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이덕일의~’ 이름값 최소 5만부
대학교수 직함 없이 저술만으로 승부
‘소설가 지망 사학도’ 술술 읽히는 글발 내공
데뷔 10년 만에 30권 베스트 순위 착착
직장인처럼 출퇴근…원고 마감 어기는법 없어
 
구본준 기자 김정효 기자 

한국 출판계에서 ‘자기 이름을 내건 책’만으로 살아가는 글쟁이, 곧 프로 저술가는 극소수다. 문학쪽은 오히려 더욱 전업작가가 적고, 인문·사회·경제쪽, 그리고 실용서쪽에서 최근들어 분야별로 한두명씩 서서히 저술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역사 전문 저술가 이덕일(45)씨는 가장 성공한 글쟁이로 꼽힌다. 책 이름에 ‘이덕일의~’라고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개인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역사쪽에서 대중들과 직접 호흡하는 저술가, 특히 ‘대학교수’란 배경도 없이 책만으로 승부하는 저술가는 그가 유일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이 늦었던 ‘늦깎이 사학자’ 이씨는 1997년 서른일곱살이란 나이에 첫 책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석필)을 쓰면서 저술가로 데뷔한 뒤 꼭 10년 동안 30여권의 책을 쓰면서 역사쪽에서 최고의 인기저자로 자리잡았다.

역사쪽에서 대중적인 인문서 쓰기를 시도한 이가 이씨 혼자만은 아니었다. 80년대 후반 한국역사연구회 등이 ‘역사 대중화’를 시도한 뒤 여러 소장학자들이 대중과 직접 소통을 시도했다. 히지만 현재까지 남아 출판시장에서 통하는 이는 이씨뿐이다. 그만큼 이씨의 등장은 90년대 이후 출판계의 새로운 변화를 상징한다. 이씨가 저술가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 때로는 지금까지도, 받았던 가장 큰 오해가 ‘재야 사학자’란 호칭이란 점은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 역사분야에서 ‘재야’란 말은 정식으로 역사를 전공하지 않고 홀로 공부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학과(숭실대)를 졸업했고 <동북항일군연구>로 박사학위를 딴 정통 역사학 연구자인 이씨는 ‘재야’가 아닌데도 이씨처럼 저술활동만 전념하는 전공자가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이씨를 재야일 것으로로 넘겨짚은 것이다.

저술가로서 이씨는 올해 경력의 절정을 맞고 있다. 1999년 나왔던 <누가 왕을 죽였는가>를 개정한 <조선왕 독살사건>이 지난해 다시 나온 뒤 10만부 넘게 팔리고 있고, 최근 펴낸 <조선 최대 갑부 역관>도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이씨 책 두 권이 동시에 상위 순위에 올라있다. 또 <~역관>이 이씨의 책으로는 처음으로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씨를 향한 출판사들의 구애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출판계에서 추산하는 이씨의 시장가치는 ‘5만부’. 올해 출판시장에서 이씨의 가치를 환산한 수치로, 이씨의 이름으로 5만명까지는 끌어올 수 있다는 의미다. 5000부를 넘기기가 쉽지 않은 인문·교양쪽에서 5만부란 수치는 다른 분야의 10만부 수준이다. 이씨는 30~40대 남성들을 고정팬으로 거느리고 있어 최소 1만부는 기본으로 넘긴다. 이런 점 때문에 이씨는 대형 종합출판사 김영사의 ‘빅4’ 필자 가운데 1명으로 꼽힌다. 다른 3명이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교수, <식객>의 허영만 화백, <토익, 답이 보인다> 시리즈로 토익시장 최고의 베스트셀러 저자인 김대균씨인 점을 보면 이씨의 힘을 알 수 있다.

김영사 ‘빅4’ 필자 중 한명
 
이씨가 저술가로 성공한 최고의 강점은 가장 기본적인 능력인 ‘글쓰기’에서 나온다고 출판계는 분석한다. 학자풍의 딱딱한 글을 쓰지 않는 수준을 넘어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소설가 지망생(이씨는 실제 역사소설 <운부>를 쓰기도 했다)답게 이씨의 책들은 소설처럼 술술 읽을 수 있는 게 매력이자 장점이다. 김영사 신은영 실장은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그 이야기에만 빠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고 글을 쓰기 때문에 독자들이 머릿속에 극적인 장면을 그림을 그리듯 떠올리며 읽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책 내용을 차별화하는 틈새 주제 포착능력도 강점으로 꼽힌다. 누구나 아는 방향으로 책을 쓰지 않고 책마다 반드시 새로운 보여주는 게 있다는 말이다. 논쟁이 일었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처럼 책마다 ‘걸고 넘어지는 것’이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는 출판사나 편집자가 가장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이씨의 글은 이야기가 맛깔진 반면 전하는 메시지가 약해 주장하는 바를 명확히 모르겠다는 평도 듣는다. 너무 글 ‘테크닉’에만 의존한다는 평도 있다. 이는 이씨의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지만, 이씨의 철학과 전략에 따른 선택이기도 하다. “독자를 가르치려는 책은 오래 못가는 것 같아요. 전에는 제 주관과 판단을 글에 집어넣기도 했는데 몇년 지나 다시 읽어보니 그 부분들이 꼭 목에 딱딱하게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이야기 전개에는 주관을 넣어도 마지막 결론은 독자들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이걸 어기면 독자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아요.”

직장인처럼 규칙적인 생활과 철저한 자기관리도 이씨의 성공비결 가운데 하나.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시간까지 일하고, 가끔 야근도 합니다. 일이 되든 안되든 앉아서 글을 쓰든지 책을 보면서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는게 원칙입니다.” 이씨는 술마시는 시간을 빼면 항상 글을 쓰거나 공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마감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마련인 대부분의 필자들과 달리 원고 기한을 어기는 법이 없다. 자기 일정과 작업량을 잘 감안해 합리적으로 마감을 정하기 때문이다. “책도 상품인데 아이스크림을 겨울에 낼 수는 없잖느냐”고 이씨는 웃었다.

지금은 ‘역사 저술가’로 이름을 굳혔지만 그 과정은 물론 쉽지 않았다. 이씨 스스로도 “늘 어렵게 살았던 터여서 ‘라면 세 개에 소주 한 병이면 하루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던 것”이라며 “아마 온실에서 도전한 사람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른바 ‘일류대’ 출신이 아닌 그가 대학교수에 도전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긴 했기에 저술가를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시장)으로 일찌감치 정하고 도전해 거둔 성과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씨는 “인문학 공부하는 사람이 대학 기웃대지 않고 잘먹고 살면서 전문가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준 점”을 자부심으로 꼽는다.

불행하게 가신 분 한풀어줘 보람

역사 저술가로서의 보람을 물었다. “한 시대의 시대정신을 추구하다 불행하게 돌아가신 분들에게 애정이 많이 가는 편입니다. 책으로 그런 분들의 한을 풀어준다고나 할까, 그게 보람입니다.” 이씨는 저술가로서 앞으로의 방향을‘평전’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개인의 삶을 통해 그 시대를 바라보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씨는 평전 쓸 대상으로 우선 3명을 정해두었다. 이순신을 발탁한 정치가 유성룡,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아야 했던 비운의 학자 윤휴, 그리고 정조 임금이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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