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로 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 - 만화로 보는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역사
엘 피스곤 지음, 김명신 옮김 / 부광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
요즘 한미FTA가 화두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시장을 통합하겠다는 한미FTA.
통합된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들을 만나야 하는 양국의 사업가들과 이들의 이해를 반영해야 하는 양국의 정부가 한참 협상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미FTA라는 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멀리 WTO까지는 올라가야 합니다. WTO란 전 세계의 시장을 한번에 통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인데, 언뜻 봐도 그리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지방에서 줄곧 1등을 해왔던 우등생이 전국수학능력시험장으로 나서는 두근거림이라고나 할까요.

WTO 협상이 만만치 않으면서 등장하는 것이 FTA입니다. 한번에 전 세계의 시장을 통합하긴 어려우니, 평소 교역이 많았거나 지리상 가까운 국가들 사이에서 먼저 시장을 통합해보는 것이죠. 엊그제 한칠레FTA 협상을 했던 것과 같이, 한미FTA는 전세계의 시장을 거미줄처럼 엮어들어가는 수많은 FTA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두고 '세계화'라고 합니다. 굳이 한미FTA가 아니라도, 우리 일상에서 외국의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죠. 한미FTA는 그것을 더 활발하게 만들 뿐입니다.

#
하지만, '세계화'라는 낭만스러운 표현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시장의 세계화' 내지는 '자본의 세계화' 라고 불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화를 통해 세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죠. 각국의 사업가들이 좀 더 나은 투자 조건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게 되는 것 처럼, 노동자들 역시 더 나은 노동조건을 찾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얼마 전, 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 검문을 강화했던 것이나, 그 전에 유럽의 흑인 젊은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데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각국 정부의 각박한 태도가 깔려있는 것이죠.

세계화를 둘러싼 이런 모순적인 풍경은, 우리가 세계화를 너무 단순하게 단편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켜줍니다. 한미FTA가 WTO라는 국제무역협정에서 부터 비롯되었듯이, 국제무역협정은 왜 갑자기 시작되었는지, 더 넓고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마초로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는 멕시코의 정치풍자만화가 엘 피스곤의 풍자만화집입니다. 한미FTA협정에 반대하는 분들이 종종 멕시코 사례(미국-멕시코FTA)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요, 막상 자국에서 FTA를 경험한 그는 미국-멕시코FTA에 국한해서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멀리 돌아 자본주의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세계화, 아니 정확하게 시장의 세계화는, 200여년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그것이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 정책과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복지국가와 사회주의국가의 탄생, 냉전의 와중에서 한숨 돌렸다가, 1970년대 인플레이션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세계화라는 것은, 끊임없이 시장을 세계화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기본 운동법칙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군대를 동원해 공공연히 시장을 개척했다면, 1970년대의 그것은 돈을 이용합니다. 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상상을 초월한 채무와 이것을 빌미로 한 해당국 시장의 개방입니다.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 영국의 노동조합운동을 억눌렀던 대처, 미국의 레이건을 시작으로 해서, 아르헨티나, 멕시코, 페루, 브라질과 같은 남미 국가 뿐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과 같은 유럽권 국가들의 정부가 등장합니다. 저자의 시각이 좀 더 넓었다면, 한국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들어갔을겁니다.

#
세계화 자체를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시장의 세계화'일 뿐이죠. 즉, 누구에 의한, 무엇을 위한 세계화인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미FTA와 같은 시장의 세계화로 인해 고통받을 이들, 그래서 이에 반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큰 시사점을 남겨줄 것입니다.

단순히 한미FTA에 대한 찬반논쟁은 정말 중요한 논점을 흐릴 수 있습니다. 예상되는 협상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할 사람인지, 아니면 협상의 결과에 상관 없이 시장의 세계화에 의해서 고통받는 사람인지 잘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아무렴, 국적은 상관이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