 습득하는 지식이 아니라 원전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미술저술가는 지금도 드물다. 고정팬들은 노씨의 문장이 미문이란 점을 첫번째 매력으로 꼽는다.

99년 첫책 이후 61종 짓거나 번역

노씨가 저술가로 나선 것은 교수자리를 얻지 못한 게 계기가 됐다. 학부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던 노씨는 독일로 유학가서 미술사학으로 전공을 바꿔 10여년 공부한 뒤 94년 귀국했다. 그러나 교수자리는 그에게 오지 않았다. 96년 결혼 직후 노씨는 아내에게 “다 때려치우고 글을 써서 먹고 살테니 앞으로 1년만 버텨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1년 동안 노씨는 자신을 저술가로 ‘재부팅’하는 체질개선작업에 돌입했다.

이 기간에 노씨가 전범으로 삼은 ‘글스승’은 2명이다. 첫번째가 고은 시인이다. “땀냄새 나는 현장감이 일품”이어서 고은 시인의 시를 거듭 음미하며 읽었다. 다음 글쓰기 모델은 <중앙일보> 바둑전문기자 박치문씨. “검은돌 흰돌 두개만 가지고 우주처럼 써대는 수사에 감탄해” 문장을 곱씹었다. 그렇게 자기 문체를 만들면서 번역할 책 목록을 뽑아 여행가방에 책을 넣고 무작정 출판사들을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번역서가 <알베르티의 회화론>(사계절)이었다. “원래는 고전번역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금방 깨달았죠. 번역, 그것도 고전번역은 정말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술에 모든 활동을 맞췄고, 그의 이름을 알린 첫 본격 저술서로 나온 책이 <보티첼리가 만난 호메로스>(사계절·99년)다.

노씨가 세운 저술 원칙 1번은 ‘신뢰성’이다. 노씨가 보기에 우리 미술책의 문제점은 비전공자들이 쓴 미술책이 많아 너무 오류가 많고, 그런 오류가 정설처럼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7년쯤 전 어린이책 베스트 1위에 오른 미술책을 들춰봤다가 크게 충격을 받았어요. 맞는 내용보다 틀리는 내용이 더 많았습니다.” 이후 노씨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미술책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됐다. 성인용 정통 미술단행본은 잘 안팔리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내린 선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정확하게 가르쳐야 겠다는 의무감이 앞섰다. “밀로의 비너스가 ‘8등신’ 기준으로 만들었다고 미술책에 흔히 나오지요.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인체 비례의 기준은 머리가 아니라 발바닥이었어요. 머리 기준은 15세기 이후 등장한 것인데도 검증도 않고 인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주검 60구를 해부해 인체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는 것도 대표적인 오류다. “다빈치가 쓴 수기를 직접 번역해보니 30구였습니다. 왜 60구란 수치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믿을만한 책을 쓴다는 자부심을 잘 보여주는 책이 최근 나온 청소년용 미술책 <춤추는 세상을 껴안은 화가 브뢰겔>이다. 브뢰겔 그림을 이해하려면 16세기 네덜란드 속담을 알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그림에 숨어있는 당시 네덜란드 속담 126개를 모두 번역해 부록을 실었을 정도다.

미술저술가의 길을 연 개척자로서의 위상과는 달리 그의 실제 수입은 의외다 싶을 만큼 적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본격 저술가로, 그것도 미술저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동시에 우리나라 미술출판의 현실과 한계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해마다 8권 이상 책을 내는데 그가 ‘책’만으로 버는 수입은 한 해 2000만원 안팎. 노씨가 쓴 책을 보면 번역서를 뺀 일반인용 책은 의외로 적고, 그나마 나오는 기간도 1~2년에 한 권 정도다. 그리고 이 책들은 대부분 말랑말랑한 에세이류가 많아 ‘노성두의 주 저’란 이름을 내걸 만한 책은 없다는 비판도 듣는다. “죄짓는 기분이죠. 그런데 도무지 조금이라도 학문적인 책은 내고 싶어도 낼 엄두가 안나요. 언론에서도 크게 다룬 책이 3000부도 안팔린 경우도 있습니다.”

저술 원칙은 ‘믿을만한 책’

우리 출판시장에서 교양미술책은 팔리는 주제만 중복출판된다. 인상파, 특히 고흐에 대한 책만 계속 나온다. 노씨가 다루는 근대 이전 고전미술들은 아직 대중들에겐 어려운 미술이란 관념이 강하게 박혀 있다. 그 간극이 메워질 때까지 저술가로서 노씨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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