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 해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엮음 / 잉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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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했던 99년만 해도 비정규직 문제는 몇몇 노동자들과 학생운동권 일부의 목소리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길지 않은 몇 년 사이에, 이제 비정규직 문제는 제도권 언론에서도 헤드라인에 오르는 사회문제가 되어있습니다.

전국불완전노동철폐연대(이하 철폐연대)를 처음 본 것이 00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그간 수집 분석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알아야 할 노동법 해설>을 출간했더군요. 비정규적인 고용형태가 일반화되고,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재계에서 비정규직을 합법화하려는 법제도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에서, 조만간 <정규직 노동자가 알아야 할 노동법 해설>이 나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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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가 알아야 할 노동법 해설>은 제목처럼 따분한 노동법 해설은 아닙니다.
법은 멀고 자본의 권력만이 가깝게 느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을 강의하는 학자의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의 한계를 보여주는 그것에 가깝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알아야 할 노동법 해설>은 법의 한계를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97년 IMF 이후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던 비정규적인 고용형태와 그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투쟁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옮기고 있을 뿐입니다.

오랜 제도권 교육기간동안 법의 절대성을 강변받아온 우리들은, 부당함을 느꼈을 때 조건반사적으로 스스로를 가라앉히며 법을 찾기 마련입니다.
교육열이 뛰어난 한국에서는, 평생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존이 가능한 노동계급 역시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 역시도 언제나 법을 허리춤에 차고 다닙니다.

전국불완전노동철폐연대는 노동자들의 법적대응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있는 그대로의 사례를 보여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가장 상식적인 해답을 도출할 뿐입니다.
“법에 기대지 말 것”

노동법을 해설하겠다는 책이, 노동법은 해설하기 보다, 노동법의 한계를 보여주어야 했던 ‘솔직함’.
이 책은 최소한 진실합니다.

이 책이 최소한의 진실함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는 물론 이 단체의 현장성에 있습니다.
전국불완전노동철폐연대는 정당, 시민단체, 노동조합, 대학생, 등 여러 회원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회원들간의 정기적인 모임이나 토론도 진행하고, 상근자들을 중심으로 정기적인 책자발간과 자료분석도 하고 있다고 들었구요.

진실은 가장 아래에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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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솔직한 이 책은, 법은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97년 근로자파견제와 정리해고제, 05년 마지막 국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비정규직법안, 등 오늘날 한국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변천과정은, 국회의원들의 머리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움직임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입니다.

세계 자본주의의 격화되는 경쟁이, 한국 자본주의에게도 경쟁력을 요구하고, 이러한 요구가 기존의 법제도를 비집고 불법적인 고용형태를 만연하게 하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만연해진 현실을 법이 다시 떠안아, 일순간에 합법이 됩니다. 법은 경제법칙의 꽁무니를 따를 뿐입니다.

물론, 현실을 이해하는 것과 비관하는 것은 다릅니다.
법은 분명 절대적인 가치도 아닐뿐더러 경제법칙의 꽁무니를 따를 뿐이지만, 이러한 현실적 공식은 역으로도 적용이 가능하니까요. 법제도의 개악을 막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법안 문구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필요 이상의 기대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법이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법을 충분히 활용하면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계급투쟁‘ 이론에 입각해 볼 때, 오늘날 철저히 계급 적대적인 것은 노동계급일 뿐만 아니라 자본가계급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오래 전에 법에 대한 계급적 분석을 끝낸 모양입니다. 오늘날 이들 만큼 법을 좌지우지 하면서도 위법하는 이들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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