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 푸른숲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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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출신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그녀가 태어난 1871년은 러시아 전역에서 나로드니즘이 일어나던 시점이었다. 봉건 구체제에 저항하고자 했던 나로드니키들은, 차르 정부의 요인들을 암살하는 것을 통해 뜻을 펼치고자 했고, 이들의 장렬한 죽음은 젊은이들을 이 대열로 끌어들였다. 러시아령 폴란드에서 유태인으로, 지체장애로 차별받았던 학생 로자 역시도 이 젊은이들 중 하나였다.

로자가 본격적으로 혁명운동에 뛰어드는 것은, 나로드니즘에 대한 당국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로 피신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당시 스위스는 유럽 각국의 혁명가들의 피신처였고, 로자는 취리히 대학에서 수학하며 여러 혁명가들과 교류한다. 혁명의 시대 20세기 초를 풍미했던 유럽의 혁명가들에게, 나로드니즘과 스위스로의 피신은 하나의 정형과 같았다고 보여진다.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의 1세대인 노동해방단의 플레하노프, 악셀로드, 자술리치, 오스트리아의 사회주의자 빅토르 아들러, 등을 여기서 만나게 된다.

그녀의 공식적인 정치활동은 1898년 독일 사민당에 가입하면서 부터 시작된다. 그녀에게 유럽에서 가장 먼저 사회민주당이 결성되어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독일은, 분명 세계혁명의 중심지로 받아들여 졌을 것이고, 그녀는 평생 국제주의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당시 독일 사민당은 대중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혁명 없이도 평화적으로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환상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러한 경향은 사민당의 지도자였던 베른슈타인이 불러일으킨 수정주의 논쟁으로 드러난다. 로자는 베른슈타인의 논리를 반박하는 논문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를 발표하면서, 독일을 비롯해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녀 역시도 여느 혁명가들과 다름 없이, 1차 세계대전을 앞둔 당내 갈등과 분화 속에서 외로운 싸움을 해야했다. 더군다나, 유럽 사회민주당들의 연합체였던 제2인터내셔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오던 역사 깊은 독일 사민당 내의 분화는 더욱 격심했으며, 독일이 1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전쟁이 발발하는 1914년 직전 1912년 선거에서 독일 사민당은 대거 승리하게 되는데, 의회로 진출한 사민당 내의 주요 지도자들은 전쟁공채 징수에 찬성하고, 심지어 대거 정부에 참여하게 된다.

주도적인 세를 떨치던 그(녀)들이었기 때문에, 로자는 전쟁과 당, 두가지 모두에 맞선 어려운 싸움을 해야했다. 그녀는 어제까지 친분을 유지했던 당내 주요 지도자에게도 필요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고, 예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독일 전역에서 연설했으며, 1905년 1917년 러시아 혁명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전쟁이 한참 무르익던 1919년 그녀는, 독일 사민당 내에서 끝까지 전쟁 반대를 고수했던 칼 리프크네히트 등과 함께 독일 공산당(스파르타쿠스단)을 창설하게 되고, 1919년 예기치 못했던 봉기로 휩쓸려들어간다. 로자는 스파르타쿠스단을 지지하던 젊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봉기에 반대했지만 끝까지 함께 했고, 실패한 봉기에 의해 결국 그녀는 독일 유격대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로자의 일대기를 기록한 막스 갈로가, 대외적 활동 못지 않게 로자의 인간적인 측면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보통 혁명가들은 자신의 정치활동에 일반적인 가치들을 종속시켜왔기 때문에, 그(녀)들의 일대기에서 정치활동 이외의 것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스위스 피신 중에 만난 폴란드의 지하운동가 레오 요기헤스를 비롯한 뭇 남자들과의 사랑, 가구나 악세사리에 대한 관심, 동물과 자연에 대한 애정, 등 우리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고 솔직했으나, 이를 자신의 정치활동 아래 망설임 없이 종속시키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898년 이후, 나는 개인적으로 끊임없이 가장 천박한 모욕들을 받아왔어요. 그러나, 그런 모욕들에는 결단코 단 한줄도, 단 한마디 말로도 응수한 적이 없어요. 적수들은 정치적으로 이념적인 갈등을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영역으로 몰고가려고 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대해야해요.”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중 350쪽

마지막으로, 로자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과 대립했던 부분을 살펴야 한다. 그녀는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직접 경험하면서, 크게 두가지 사안에 대해 다른 입장을 제출했다.

첫 번째는, 민족정책이다. 봉건 러시아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투비아, 리투아니아, 등을 지배하고 있었고, 10월 혁명 이후 수립된 볼셰비키 정부는 각 민족의 자결권을 인정해 분리독립을 허용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그러나, 로자의 경우 러시아령 폴란드에서 태어나 스위스로 유학한 이래 줄곧, 자신의 조국 폴란드의 민족주의 운동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으며,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라는 명제 아래, 국경 없는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촉구해왔다.

