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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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은 좀처럼 가까이 하기가 힘들었다.
넓은 자간과 행간, 넉넉한 여백, 구성진 말투.. 산문집이 풍기는 조금은 느리고 여유로운 모습 때문이었다.
몇일 전 한 친구가 굳이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아니 소개만 하고 선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산문집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표지에 실려있는 그녀의 투박한 외모와 이력, 그리고 "예술가가 해야 할 일 중에는 풍경을 기록하는 것뿐 아니라 그 시대의 상처를 기록하는 일도 포함된다."는 다짐도, 오래 자리잡은 산문집에 대한 인상이라는 것을 바꾸기는 힘들었다.
소외를 기록하는 일이 무에 힘들다고.. 우리 시대의 상처를 기록하는 일은 솔직하면 될 일이지, 다짐까지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선옥도 소외를 말한다.

돈이 없어 아이를 아동일시보호소에 내맡기는 아비「내 이웃의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는데」
천연조미료 만들어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 이들 「뉴-슈가와 맛나니」
나이가 조금 많거나 조금 적은 이들의 사랑이야기 「사랑은 가고 러브만 남은 이 휘황한 밤에」
공중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어린 군인들  「어떤 쓸쓸함에 대하여」
김선일씨의 죽음 「행복할 자신이 있는가」
쓰나미가 할퀴고 간 상처 「새해에 비는 소망」
기회의 불균등에 상처받는 아이들 「서울대 진학확률 0%인 사람들의 원죄는?」
억지로 아이 젖을 떼야 하는 여성노동자들 「젖 주는 사회」

하지만, 공선옥이 전하는 소외는 특별하다. 소외와 더불어 '근본' 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왜 사는가. 왜 돈을 버는가. 왜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는가. 왜 정치를 하는가. 나는 왜 인간인가."  「본질을 망각한 사회」
"지금 우리는 확실히 가난은 없고 빈곤만이 남아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중략) 가난은 그대로 어느 정도 숨 쉴 구멍이라도 있지만, 빈곤은 도대체 그 어떤 대책도 없는, 가난은 가난해도 어딘가 따스한 기운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빈곤은 그야말로 삭막 자체인 것 같은." 「가난과 빈곤」
"차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요구하는 노동현실이 지금 이 땅 건설현장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현실에 있는 이들에게 책읽기로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운운하는 것은 또 하난의 폭력이요, 기만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 통렬한 심정으로 고백하는 것이다."「말할 수 있음의 폭력」


그녀의 항변에는, 소외를 기록하고자 하는 한 예술가의, 근본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이것이, 공선옥의 글이 칼럼이라기에는 날카롭지 못하고, 산문이라기에는 보드랍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아직 "아름다운 노래 따위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소외에 다가가는 법은 제각각이 아닌가. 어떤 이들은 자신의 동정심과 인간미를 십분 발휘하기 위해, 어떤 파렴치한 이들은 밥벌이 수단으로, 그리고 공선옥은 근본에 대한 열망으로 소외에 다가간다. 공선옥에게 소외란, 이미 남의 것이 아니다.

소외는 솔직함을 간직하는 이상 우리 모두의 것이다. 소외가 더 이상 소외라고 하기 무색한 사회, 소외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이들과,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팔 걷어 붙이고 달려드는 많은 이들에게, 아직 예술가이기를 거부하는 글쟁이 공선옥은 말한다.

"왜 사는가. 왜 돈을 버는가. 왜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는가. 왜 정치를 하는가. 나는 왜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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