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쟁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KBS 드라마 <서울1945>를 보고 있는데, 대하드라마가 늘상 그렇듯이 논쟁이 되고 있어요. 그 관련 기사를 찾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드라마와 학계의 논쟁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79년 10월에 출간된 책입니다. 계엄 하에서 판금 조치될 정도로, 그간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해방전후사를 다루며 인기를 얻었던 책입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판하며 지난 3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긴장관계 속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재출간을 하기도 했구요.
그리고, 한국정치학회는 이 논쟁을, 비판과 반비판을 넘어 통합적으로 논의하는 장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다고 하는군요.

언뜻 좌우파 이념 논쟁으로 비추어지는 이 논쟁은, 사실 민족주의를 제외한 확실한 논쟁점이 없어보입니다. 이념 논쟁은 불명확해요.
이들이 간신히 논쟁을 전개할 수 있는 이유는, 이념과 상관없이 양 진영 사이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인데요, 비약하자면 한쪽 진영에는 민족주의 좌파와 우파들이, 나머지 한쪽 진영에는 탈민족주의 좌파와 우파들이 뒤섞여있는 것이죠.

저는 이 논쟁이 이념 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될 수도 없구요.
일전에 <이정 박헌영 일대기> 독서후기를 쓰면서,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한 어리석은 접근 중의 하나는, '왼쪽이 옳으냐 오른쪽이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의 사고를 제약하며, 자칫 소모적인 비난으로 치우치기도 합니다.” 라는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두 책을 둘러싼 학계의 논쟁은 이런 제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합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그것은 민족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체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시장의 세계적 통합을 추진하는 체제이고, 사회주의 역시 세계적 생산 공동체를 추구합니다. 방식과 주체만 다를 뿐 경제의 세계적 통합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죠.

따라서, ‘민족주의 좌파‘, ‘민족주의 우파‘는 모순적인 표현입니다.
이런 표현은 한국에서나 쓰이는 것이에요. 모순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이 오늘날까지 공공연히 사용되는 이유는, 체제가 무엇이냐를 떠나 어느 누구도 분단을 원하지 않았던 해방전후사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있는 까닭이죠.

사람들은 간혹, 현실이 불만족스러울 때 과거를 돌아본다고 합니다. 식민지 운운하는 민족주의 좌파와 역사적 정통성 운운하는 민족주의 우파는, 과거에 집착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통일 정부 만능주의든, 정통 정부 만능주의든, 역사와 이념을 부적절하게 뒤섞은 것입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사고에요.

탈민족주의 우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해방 직후의 자주적인 정부 구성에 대한 열망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와 1950년대 자본주의 경제를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오늘날 북한의 폐쇄경제를 두고 결과론적으로 해방전후사에 개입하는 것도 그렇구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진영에서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탈민족주의 좌파에 귀를 기울여 볼 생각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과거에 집착하는 이들과 현재를 합리화하려는 이들 사이에서 유의미한 역사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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