두 번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러시아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1905년 혁명 이후 의회가 설립되면서 차후 러시아의 혁명전망에 대한 논의가 한참이었다. 이 논의는 크게 세가지 입장으로 나뉘었는데, 의회의 설립과 이에 대한 참여를 종용했던 멘셰비키 그룹과, 현재는 의회의 설립과 참여에 그치지만 의회를 이용해서 노동자 정부의 구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볼셰비키 그룹, 마지막으로 노동자 계급이 주도권을 쥐고 노동자 정부의 구성에 즉각 나서야 한다는 트로츠키 그룹이었다.
마지막 입장은 1905년에 쓰여진 트로츠키의 논문에서 제시된 것으로 ‘영구혁명론‘ 이라 하는데, 볼셰비키 그룹은 1917년 4월 이후 이 입장으로 선회하게 된다.
영구혁명론에 따르면,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대립해왔던 각 세력들에게 1905년에 설립된 의회를 비롯해 1917년 2월에 설립된 임시정부라는 공식적 국가기구는, 독자적인 노동자 계급의 세력에 의해 대체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이다. 로자가 반대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 더 읽어야 할 책

<대중파업론> : 로자가 1905년 러시아와 폴란드의 혁명을 경험하면서 분석한 글. 1905년 혁명을 경험하며 향후 혁명 전망을 제시한 글은 이 외에도 레닌의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당의 두 가지 전술>, 트로츠키의 <평가와 전망> 등이 있다.
<자본축적론> : 1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되고 있던 1912년. 독일 사민당의 찬성 움직임을 경계하며 집필한 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하는 매커니즘을 서술하고 있다. 같은 시기, 레닌도 <제국주의론>을 집필해, 자본주의의 마지막 발전 단계로서 제국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 1898년 독일 사민당의 지도자였던 에두아르드 베른슈타인이 주장한 수정주의, 그리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독일 사민당 지도부를 비판한 글. 로자는 이 논문을 발표하며 유럽 사회주의자들에게 주목받게 되고, 수정주의 논쟁은 1904년 독일 사민당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배격되어 종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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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20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이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릅니다.^^

sb 2006-06-20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 어록을 인용하려면, 로자가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독일 사민당 내에서 얼마나 고립되었는지를 좀 더 설명했어어야 했는데, 좀 뜬금없죠?

2006-06-23 0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b 2006-06-23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답변 드립니다.

1. 저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에 대해서, 평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을 뿐입니다. (꼽아놓은 책이 있긴 합니다. 풀무질 출판사에서 나온 <룩셈부르크주의>, 로자의 저작선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대중' 이라는 어휘는, 노동자계급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민'은 일하는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데, 소생산자인 농민을 포함합니다. 아시겠지만, 계급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로 구분하지요. '민중'도 '인민'에 가까운 의미입니다.

2. '인터내셔널' 이란 각국 사회민주당 내지는 공산당, 즉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정당들의 연합기구를 뜻합니다. 그에 숫자를 붙이는 것은 역사가들이 편의상 붙인 것인데요, 시대에 따라 인터내셔널이 결성되었다가 해체되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연대기를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각각의 인터내셔널은 가입 조건이나 활동 면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북막스 출판사의 <마르크스주의와 당>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시대 별로 인터내셔널이 결성되는 과정과 문제의식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3. 기존 체제가 격변하는 시기에는 늘상 대중기구가 출연합니다. 러시아에서는 그것을 소비에트(평의회)라고 불렀고, 한국의 경우에도 해방 직후에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죠.
'프롤레타리아 독재' 란, 노동자 소비에트가 혁명 이후 공백상태인 국가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재' 가 뜻하듯이, 노동자 소비에트가 농민 소비에트와 같은 다른 대중기구에 앞서 새로운 국가권력에서 주도권을 명확하게 해야한다는 것이죠.
러시아 10월 혁명을 주도했던 것은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였는데, 페테르부르크는 공업도시였기 때문에, 구성원이 대다수 노동자였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란, 혁명 직후 최고의 의사결정 기구인 전러시아소비에트대회(여기에는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처럼 노동자들이 중심인 소비에트 못지 않게, 농민 소비에트들도 소속되어 있습니다.)에서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와 같은 노동자 소비에트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시 러시아 대다수가 농민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획기적인 주장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동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자본주의 붕괴는 예언이나 예정이 아닌, 사회발전의 일반법칙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봉건주의가 자본주의로 발전했듯이, 자본주의 역시도 새로운 생산양식을 가진 사회로 발전할 것이라는 일반법칙입니다. 그것은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투쟁이 어떻게 일어나느냐에 달려있겠죠. 실패한 혁명도 있고, 성공한 혁명도 있듯이요.

로드무비 2006-06-2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책을 통해 읽었으니까요.
제 댓글이 뜬금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